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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리, 저녁 8시 20분 코인노래방으로 떠났다.

요피님과 뽀리의 독립일기 2023.01.

by 요피님

저녁 8시 20분.

"엄마, 집 앞 코인노래방 갔다 올게요. 낮에 산책하며 코인노래방 위치랑 상태를 확인했는데 괜찮은 것 같아요." 라며 주섬주섬 물병을 챙긴다. 본인은 노래방에 가면 물을 많이 마신다며 물을 한가득 채우고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다.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남편과 나는 '저게 하고 싶었나 봐'라며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8시 20분 코인 노래방 가기'는 'DO not Touch'의 시작점이었다. 전날 만리장성과 같은 아이에게 대화라는 명목으로 불러내어 말을 시작했다. 엄마인 내가 70~80%의 지분을 담당하며 그간 여러 차례 반복하며 말했던 레퍼토리를 다시 꺼내어 얘기했다.

"도대체 방에서 뭘 하는 거니?"

"하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 봐."

"그럼 알바라도 해서 대학 가서 쓸 비용을 마련하자."

"오늘은 산책이라도 하자."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다시 가보는 거 어때?"

"혼자 나가서 독립해 볼래?"

그동안 답답함 속에서 나름 생각해 냈던 것을 천천히 다시 얘기했다.


뽀리는 단호하게 하기 싫다고 대답했다. 뽀리는 하기 싫으면 싫은 거다. 그 뒤가 없는 아이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눈물 콧물 쏟으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힘들고 괴로웠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낸 뽀리. 절친과 함께 했던 중학교 2학년과 차분한 성향의 아이 2명과 지낸 고1을 제외하고는 왕따로 자존감을 짓밟혔던 1년, 묵언수행처럼 지낸 3년이 학창 시절의 전부였다. 아이의 힘듦과 버팀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졸업을 하는 뽀리에게 우리는 '욕봤다'라는 세 글자를 써줬다. 앞으로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과 아이에 대한 가슴 아픔과 여기까지 버틴 아이의 의지에 고맙다며 눈물 콧물을 쏟았다.


한참을 듣고 난 후 뽀리는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라고 입을 열었다.

"엄마, 시간이 필요해요. 1달만 내가 무엇을 하든 뭐라 하지 말아 주세요."

"여태껏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뭐라고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아니 엄마, 특별히 뭐라고 한 적은 없어요."


아이는 답답해하며

"그런데 엄마, 암묵적인 선이 제게는 있어요. 3시에 어딜 나가고 싶다가도 5시에는 집에 들어와야 한다는 마음속의 규칙이 있어요. 오랜 기간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오며 지켜야 할 것 같은 룰이 있는데 그것조차 없애고 싶어요. 제가 무엇을 하든, 언제 움직이든 그냥 제 마음대로 하고 싶어요. 집에서 살지만 혼자 사는 것처럼,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며, 살고 있어요. 딱 한 달만요."


"대신 어디 가는지 얘기하고, 언제 올 것인지 얘기는 할게요. 엄마가 알다시피 늦게 다닐 곳도 없어서 늦어도 10시에는 들어올 거예요."


"알았어, 너를 존중해 줄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대신 조건으로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기로 약속해. 바깥 공기 좀 쐐고 다니자."

"알았어요. 일단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뽀리가 뭔가를 얘기하는 것이 그냥 좋았다. 그리고 이거라도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우리의 약속은 1월 9일부터 2월 8일까지. 조금 시간을 당겨볼까 협상을 시도했지만 칼 같은 아이는 웃으며 딱 잘라 거절했다. '그래 알았다'


그런 뽀리의 첫번째 자유를 향한 시도가 8시 20분 코인노래방이다. 1시간이 지나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들어오더니 옆 방의 노랫소리가 들렸다는 등 나름의 무용담을 얘기했다. 활짝 핀 얼굴이 밝게 핀 코스모스 같았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웃음인지 모른다.


뜨거운 우유 위의 막처럼 '자신의 세계'와 '외부의 세계'를 가로막는 얇은 막이 있다면 다 없애보자... 그리고 자유로워져 보자.


1달 뒤에 뽀리가 어떤 생각의 그릇을 들고 올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노아의 방주에서 떠난 비둘기가 이파리 하나를 물고 왔던 것처럼 아이는 희망과 행복의 작은 이파리 하나를 물고 올 거라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뽀리를 향한 믿음과 인내로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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