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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의 커피책 Dec 15. 2021

바리스타들이 쓰는 툴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장인도 도구는 골라쓴다.




필자는 예전부터 장비 구매하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래서 새로운 취미가 생길 때마다 그 분야에는 어떤 장비들이 사용되는지부터 알아보았는데, 컴퓨터에 빠지게 됐을 때는 새로운 컴퓨터를 맞추기 위해 한 달 가까이 공부하며 혼자 견적을 내기도 했고, 운동을 갓 시작했을 때에는 브랜드별로 예쁜 도복은 어떤 게 있는지, 허리 벨트나 손을 보호하기 위한 그랩과 운동복은 가격이 어떤지 한참을 들여다봤었다.


커피에 처음 빠졌을 때도 그랬다. 가벼운 마음으로 해오던 때와는 달리 진지하게 접근하게 되면서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스프레소 툴이 갖고 싶어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알아보게 되는 지경이 됐다고 할까. 갖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사용할만한 상황이 안돼서 사용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하나하나 사모으기 시작하고 있다. 이번 편은 번외라고 생각해도 되겠다. 갖고 싶었던 장비들과 가지고 있는. 그리고 사용해본 장비들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메탈의 반짝거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쪽 일을 하지 않더라도 가지고 싶을 만한 장비들도 많을 것 같다.


필수적인 장비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장비도 있다. 장인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 다곤 하지만, 대부분의 장인들은 좋은 도구를 사용하긴 한다.







탬퍼



커피에 관심이 좀 있다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지도 모르겠다. 에스프레소 추출에 필수적인 도구로, 바스켓에 담긴 분쇄한 커피를 사이사이에 공간이 없게끔 단단하게 다져주는 작업을 할 때 사용된다. 이 작업이 없다면, 높은 압력 속에서 커피들 사이로 물이 고르게 지나가지 못해, 한번 물길이 트인 곳으로만 물이 흐르게 되어, 좋은 커피라고 하더라도 완벽하게 자기 맛을 내기 어려워진다. 이를 채널링이라고 부른다. 처음엔 단순히 누르기 위한 용도로 개발되었는데, 시간이 지나 퍽을 조금 더 단단히 다지기 위해 손목을 빙글 돌려가면서 사용하거나, 디스트리뷰터와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탬핑을 통해 단단하게 다져진 커피층을 '커피 퍽' 혹은 '커피 케이크'라고 귀엽게 부른다.


사용할 때에는 손목을 곧게. 그렇지 않으면 부상을 야기한다.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도장처럼 생긴 것이 기본 모양이다. 위에서 누르기 위한 작업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적당한 무게감과 그립감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형태는 도장 모양이지만, 최근에는 손잡이가 없이 바스켓 위에 얹고 누르면 되는 핸들리스 탬퍼도 나오고 있다.



핸들리스 탬퍼의 장점은, 포터 필터 입구에 가장자리 부분을 걸치면서 누를 수 있게 되어있어, 한쪽으로 탬퍼가 기울지 않고, 균일한 높이로의 탬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 손목을 무리하게 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무리가 조금 덜 가는 장점도 있다.


단순히 단단히 다져주기만 하는 작업인 것 같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초보 바리스타들이 실수를 범한다. 탬핑한뒤 바스켓을 통통치기도 하고, 잘 다져놓은 에스프레소 퍽을 머신과 결합할 때 손을 휙휙 다루다 결합 부분에 쿵쿵 찧으며 결합시키기도 한다. 단단히 다져주었던 퍽에 충격을 가하면, 퍽 사이로 미세한 금이 간다. 물은 영악하게도 한번 가봤던 길, 가기 쉬운 길로만 가는 얄미운 성격이라, 열심히 탬핑한 것이 아깝게도 금이 간 부분 주위에서만 과다 추출이, 그렇지 않은 부분에서는 과소 추출이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나온 커피는 어떨까? 농도는 옅으면서도 떫은맛과 쓴맛이 끝에 남아도는 아쉬운 커피가 나오게 된다.







디스트리뷰터


탬퍼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또 전혀 다른 역할을 하는 장비이다. 이름처럼 바스켓 속에 담긴 곱게 갈아진 원두를 곳곳에 일정한 밀도로 분배해주는 용도로써 쓰인다. 밀도가 낮은 쪽으로만 물이 흘러, 커피맛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으로 개발되었다. 그래서 아랫부분이 평평한 일반 탬퍼와 다르게 여러 가지 모양의 밑바닥이 특징이다.


선풍기 날개처럼 생긴 것도 있고, 파도모양, 산모양 등 다양하다.


탬퍼와 같이 꾸욱 누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빙글빙글 돌려가며 사용한다. 사용자에 따라 한 방향으로만, 혹은 양방향으로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돌리기도 한다. 너무 천천히 돌리면 탬퍼와 같은 효과가 중심부에만, 그리고 너무 빨리 돌릴 경우엔 원심력에 의해 원두가루가 가장자리로 더 몰려가기 때문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용자가 원하는 만큼 디스트리뷰터가 튀어나온 높이를 조절할 수 있다. 그래서 탬퍼 대신 디스트리뷰터만을 사용하면서 커피퍽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드는 탬핑 법이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스케일



저울이다. '저울이 무슨 장비야, 그냥 무게만 잴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0.2그램의 커피양으로도 맛을 조절하는 바 안에서는, 저울의 성능은 원활한 워크플로우를 위해서, 그리고 바리스타가 받는 스트레스에 굉장한 영향을 준다.


좋은 저울들은 기본적으로 시인성이 좋고, 튼튼하며, 빠르다. 여기서 빠르다는 것은 저울의 반응속도를 얘기한다. 반응속도가 좋은 저울들은 포터 필터를 올렸을 때 빠르게 무게를 감지해서 표시해주고, 영점 버튼을 눌렀을 때 영으로 리셋되는 속도가 빨라서, 한잔 한잔 사이의 간격과 워크플로우를 부드럽게 해 준다. 시각적인 조화를 망칠 수 있는 투박한 디자인도 지양해야 하기에 주의 깊게 살펴야 하지만, 몇 가지 유명한 제품들만 살펴보더라도 상당히 예쁜 디자인이 많다. 커피 시장만을 겨냥해 만드는 회사도 있고, 더해서  저울 별로 포터 필터를 좀 더 편하게 올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부속장치도 함께 만들어 판매하기도 한다.



널리 쓰이는 '아카이아(acaia)'사의 저울


외에도 오 하우스(Ohaus), 펠리시타(felicita)등의 브랜드들도 많이 쓰인다.









포터 필터



바리스타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금방 떠오르지만 막상 이름을 아는 사람은 잘 없는, '숟가락처럼 생긴 그거'이다. 곱게 분쇄한 커피를 담고 추출해내는 과정의 중간 역할을 하며, 속에는 분쇄한 원두 담는 '바스켓'이 있다. 머신을 구매할 경우 세트를 이루는 포터 필터를 함께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바리스타의 편의를 맞춰 따로 기능이 추가된 포터 필터들도 있다. 밑부분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스파웃이 있는 포터 필터와, 바스켓에서 바로 커피가 흘러나오게 하는 바텀 리스 포터 필터가 있다. 바텀 리스 포터 필터는 바리스타가 추출과정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그 균형을 맞추는데 더 편리하고, 크레마를 좀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맛에서는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어, 에스프레소 전문점이 아니라면 바텀 리스로 추출 양상을 살피고 실제  일을 할 때는 스파웃이 달린 포터 필터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바텀리스 포터필터와 그 추출 모습. 잘 추출된 커피일수록 물이 튀거나 하는 경우가 없고, 색이 선명한 줄무늬가 나타난다.






바스켓


포터 필터 안에 들어가 있는 직접적으로 커피와 맞닿는 부분이다. 이름처럼 바구니처럼 생겼으며, 바닥에는 추출된 에스프레소를 흘려보낼 작지만 많은 구멍들이 뚫려 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이게 분리되는 건 줄도 몰랐지만, 규격에 맞춰 전문적으로 바스켓만을 따로 제작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는 걸 알고 꽤 놀라기도 했다.


바스켓은 깊이에 따른 모양과 구멍이 수, 구멍이 뚫린 모양에 따라도 구분할 만큼 그 기술이 세분화되어있다. 어떤 바스켓을 써야 의도했던 맛과 수율에 맞게 추출할 수 있는지는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크게 VST와 IMS이 두 가지로 바스켓을 구분했다. 두 가지 바스켓은 깊이에 따른 바스켓 내부 모양이 다르다.



밑과 아래의 넓이가 같은 VST가 직관적으로 바스켓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와 비교해서 IMS바스켓은 깊이가 깊어질수록 아래 면적이 좁아진다. 깔때기와 비슷한 형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 모양의 차이 때문에, 똑같은 분쇄도와 똑같은 양으로 커피를 추출해도 추출이 끝나는 시간이 달라진다. 추출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은 녹아 나오는 커피의 총양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바리스타는 어떤 커피를 얼마만큼의 양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어떤 바스켓을 사용할지를 결정해 주어야 한다. 숙련된 바리스타의 경우 같은 커피를 사용해도 바스켓을 바꿈에 따라 디자인할 수 있는 맛의 범위가 늘어나게 되고, 과다, 과소 추출을 컨트롤할 수 있는 한 가지 장치가 더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맛의 차이는 일반인도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다르다.








 도징 링


원두 한알만 책상 위에 나뒹굴어도 손가락으로 집어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이걸 가루로 곱게 갈게 되면 어려움이 훨씬 더해진다. 로스율을 빡빡하게 관리해야 조금 더 이득을 볼 수 있는 바리스타에게는 그라인더에서 쏟아져 나오는 커피를 흘리지 않고 포터 필터에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큰 만족감을 주는지. 도징 링은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등장했다. 포터 필터 위에 가볍게 얹어 그라인더에서 나오는 커피를 받을 때에 깔때기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역할이지만 바리스타에게는 큰 만족감을 주는 고마운 도구이다.



위와 같이 포터피터 위에 얹어 커피를 받을때 양옆으로 떨어지는 양을 최소화 해준다.



스팀 피쳐



우유가 들어가는 따뜻한 음료를 주문할 때, 바리스타가 꺼내오는 스테인리스로 된 주전자 모양 컵을 얘기한다. 이 피쳐에 우유를 담아, 공기를 주입해 거품을 만들고, 또 곱게 부수는 과정을 거치면서, 고소한 라테를 만들어 낸다. 컵의 두께에 따라, 그리고 주둥이의 모양에 따라서, 혹은 손잡이가 있고 없고, 그 모양이 이렇고 저렇고에 따라 많은 종류가 있으며, 가격이 상당한 피쳐들도 많다.



모양도 다양하고, 색상도 다양하다, 대부분의 경우 스테인리스로 되어있지만, 테프론 재질로 되어있는 경우도 있다.


스티밍 된 우유가 흘러나오는 주둥이 부분을 '스파웃'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의 모양에 따라, 그리고 깊이에 따라서 사용자가 나오는 양과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피쳐에 따라 사용할 때의 방법을 조금씩 조절해 주어야 한다. 그래서 익숙한 사용자는 공구를 가지고 직접 스테인리스 입구 부분을 이리저리 만져 튜닝하기도 한다. 이름 있는 바리스타들은 직접 튜닝한 피쳐를 판매하기도 한다.



드립 포트



에스프레소보단 비교적으로 굵게 갈아낸 커피를 도톰하게 쌓아둔 채로 추출하는 브루잉 커피는 처음 그 개념이 생겼을 때에는 아무 주전자를 통해 물을 가득 채워 붓어 추출했다. 시간이 지나 브루잉 커피에서의 고른 추출을 지향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이 고안될 때 , 지금처럼 독특하게 생긴 주전자가 도움이 되었다. 길고 얇은 주둥이가 물줄기를 쉽게 컨트롤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포인트다. 추출법에 관해서는 너무 다양한 방법들이 있기에 특별히 언급하긴 어렵지만, 각 추출법마다 요구하는 물줄기의 굵기, 속도, 양, 온도까지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덧 드립 포트는 물 온도를 1도 단위로 조절할 수 있기도 하다.


보기만해도 지갑이 열릴만큼 예쁜 포트들이 많다.


고가의 제품들이 많기 때문에 각 회사마다 디자인에도 많은 신경을 쓰는 듯하다. 브루잉 커피의 경우 추출 시간이 5분여에 가까운데, 그동안 물의 온도가 떨어지면 맛의 변화가 크게 다가오기 때문에 기본적인 기능은 갖추고 있는 드립포트를 사용하는 것이 커피를 제대로 즐기는데에 좋다.







보다 보면 이런 부분까지도 생각한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디테일한 부분을 컨트롤하는 장비들도 많다. 처음엔 바리스타들의 모두 변태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선 싫어할 수가 없는 부분이다. 한잔 한잔의 커피를 완벽하게 내리겠다는 다짐이 이런 툴들의 수요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하나의 자리 잡은 레시피를 선택하지 않고 끝없이 새로운 맛을 찾아내기 위해 도전해가는 바리스타들 덕분에 커피라는 음료가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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