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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디의 이너콘서트 Feb 09. 2021

아빠의 기대

너의 공부가 인과관계가 되어주길

1. 졸업생의 사분의 일이 아이비리그를 진학하는 천하무적 명문고등학교


세스 다비도위츠의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는 미국 공립고등학교 중 모든 중산층 부모가 자녀를 입학시키고 싶어 하는 스타이버선트 고등학교의 사례가 나온다.


이 학교는 1억 5천만 달러짜리 10층 건물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졸업생의 사분의 일은 아이비리그나 그에 준하는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최상위 고등학교라고 한다. 이 때문에 매년 졸업식에는 유명한 연예인과 기업인들이 졸업 연사를 하러 오기도 한다.


게다가 공립학교인 탓에 학비는 무료이며 입학 자격도 하루 동안 실시되는 입학시험을 보는 게 전부라고 하니 경쟁률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평균 2만 7천 명이 응시하고 합격율은 5%에도 채 미치지 않는데, 경쟁률로 치면 20대 1 정도 되는 것 같다. 


한 사례로 스타이버선트에 시험을 보았으나 2점 차이로 아깝게 불합격한 일마즈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자신이 나온 대학과 다니고 있는 직장에 만족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10년 전 스타이버선트에 합격을 했었다면 자신의 인생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까? 


그때 만약 OO학교를 지원했다면...
그때 만약 그 여자에게 고백을 했다면...
그때 만약 OO회사의 주식을 샀더라면... 


우리도 이런 후회와 아쉬움이 만든 '그때 만약...'이라는 상상을 수없이 한다. 그 만약이 과거에서 실제 이루어졌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정말 달라졌을까?



2. 스타이버선트에 떨어진 학생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책 <모두 거짓말을 한다>에서는 '엘리트 환상'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소개하는데 이 논문에서는 커트라인에서 1~2점 차이로 합격한 학생과 떨어진 학생들 수 백명의 표본을 모아 조사를 했다. 


입학시험 당시 비슷한 실력의 학생이었으니, 그들의 대학 입학 결과나 이후 직장에서의 연봉 등 물질적 지표가 차이가 있어야  스타이버선트 고등학교를 다닌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스타이버선트 효과라고 하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비교된 대다수의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비슷한 AP점수와 SAT 점수를 받았으며 입학한 대학의 순위도 차이가 없었다.


특히 책에서는 1점 차로 합격한 세라와 1점 차로 불합격한 제시카의 사례를 보여주었는데 (물론 이 사례는 극단적인 경우를 보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사례다) 이들의 고등학교 생활만 비교해 보자면, 세라는 시험 중심으로 교육하는 스타이버선트의 분위기에 혼란을 느끼고 약간의 방황을 한 반면, 제시카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으며 (상대적으로) 즐겁게 고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세라도 약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런 혼란을 잘 극복하고 시험보다는 교육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인문 대학교로 진로를 잡게 되고 바라던 웨슬리언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자신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열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후 공익 변호사가 되었다.


제시카의 경우는, 그녀가 다닌 고등학교에 홀로코스트 박물관이 있었는데 그 덕분에 자신이 큐레이션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후 코넬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적응할 줄 알며, 또 성공할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장점과 개선점을 찾아낸다. 사람은 하기 나름이다.



3. 혼자 공부하는 아이


모든 사람이 기본적으로 상황에 적응하고, 또 그 상황을 개선해 내려는 의지를 가졌다면 내 아이도 못 할 이유는 없다. 분명 (내가 보기에는) 똑똑하고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도 잘 극복하며 커왔다. 앞으로 겪을 더 많은 어려움도 방법을 찾아 잘 극복해 낼 것이라 부모로서 의심치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내 아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며, 또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학교 수업 외에는 혼자서 공부를 하도록 하고 있다. 


이제 자기 방식대로 혼자 공부 한지 2년쯤 되었다. 


아직은 갈 길이 아주 먼데, 예를 들어 어려운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좌절해서 책에 머리를 처박고 있거나, 엄마 아빠에게 짜증을 내기도 한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게임을 한다. 그리고 내용이 어려워질수록 게임으로 대체되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본다. 실패는 본인이 직접 겪어봐야 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본인이 가는 방향이 어디인지만 깨달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끝없이 믿어주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


물론 여기까지만 말하면 참 아름다운 그림이겠지만, 솔직히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도 적지 않다.  마치 주식 거래 창을 매일 들여다보면 볼수록 불안해지는 것처럼, 아이가 공부하는 걸 보면 참견하고 싶고 잔소리를 하고 싶어 진다. 


아빠는 아이의 교육에 관여를 하지 않을수록 성과가 난다고 하는데... 내가 일반적인 상식에서 너무 벗어나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사람들이 다 하는 걸 안하는 건 늘 두렵다. 그래서 마음은 계속 불안하고 얇은 귀는 팔랑거린다. 


다행히 아직은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다. 내가 기대하는 성과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4. 상관관계는 있지만 인과관계는 없다.


스타이버선트 고등학교의 사례가 보여주는 교훈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스타이버선트 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이 명문대학에 가는 것은 스타이버선트의 교과과정이나 교육방법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수한 학생들이 모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특목고와 자사고의 대학 진학률이 높은 것도 같은 이유다. 물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특목고와 자사고를 가기 위해 1차적으로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 하고, 들어간 이후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끼리 모여서 더 치열하게 경쟁을 하게 되니 좋은 대학을 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특목고와 자사고도 대학 입시를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나름의 '특수 목적'을 잘 수행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특목고와 자사고를 나쁘게 보지 않는다. 우리 아이가 혹시라도 성적이 좋아 이런 학교를 가고 싶다고 하면 나는 보낼 생각이다. (못 가게 되면, 안 보냈다고 말할 것이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우리 아이 공부의 목적이 대학 입시만을 위한 것이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시험을 잘 보고 학교만 잘 들어갔다고 해서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 되거나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인과관계'는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과정 속에서 내 아이가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실패를 좀 겪더라도 자신이 진정으로 관심 갖는 분야를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스타이버선트에 합격한 세라나 불합격한  제시카 두 사람 모두 결국은 잘해 내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지금의 공부가 그 인과관계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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