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다시 읽는 이유는
토지가 마지막 생명인 것만 같아서
토지 1부 1권의 시작은 1897년의 한가위 마을 풍경이다.
역사 시간에 배우는 1897년은 강화도 조약(1876년)으로 시작해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운동(1894) 청일전쟁(1894~1895) 을미사변(1895) 아관파천(1896) 대한제국 선포(1897) 까지 휘몰아 치는 격동기지만,
토지의 시작은 풍년은 아니어도 평작은 되는 넉넉한 풍경의 평사리 모습이다.
떡을 집어 달아나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 , 분주하게 몸단장을 하고 굿을 보러 나갈 준비를 하는 아낙들, 타작마당에서 노는 남정네들 ( 목청 높어 소리하는 서금돌, 두만아비, 봉기, 영팔, 마을에서 제일 멋진 남자 용이) , 그리고 신난 마을 사람들과 대비되는 적막한 집 싸늘한 표정의 최치수, 최치수에게 식사 하실건지 물으러 온 귀녀는 최치수에게 가기 전 거울을 보고 다시 나와 거울을 본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별당아씨, 그리고 더 생각이 많아 보이는 구천이는 산으로 올라간다.
달이 뜨고 달집을 태우고 강가에서 부르는 처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줄어들면 근심을 잊을 수 있었던 하루가 끝나가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미라클 모닝과 미라클 루틴이 없어도 새벽에 일어나야했고 매일 할 일이 정해져 있었다.
각자의 삶이 있었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힘든 삶이지만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삶을 잇는 서러움,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 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토지 1권 28p>
토지의 배경이 되는 지리산은 가난하고 핍박받던 사람들을 안아주던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먹고살만한 사람들에 의해 신음하고 상처투성이가 되고 있다.
박경리 작가는 2001년 서문에 이런 표현을 하셨다.
<어디 지리산뿐일까마는 산짐승들이 숨어서 쉬어볼 만한 곳도 마땅치 않고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식물, 떠나버린 생명들, 바위를 타고 흐르던 생명수는 썩어가고 있다 한다. 도시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 무엇일까? 백팔 번뇌, 끝이 없구나>
토지에 빠져 있던 1년의 시간, 하루 2장씩은 읽어야 겠다는 목표로만 달리던 , 루틴을 깨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결국 토지를 완독했다. 그러나 아직 토지를 다 읽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실을 찾는다는건 생명이 영원하다는 것과 같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진실을 찾아보고 싶다.
어쩌면 사라져가는 인간의 생명, 정신들이 토지에 남아있는것만 같아서 인공지능이 가장 잘 하는건 최적의 효율이겠지만, 그래서 게으르고 비효율적인 인간이 가장 잘 하는 쓸모없는 생각을 해보기로 했다.
21세기 노트북이 나의 일을 편하게 하고, 청소기와 세탁기는 살림을 쉽게하고, 쿠팡은 필요한 것을 눈앞에 가져다 주지만, 우리는 저 가난하고 핍박받던 사람들보다 행복해졌을까? 노력하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진 우리는 그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보다 덜 서러워졌을까? 덜 아파졌을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는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