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에서 식은땀 한 바가지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는지가 중요하다는데, 저는 미국을 여동생과 같이 왔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같이 오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3살 터울 동생은 자기도 어느 정도 나이가 먹으면 혼자 가볼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부모님께서 절대 여자 혼자는 여행을 보내지 않겠노라고 겁을 주시는 바람에 제 여행에 자기도 따라오겠다며 저를 따라 휴학을 했습니다. 내심 안된다고 하시길 기대했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둘이라면 그래도 가볼 만하다고요. 두 달 반동안 책임져야 하는 목숨이 하나 더 늘었다니 머리가 아팠습니다. 대마초, 총, 인종차별 등 혼자 여행할 거라고 생각할 때는 별 걱정도 안 되던 것들이 마구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취소도 안 되는 휴학버튼을 둘 다 눌렀고, 비행기표를 찾다가 뜬 100만 원짜리 보스턴 왕복 비행기표도 딱 2개가 남아 이미 결제를 해버린 터라 돌이킬 수도 없었습니다.
보스턴으로 가는 날 싼 티켓을 산 저희는 남는 자리에 따로 떨어져 앉을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항공사 직원이 체크인을 할 때 남매냐고 물어보더니 자리를 붙여주더라고요. 여행 내내 가족은 체크인을 같이 해야 편하니 붙어서 다니라고요. 출발은 좋았어요. 짐 무게도 초과 안 했고, 걸리는 물품도 없었고, 밤도 새워서 비행기에서 잘 준비까지. 11시간 비행은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5학년 때 캐나다를 다녀오고 나서 11년 만에 10시간 이상 비행을 해보는데, 엉덩이가 배기더라고요. 그래도 경유지에 도착은 무사히 했습니다.
시차 때문에 한국에서 6월 2일 오후 4시에 출발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6월 2일 오전 11시쯤 되었더라고요.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내리니 향긋한 섬유유연제향이 절 감쌌습니다. 여기가 아메리카구나!
샌프란시스코에서 경유를 해 보스턴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저는 이 경유하는 시간이 짧을수록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어디 가지도 못하고 공항에서 있어야 하니까요. 근데 저희가 구한 비행기표가 딱 그랬습니다. 한 3시간 정도만 기다리면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어요. 오, 이 정도면 기다릴만하지. 동생이랑 점심이나 먹고 보스턴으로 가면 되겠구나 했습니다. 미국도 도착했겠다, 이제 술술 풀리겠구나.
비행기에서 내린 후 경유지에서의 동선을 파악했습니다. 입국심사 먼저 하고, 짐 찾고. 어? 잠시만.
아 맞다. 입국심사.
여행의 낭만에 젖어 한 가지 놓치고 있던 게 있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많이 봤던 미국의 악명 높은 입국심사. 불법체류자들이 많아지면서 여행객들과 불법체류를 목적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걸러내는 심사기준이 더 높아져 여행객들도 잘 준비해두지 못하면 진실의 방으로 끌려가 질문공세를 당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요. 일단 입국심사대를 통과해야 짐을 부치고 대기를 할 수 있는 터라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입국심사대 직원들도 다 정색을 하고 심사를 하더라고요. MBTI가 N인 저는 굉장히 많이 졸았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말을 길게 하지 말고 단답식으로 딱딱 대답만 잘하면 문제없을 거라고 팁을 주어 그것만 생각하며 들어갔습니다.
1. 미국은 왜 왔어?
- 저 여행하러 왔는데요.
2. 얼마나 있다가 갈 거야?
- 두달 반이요.
3. 두달반? 왜 이렇게 오래 있어? 어디서 지낼 거야? 호텔표는 있어?
갑자기 질문이 많아지니 식은땀이 뻘뻘 났습니다. 리스닝은 되는데 스피킹이 거의 영유아 수준으로 퇴행하기 시작하고 그럴수록 말은 더 길어졌습니다.
- 아... 저는 아는 형님네 집에서 지낼 거예요. 형이 보스턴에서 유학하는 학생인데 방학에 놀러 온 거예요. 그래서 호텔표는 없습니다. (형님과 상의한 결과 숙소표는 미국에 와서 일정을 조정하고 잡기로 했기 때문에 미리 사두지 않았습니다.)
4. 돈은 얼마나 가져왔어?
- 4,000 달러요.
5. 4000달러 가지고 여행을 하겠다고? (의심의 눈초리 10초)
- 네, 다른 일정 말고는 거의 보스턴 형님네서 지낼 거라서요. 돈이 많이 필요 없어요. (나름 제 전재산이었는데, 턱없이 부족해 보였나 봅니다.)
6. 알겠어, 근데 동생이랑 같이 온 거 같은데 왜 혼자야?
- 엄... 아이 디든 노우 댓.
저는 입국심사를 동생이랑 같이 받을 수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들어보니 가족은 함께 받을 수 있고, 그렇게 해야 더 편하게 심사받고 갈 수 있다는 것. 다음부터는 꼭 붙어다니라는 말과 함께 나는 심사대를 통과해 빠져나왔습니다. 바로 옆에서 심사를 받았던 동생도 이쯤이면 나왔겠지 하며 보고 있는데, 꽤 오랫동안 직원과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더니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동생을 데리고 어디론가 가는 게 아닙니까. 굉장히 당황을 했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데리고 가버렸어요. 그때가 한 11시가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양인 여자는 특히나 검사를 엄격하게 한다고 들었는데, 아마도 일을 구하기 비교적 쉽고 성범죄에 연루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옆에 데리고 갈걸. 직원들에게 동생이 직원과 어디로 간 거냐고 물었지만 나오기 전까지 기다리라는 답변만 받았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모두 심사대를 통과하고 지나갈 때까지 동생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직원들이 모여 저를 바라보며 제 동생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름 토익 리스닝 490점인 저이지만, 다른 건 하나도 들리지 않고 'her brother', 'his sister'이 연달아 들렸습니다. 쟤 여동생 어쩌고, 쟤가 그 오빠인가 봐 저쩌고. 한마디라도 들어보려 옆으로 갔지만 제가 다가가니 모여있던 직원들은 이내 흩어졌습니다.
시간은 11시 20분 동생이 들어간 지 거의 20분이 넘어가는 중이었습니다. 20분이 2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제 머릿속에서 N이 날뛰었습니다. '아, 얘 다시 한국 가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영어로 제대로 말을 못 했나? 이거 길어지면 경유할 비행기 놓치는 거 아냐? 국제미아 되는 거 아냐? 다음 출발하는 보스턴 비행기표를 알아봐야 하나?'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이 시간을 계속 기다리다가는 경유도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일단 갈 준비부터 하자는 생각으로 짐을 먼저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폰도 개통하지 않아 연락도 잘 안되어 길이 엇갈릴까 걱정하긴 했지만 일단 와이파이가 잡혀 인스타 DM을 보내두고 짐을 찾으러 갔습니다.
'나오면 연락해'
입국심사 후에는 짐을 찾고 국내선 비행기로 다시 짐을 부치는 과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짜로 쓸 수 있는 수하물 카트를 미국에서는 제가 어렸을 적 홈플러스에서 동전 넣고 쓰는 카트처럼 카드를 결제해야 쓸 수 있게 묶여있더라고요. 개당 7달러. 마스터카드로 결제해 보는 미국에서의 첫 지출은 카트였습니다. 각자 캐리어 2개씩 총 4개, 배낭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온 저희는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카트에 만원을 쓰고 짐을 실어 짐을 부치러 가는 사람들을 마주 보며 역주행을 해 다시 동생이 있는 곳으로 가는 와중에 온 DM.
철없는 동생은 저도 잡혀간 줄 알았나 봅니다. 11시 30분. 거의 30분 면담을 한 후에야 동생이 나왔고 다행히 짐을 잘 부치고 게이트로 가서 대기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잡혀가도 뭐라고 못 할 스펙이었어요.
숙소표도 없고, 돈도 없지만(여행하는 기간치고는) 아는 사람 집에서 지낼 거라며 여행비자 최대 3개월 중 2개월 반을 채워가지고 입국하겠다는 동양인 여성. 굉장히 의심스럽지 않습니까. 남매가 함께 입국한 게 도움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행히도 통과를 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일단 미국에 와서 입국심사를 통과했다는 게 어디입니까.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한 번 걸리니 통과한 게 그렇게 감사하고 뿌듯하더라고요. 타지에서 느끼는 왠지 모를 어색함과 두려움도 어느 정도 뿌리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어디선가 솟았습니다. 차라리 일정이 생각한 대로 술술 풀리지 않는 이런 경험을 여행 초기에 한 것이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또 일어날 수도 있는데, 여행 일정을 좀 더 꼼꼼히 살피고 여러 상황에 미리 대비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1. 가족이라면 입국심사는 함께하자.
2. 입국심사를 하는 경유지는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두자.
샌프란시스코에서 골든 게이트는 못 봤지만 이 두 가지 교훈을 얻고 보스턴으로 출발했습니다.
동생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함께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여행한다는 건 어렵지만 의미 있는 일입니다. 자신을 포함해 함께하는 누군가의 몫까지 더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 과정에서 책임감도 생기고, 배려심도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도 함께 겪으니 지금 와서는 웃으면서 그때 그랬지 하며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고요. 같이 공유하는 추억이 생긴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아마 나중에 제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 이야기는 몇 번이고 할 거예요.
우리네 삶도 여행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결국 누군가와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긴 여행. 여행은 혼자라도 할 수 있지만 사는 건 그렇게 하기가 참 쉽지가 않아요. 가끔은 함께 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을 졸이는 일도, 기뻐할 일도 생깁니다. 아마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힘든 것도, 기쁜 것도 다 누군가의 덕분입니다. 서로 책임지고 함께 가면 빨리 가지는 못해도 멀리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까지는 잘 도착했습니다. 보스턴 공항에 저희를 태우러 온 형님 부부의 얼굴을 보니 그제야 긴장으로 굳어있던 어깨가 눈 녹듯 풀렸습니다. 아 드디어 보스턴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