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진다는 것은

보스턴 이음채플 이야기

by 김동희

제가 중학생 시절부터 좋아한 축구팀이 있습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이라는 팀인데요, 마침 미국여행을 하는 기간이 프리시즌과 겹쳐서 미국 뉴저지에서 아스날과 박지성 선수의 팀으로 유명했던 맨유의 친선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경기가 있다는 소식에 여행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털어 형님과 함께 350달러짜리 티켓을 샀습니다. 비록 영국 현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좋아해 왔던 팀과 선수들을 볼 수 있다니 가슴이 뛰었습니다. 유니폼까지 빌려 경기를 기다리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축구경기장엔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아스날 팬은 '구너'라고 부르는데, 저도 그날은 방구석 구너가 아닌 경기장에서 '구너스'로 하나 되어 함께 응원을 했습니다. 친선경기였지만 사람들은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일어서서 경기를 봤고, 작은 판정에도 열정적으로 항의했습니다. 홈, 어웨이 응원석이 나누어지지 않아 팬들은 서로 섞여서 앉았어요. 두 팀 모두 팀컬러가 빨간색이라 잘 구분이 되지 않았는데, 경기를 시작하니 확연히 드러났습니다.

저희 바로 앞에는 가족이 축구를 보러 왔는데 경기 전 까지는 굉장히 화목했어요. 아버지는 맨유팬, 아들은 아스날 팬이었는데 경기가 시작하니 반칙이 나올 때마 신경전을 벌이며 목소리를 높이더라고요. 조금 멀리 서는 응원을 하며 감정이 격해져 서로 몸싸움이 일어나는 사태도 있었어요. 분위기는 아주 뜨거웠습니다. 파도타기 응원도 국가대표 경기보다 훨씬 많이 돈 거 같아요.

경기 티켓을 샀던 비상금은 여행 후 개강을 하면 학교를 다니며 사용할 생활비였습니다. 하지만 비상금을 모두 털어 경기를 본 가치가 있었습니다. 개강하고 돈이 없어 쫄쫄 굶으며 학기를 버티느라 힘들었지만, 그 선택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하루였어요.


단일민족 DNA를 지닌 저는 여러 인종, 문화가 하나로 섞인 미국에 와서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있습니다. '하나 됨'이요. 여행객이라는 신분과 한국적인 외모도 한몫을 한 거 같아요. 때문에 좀 달라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어요. 이방인이었기에 그 문화에 섞이는 건 어려웠죠. 그게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어디에 속하지 않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도 그 매력이 있어요.


그런데 축구경기를 보며 저는 '하나 됨'을 느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지만 왼쪽 가슴에 새겨진 아스날 앰블럼을 보며 경기를 하는 순간만큼은 강렬하게 하나 되는 경험을 했죠. 사실 제가 미국에 와서 이런 경험을 축구장에서 처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나 됨을 처음 느꼈던 곳은 교회였습니다. 한인교회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 자랑 아닌 자랑을 길게도 해버렸네요.


저는 신학과를 졸업한 신학도입니다. 미국에서 저를 맞아준 형님과 형수님도 같은 학교의 선배이자 같은 교회에서 나고 자란 가족 같은 분들이시죠.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자라 대학시절을 연애 후 바로 결혼에 골인한 영화 같은 스토리입니다. 형님은 신학대학원까지 졸업 후 코로나 시기에 고향인 강화도에서 저희와 함께 카페와 도서관을 지으시고 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어려운 신학공부를 더 하시겠노라고요.

형님은 보스턴에서는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해밀턴이라는 동네에 고든 콘웰이라는 신학교에서 유학을 하고 계셨습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아실만한 나니아 연대기를 쓴 c.s 루이스 목사님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하지요. 학교는 정말 공부하기 좋은 산골짜기에 있습니다. 캠퍼스를 산책하다 보면 언덕너머로 사슴들이 지나다닐 정도였으니까요. 형님은 이곳에서 평일에는 공부를 주말에는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계셨습니다. (참고로 제 글에 자주 언급되는 이 형님은 목사님이십니다.)



형님이 사역을 하시는 보스턴 온누리 교회는 한인교회인데,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청년들을 위해 학교에서 좀 더 접근성이 좋은 시내에 채플홀을 빌려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형님은 그 청년부를 맡아서 함께 사역을 하고 계셨죠. 저도 형님을 따라 미국에서 맞는 첫 주말에 한인교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음채플'은 청년부의 이름입니다. '이음'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는 음절(이)과 음절(음)을 자연스레 이어서 발음을 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i:um' 영어로 해도 예쁜 단어예요.


2학년 때 강화도에 이사와 쭉 한 교회만 다닌 저는 다른 교회에서 예배드린다는 것이 낯설었습니다. 저는 여름방학 기간 동안 2 달반정도 이음채플을 형님을 따라다니기로 하였는데, 모르는 사람들 밖에 없는 새로운 교회를 간다는 것이 뻘쭘하고 어색하더라고요. 그래도 형님과 형수님이 있고 동생도 있으니 다행이었습니다.


이음채플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유학을 온 유학생부터 미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인이지만 영어가 더 편한 청년들도 있었어요. 약대, 음대, 법대 등 여러 분야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다들 정말 똑똑한 분들밖에 없었죠. 석사, 박사 분들도 정말 많았습니다. 이질감을 좀 느끼긴 했어요.


하지만 함께 예배를 드리고 찬양하는 순간에는 서로가 하나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신앙과 믿음으로 하나 되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축구장에서 느꼈던 하나 됨 보다는 한 차원을 넘어서는 안정감과 위로를 받았지요. 같은 언어, 같은 문화로 모였기 때문에 그 효과가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와 예배를 어떤 위로를 주는 장소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것도 분명한 교회의 역할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사람이라는 존재가 무언가를 위해 함께 모이고 이어지며 힘을 얻는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갈 때 힘을 얻고요. 그래서 교회뿐 아니라 이러한 역할을 하는 공동체가 세상에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축구팀을 만드는 것도, 글을 좋아하는 쓰고 읽는 것을 즐기는 브런치에 가입하는 것도 우리 서로를 이어주며 삶의 안정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일들이에요.


몇 주 정도 지나니 이음채플의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다가와주었고, 제가 다가가면 친절하게 환대해 주었어요. 이음채플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타지에서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또 일하며 살아간다는 건 외롭고 어려운 싸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문화나 언어의 장벽, 차별 아닌 차별, 높아지기만 하는 물가 등을 견디며 또 공부까지 하는 것이 어디 쉽겠나요. 다들 삶 속에서 어려움과 힘든 것들이 있겠지요. 사실 여행객이라고 하면 금방 떠날 사람이기에 마음을 주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을 텐데, 다들 진심으로 대해주었습니다. 어쩌면 미국에서 먼저 지내며 경험했기에 여행객인 제 마음도 잘 헤아려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도와줄 것이 없는지 물어봐주고 여행 내내 정말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집에서 매일 시내로 나오기 힘들면 시내에 있는 자신들의 집에서 재워주겠다던 약대형들을 시작으로 미술관을 공짜로 다녀오라고 학생증으로 표를 끊어주고 보스턴에 맛집들을 추천해 주던 약대 누나들, 학생들만 출입하는 버클리 음대를 데려가 연습실을 구경시켜 주던 형, 독립기념일 폭죽놀이를 함께 보자고 학교 기숙사로 초대해 준 동생, 만나기만 하면 밥이고 커피고 다 사주던 누나와 자신이 졸업한 대학교 쪽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일을 하루 쉬며 투어를 시켜준 친구까지. 다 말하기도 힘들 만큼 큰 선물들을 받았어요. 덕분에 보스턴을 200%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다들 너무 감사합니다.


23년 여름순 가족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탯줄을 가위로 잘라야 할 만큼 단단하게 이어져있던 존재들입니다. 혼자 놀고, 먹고, 살기 좋은 시대이지만 그럴수록 서로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축구팀이든, 글쓰기든 무엇을 소재로 해서든지요. 좋아하는 것들을 위해 더 모이기에 힘쓰고 함께 공유하며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길 바랍니다.


혹시 아직 좋아하는 축구팀이 없다면, 프리미어리그에 아스날이라는 팀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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