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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지기 마야 May 24. 2021

이러니 팔이 안으로 굽지

며칠 전, 밤 9시가 넘은 시간에 엄마한테 카톡이 왔다.


엄마는 용건이 있을 때만 연락을 하시는 편이고, 대체로 낮 시간에 전화를 주신다. 문자는 정말 가끔 보내셨다. 평소 연락하던 시간이 아니라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살짝 놀란 마음으로 메시지 창을 열어 보았다.


'경아, 으뜸이 초음파 사진 봤는데 혁이 닮았어.'


세상에!!!

이제 6개월이 조금 지난 남동생네 뱃속 아기 얘기였다. 반갑고 기쁜 마음에 답신 대신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올케가 오후에 작은 언니와 카톡으로 얘기를 하다가 마침 병원 검진 다녀오는 길이라며 초음파 사진을 언니에게 보내줬다고 한다. 언니네 집에 들른 엄마에게 그 사진을 보여줬고 남동생을 닮은 외모에 엄마도 언니도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고 한다.


나는 사진을 못 봤으니 진짜 닮았는지 안 닮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언니한테 얘기해서 보여달라고 하니 올케한테 직접 얘기하라고 한다. 늦은 시간에 연락해서 초음파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기는 조금 아닌 것 같았다. 언니를 꼬드겨서 기어이 사진을 받아냈다.


엄마와 언니가 조금 과장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 초음파 사진으로 어떻게 동생을 닮았는지 알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사진을 본 순간 진짜 동생 얼굴이 조금 보였다. 정말 신기했다.


우리 집에서는 거의 20년 만에 애기가 태어나는 거다. 언니들과 남동생이 10년 넘는 터울이 있기도 하고 남동생도 30대 후반에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2년 만에 아이가 들어서서 우리 집은 잔치 분위기다. 언니들이 아들 하나씩만 있어서 공주 조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빌었는데 소원이 이루어졌다.


다음 날 언니들과 통화를 했다.


작은 언니는 아기가 이목구비가 뚜렷하다고 말한다. 큰언니는 입매가 야무지게 생겼고 벌써부터 콧대가 높다고 얘길 한다. 엄마는 동생을 닮은 게 신기하다고 계속 얘길 한다. 초음파 사진 한 장으로 모두 들떠버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사진첩을 열어 늦여름에 만날 조카 얼굴을 들여다보며 미소 짓는다.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마음으로 얘길 해준다.


이런 내 모습을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나도 어쩔 수 없다. 초음파 사진으로 만난 조카가 이렇게나 예쁘니 태어나면 오죽할까!


할머니와 세 고모는 이미 조카에게 마음을 다 빼앗겼다.


(올케는 엄마 집에  때마다 동생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귀엽다고 얘길 했다.  사진과 초음파 사진의 조카가 닮은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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