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주 전, 동네 실내 골프 연습장에서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데 여자 사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회원님, 이번 달 새로 등록하면서 라커비는 안 내셨네요?"
"네? 그럴 리가요, 다 냈는데요."
"저한테 주셨어요?"
"아니요. 남편분께 드렸어요."
여자 사장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시선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로 짧게 "네"라고 말했다. 손님한테 돈 냈냐고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조심스러울 텐데, 자기 남편한테 돈을 냈다고 대답한 사람한테 되려 짜증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찜찜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모니터에 고정된 그 여자의 눈 빛은 '거짓말하고 있네. 시스템에 돈 안 냈다고 다 적어놨거든!'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을 더듬어 좀 더 정확하고 확실한 기억을 찾고 싶었다. 연습장 내의 그 당시 장면, 남자 사장과 나눴던 대화, 현금 할인을 받으려고 내 지갑과 와이프 지갑을 동원했던 일도 조금씩 기억났다.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자신이 없었다. 그 여자의 짜증과 경멸이 담긴 눈 빛이 떠오르며, 내 기억이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지금 억지로 상상해 내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 내가 고작 만원 떼어먹으려고 거짓말을 한 사람이 돼버리는 건가?'
금요일 저녁 막걸리 한 병과 맥주 두 캔으로 한 주를 마무리하는 나의 작은 의식은 그 여자의 만 원짜리 의심 한 방으로 엉망이 되었다. 열 받아서 먹는 술이 몸에 제일 안 좋은 법. 얼굴이 금세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고작 "네" 한마디로 사람의 기분을 이렇게 뒤집어 놓을 수 있다니. 그 짧은 말의 강렬함과 효율성에 감탄했다.
찜찜한 마음을 없애려고 만원을 내기로 했다. 그 여자의 찌푸려진 미간에 배어있는 거짓말쟁이 꼰대에 대한 경멸이 사라지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물론 내가 돈을 내면 ‘그럼 그렇지!’ 하며 자신의 혐오를 더 굳건히 재확인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든 일요일 오후 늦게 연습장에 갔다. 이번엔 남자 사장이 앉아있었다.
"사장님, 2주 전에 제가 라커 비용을 안 드렸던가요? 제 기억에는 드린 것 같은데..."
"아, 그거요! 제가 노트에 적어놓고 시스템에 업데이트를 안 했어요. 여기 보세요. 제가 적어놨잖아요. 하하하"
남자 사장이 천진난만하게 말했다. 어이가 없었다. 뭐지, 이 부부는?
며칠 후, 여자 사장을 만났는데 미안한 기색도 없고 역시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 내가 왜 이 여자의 눈길을 갈구하는 처지가 된 걸까?) 본인 기분 나쁜 건 손님한테 다 드러내 놓고, 정작 본인은 어떻게 저렇게 편할 수가 있을까. 인생 참 편하게 산다 싶었다. 하지만 그 여자에 대한 분노는 이내 나 스스로에게로 화살이 되어 돌아왔다. 남이 눈만 흘겨도 밤잠을 설치는 나의 소심함이 미웠다. 2주도 지나지 않은 일을 확신하지 못하는 무능한 내 기억력이 원망스러웠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고작 만 원짜리 사건이라는 것에 더 비참해졌다.
[2]
일출 06시 25분. 우리 팀 티오프 시간은 06시 47분, 새벽 두 번째 팀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클럽하우스에서 나와 카트를 타려고 하는데 골프백이 3개만 실려있었다.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코로나 때문에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는 친구 녀석(우리는 그를 차 상(車 さん)이라고 불렀다.)의 가방이 없었다.
"캐디님, 저희 가방 하나가 없네요? 미즈노 가방 못 보셨어요?"
나는 캐디와 함께 가방을 싣는 주차장으로 가서 주변을 둘러봤지만 가방은 찾을 수 없었다. 캐디와 매니저를 불러 물어보니, 가방을 내린 곳에서부터 카트까지 사이에 단층짜리 엘리베이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가방이 다른 곳으로 전달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했다. 그 설명이 끝나자 이내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들을 (매우 정중하게) 쏟아붓기 시작했다. 가방에 이름은 쓰여 있냐, 한글로 쓰여있냐, 한자로 쓰여있냐, 차에서 내린 것은 맞냐.
차를 함께 타고 온 친구들은 분명히 가방 내리는 걸 봤다고 했다. 나는 혹시나 싶어 차 상과 함께 주차장까지 가서 차 트렁크도 확인했다. 트렁크는 텅 비어있었다. 확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도 뜨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차 백미러로 가방 세 개를 내리는 것을 봤다는 녀석들이 혹시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가방 실을 때부터 빼놓고 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다들 너무 화가 나 있어서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골프장 측은 CCTV로 확인 중이라고 했다. 우리 차에서 그 가방을 내렸는지부터 확인하겠다는 의미였다. 다시 말해 가방 가져온 게 맞냐는 의심이었다. 이 말을 듣자 참고 있던 컨설턴트 최 상무가 드디어 폭발했다.
“우리는 확인할 것 다 했습니다. 이 골프장은 골프백을 찾기 위해서 지금 무슨 액션을 취하고 계신가요? 그리고 지금 어디까지 파악이 된 겁니까?”
“일단 CCTV 확인을 먼저 하고…”
“당장 조치할 수 있는 것부터 먼저 하시라구요! 무전을 쳐서 다른 카트부터 확인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가 당신들 CCTV 확인하는 거 기다리려고 새벽 4시에 일어났는 줄 아세요?”
차 상은 캐디를 붙잡고, 최 상무는 매니저를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난장판이 되었다.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혹시라도 CCTV에 가방을 내리는 모습이 안 나오면 어떻게 되는 건가? 골프 라운딩을 망친 것보다 그 민망함이 더 걱정되었다. 그리고 우리 티오프 시간은 이미 30분이 지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다음 시간 티오프를 준비하러 카트 한 대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우리는 동시에 '어어어? 저기요!!'하고 카트를 불러 세웠다.
차 상의 가방은 거기에 있었다.
[3]
라운딩을 마치고 골프장 근처 쌈밥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녀석이 입을 열었다.
"야, 근데... 아까 가방 없어졌을 때 처음부터 가방을 안 실은 게 아닌가 싶어서 마음이 엄청 쫄리더라."
그러자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고 했다. 분명히 가방을 본 것 같은데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고, 화내고 있는 중에도 이러는 게 맞나 걱정스러웠다고 했다. 이 녀석들도, 어쩔 수 없이 나이를 먹고 있구나 싶었다.
골프장에서 꼰대 네 명이 그토록 화가 났던 이유는 어쩌면 골프백이 없어졌다는 상황 자체보다 우리의 진술을 놓고 추궁당하는 그 순간, 고작 한두 시간 전의 기억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나약한 기억력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동네 연습장 사장의 불신에 찬 표정을 보면서 며칠 동안이나 불쾌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던 것도 아마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이제 기억을 더듬는 일마저도 나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시험하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