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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소장 Mar 15. 2024

세종 일기

위대한 업적의 비밀은?

노트북에 저장 되어있던 조선시대 왕의 일기 (가상 일기)

그냥 끄적여 두었던걸로 기억했는데 꽤나 많이 썼었다.

사실 마지막 순종만 남겨두고 완성을 했는데,

초고를 수정하려고 하다가 많은 일들이 있어서

덮어버린 덮여버린 비운의 작품? 중 하나를 꺼내보았다.



4. 세종 일기 (위대한 업적의 비밀은?)      


 시간이 많이 흘렀다. 1418년 갑작스럽게 왕이 되었던 나는 이제 나의 생을 마감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다. 쉬지 않고 일했던 나의 왕으로서 삶을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해 줄까?      


 어린 시절 나는 책 읽는 게 좋았다.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너무도 즐거웠고 책이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건강을 해칠까 걱정된다며 책은 그만 읽고 나가서 좀 뛰어놀라고 하셨다. 걱정은 이해가 되었지만 마침 아주 중요한 내용을 깨닫기 직전이어서 책에 더 몰입하고 말았다. 아버지는 말로는 타이를 수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내가 가진 모든 책을 불태워 버렸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결핍이 나에게 아주 오랜 상처로 남아 왕이 되었을 때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할 수 있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형이 미웠다. 조선의 4번째 왕이 될 형, 조선의 일타강사는 모두 형에게 주고 나에게 붙여 준 과외 선생님은 유명하지도 않고 과거에는 매번 떨어지는 이름 모를 선비라니, 누구보다 궁금한 것이 많은 사람은 나였는데. 그런데 전화위복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지 나의 스승 이수는 과거 운은 없었긴 하지만 고전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다만 그 지식이 시험 통과에는 불리했을 뿐, 그 덕에 나도 알게 되었다. 세상이 정해 놓은 정답을 푸는 사람만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서 내가 왕이 되고는 자질을 갖춘 사람들을 뽑은 후 그들의 능력이 피어나도록 노력했다.     

“나를 알아보고 숨어있는 가능성 잠재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즉위 초, 아버지에게 나는 정치를 배웠다. 정치의 잔인함을 배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외척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장인어른을 숙청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직 어리고 능력 없는 나는 때를 기다려야 했다. 여전히 아버지의 사람들이었고 군사력을 가지고 계신 것도 아버지였다. 나만의 방법으로 정치를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의 시대가 되었을 때 나는 혼자가 아님을 알았다. 내 곁에 남겨 놓은 사람들, 특히 내가 즉위할 때 형인 양녕대군 편에 서서 극렬히 반대하던 황희는 내가 정말 재위 기간 내내 의지할 수 있었다. 우유부단한 면이 없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에도 여러 번 휘둘리고 나이도 많아서 쉬고 싶다는 상소를 올려도 그가 없이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놓아줄 수 없었다.      


 아버지가 원나라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지만 그마저도 확실한 사실은 아닌 장영실은 기계 제작에 뛰어난 능력이 있었다. 아직 미숙한 부분은 공부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국비로 유학을 보내주고 (기술을 좀 알아 오라고 보냈더니 문서 유출을 꺼리는 사람들을 안심시키고는 머릿속에 그 복잡한 설계도를 다 외워 온 사람이 바로 영실이였다. ) 그런 그를 천민 출신이라고 무시하다니, 신분이 밥 먹여주나 영실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데려와 보라고 소리쳤던 일도 생각난다. 천문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많은 이론과 아이디어는 그의 손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지 모른다.


누구나 세상에 태어난 데에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는 나의 꿈을 실현해 주기 위해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를 끝까지 신뢰하고 싶었지만 마지막을 지켜주진 못했다 그 부분 너무나 아쉽고 슬프다.     


 누가 나에게 왕이 되어 가장 좋았던 것이 무어냐 묻는다면 독서와 토론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거라고 대답할 것이다. 왕자 시절 아버지는 책에 빠져 사는 내가 몸이 상할까 걱정될 지경이라며 내 책을 모두 불태웠던 건 사실 건강보다는 형이 왕이 된다면 나의 학문이 위험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언제나 한 수 앞을 보는 아버지셨으니까.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의논하자” 내가 왕이 되고 가장 많이 한 말이었을 거다. 아버지는 신하들과 토론하는 경연을 싫어했지만 ( 경연한다고 해도 결정은 아버지가 하셨을 테니 신하들도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경연은 나에겐 가장 신나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고 학자들과 실무진과 삼정승까지 다 불러서 정책을 정하면 속이 다 시원했다. 왕이라고 말조심하면 어찌 좋은 해결책이 나오겠나 싶어서 편하게 하라고 했더니 감히 나에게 소리 지르며 대들던 신하도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었다. 상대가 틀리고 내가 맞다 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토론이 아닌 진정으로 실용적인 결과를 내는 경연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고성이 오가긴 했어도 늘 현명한 판단을 내려 정리하는 황희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궁금한 부분은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완벽한 나의 집현전 학사들에게 자료조사를 명령했다. 또 야근이냐고 불만을 터트리겠지만 언제나 꼭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와 정리해 주었다. 이러려고 과거 시험에서 상위권 엘리트들만 쏙 잘 골라왔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나 때문에 힘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휴식을 취하며 공부하라고 경치 좋은데 서 쉬면서 하루 종일 책만 읽는 제도도 만들고(내가 하고 싶은 거였는데) 내가 아끼는 귤도 나눠주고 했었는데 그들도 이제 나와 같이 늙어 가는구나.


 나는 한번 내 신하가 되면 죽을 때까지 함께했고, 단기간이 아닌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좋아했다. 그들과 함께 유교의 나라 조선을 만들어 가는 일이 행복했다. 성리학의 질서를 잡아가고 그 바탕을 이루기 위해 백성들이 근본이 되는 민본주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정치를 하지 않고 오로지 군자의 마음으로 일하고 있었다. 당연히 성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올바른 인재를 등용하는 왕, 훌륭한 재상,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하들과 늘 묵묵히 일하는 백성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완벽하진 않았지만 완벽에 가까운 조선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받아오던 달력에서 오류가 있자 한양을 기준으로 한 달력을 만들었다. (칠정산 내외편) 이 달력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을 연구했고, 수학을 연구했고, 기계를 제작했다. 오랜 시간에 걸친 프로젝트 사업이었지만 큰 그림을 그리고 세부적으로 조금씩 실행해 가며 작업했다.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궁극적인 목표였기 때문에 조선을 이루는 뿌리가 되는 농업 생산력의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평생 공부만 한 신하들이 알 턱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신하들과 토론한 끝에, 전국에 관리를 보내 동네에서 농사를 가장 잘 짓는 농부들을 인터뷰하라고 시켰다.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것이, 바로 조선의 베스트셀러 농사직설이었다.      


 농사를 잘 지으려면 농사지을 사람이 필요한데 새로 태어나는 아이 10명 중 9명은 죽는다고 하길래 의학을 연구하게 했다. 영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산모와 남편의 출산 휴가를 명했다. 산부인과와 소아과를 집중관리 해 인구 관리에 힘썼다. 의학책은 대부분 중국에서 온 거라 조선에서 나지 않는 약초가 많다고 하기에 우리 땅에서 나는 식물도 연구하게 했다. 그리고 의학서적을 만들어 정리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 좋은 책들을 나눠주고 싶었는데, 게다가 살기 좋은 나라를 위해 인성 교육을 하고 싶은데 한자로 책을 만들어 봐야 백성들은 못 읽을 테니 소용없는 것도 아쉬웠다. 그래서 한글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일들은 신하들과 토론하며 결정했지만, 이번만은 나 혼자만의 비밀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신하들은 백성들이 글을 알기를 원하지 않을 테니까. 글을 알게 된 백성들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고 외치면서 너는 왜 양반이고 나는 왜 노비인가 하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글 모르는 까막눈들이 자기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일만 열심히 하면 좋을 텐데 정당한 임금을 달라고 소리치면 귀찮아질 것이다. 반대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한글을 혼자 만들었다. 다 만들고 나니 신하들이 중국 눈치 보인다며 반대했지만 정작 중국은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다.


처음 사대부들은 한글에 대해 부정적이었지만 내가 집현전 학사들과 해설집인 훈민정음해례본도 만들고 용비어천가 등 여러 책을 만들어 보급하자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뜻글자인 한자는 배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니 어차피 논어 맹자 공부할 때는 한자를 쓸 테고 중국과 말이 달라 표현 못했던 것은 한글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생각에 크게 반기진 않았어도 반대하진 않았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계획하고 했다면 엄두가 안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눈이 안 보일 만큼 그리고 평생을 노력했다. 아버지가 나에게 원했던 유교의 나라 조선을 위하여 쉬지 않고 달렸다. 거의 모든 일들을 이루었고 이제 나의 아들이 조선을 더 눈부시게 발전시킬 일들만 남아있는데, 아무래도 내가 죽고 나면 효심에 몸이 상할지 않을까 싶은 내 아들 문종이 걱정된다. 그리고 몸은 튼튼하지만 허세 가득한 둘째도 걱정이 된다. 그래도 믿어야지 어쩌겠나.


이제 나의 시대는 끝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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