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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일도 아닙니까?

서포트와 컨트롤의 사이에서

by Marguerite 마가렛트 Mar 20. 2025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


한 회사에서 비서로만 10년째 근무하고 있지만 최근  “공용 비서제” 도입으로 나는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나?


작년부터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미리 짐작은 했지만, 역시 아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온도 차이가 크다.


예전에는 비서에 역할이 무척이나 컸기에

하루 24시간, 주말도 없이 임원 서포트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다.

내 시간도 내 일정도 내 마음도 없이 그저 충성을 다하며 일을 했던 시대를 살던 자들에게

이제는 3명의 임원을 맡겨버리는 <공용 비서> 제도를 통보받았다.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HR도 어쩔 수 없다는 자세를 취하였다.


“나만 이상한 건가...?”


비서들은

하나같이 마음의 공통된 씨앗이 있다.

그들은 충성심이 있다.  

이런 표현은 그렇지만 진돗개 같다.

주인에 대한 충성과 열정 그리고 당당함..


이들은 하나같이 아니 바보같이 내 보스가 잘 됐으면 좋겠고, 그에 연관되어 어떠한 일들도 자질구레한 사소한 일들도 불만을 표할 수 있지만 오히려 당연하듯 그저 묵묵히 다 해내고 만들어 낸다.


이것이 일반 오피스 워커들이랑 다른 점이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만

내 이야기를 주장할 수 없고

내가 가고 싶은 부서로 이동 신청할 수 없으며

언제나 늘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

이 또한 심각한 감정노동이다.


임원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친절하고 싹싹하며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고

그저 강아지처럼  순딩 순딩한 충성스러운

그리고 약간의 부족함으로  함부로 선을 넘지 않는

예쁘고 어린 비서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을 지켜본 결과

계약직으로 입사해서 정규직 된 사람들의 공통점과

임원들에게 인기가 많은 비서들의 공통점을 보면

하나같이 그런 성향과 색깔을 가진 비서들을

좋아하고 옆에 두려고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자.

그저 시키는 일만 충성스럽게 여성스럽게

친절하게 해내고 말도 예쁘게  하는 자.

그것이 대한민국의 비서.


직장생활 20년 여성근로자이자

비서로 10년 이상 직종에 임하면서

퇴사하고 싶은 생각이 점점 들게 만드는 건

무엇 때문일까?


비서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시간, 일에 비중이 더 크다.

하나같이 내 임원이 잘되길 바라며 통로 역할을 한다.

비서는 나보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는 자들이 많다.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비서에 대한 자리가 사라지고..

결국 팀 코디네이션 역할 및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업무를 정해주었지만

이미 그렇게 정하지 않아도 충분히 하고 있었다.


비서에 대한 역할 비중이 너무나 하찮은 듯

오히려 우리가 퇴물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

화가 날 뿐이다.


회사라는 건 다 그런 거고

산다는 건 다 그런 거라 하지만


그리고..

4년제와 2년제 사이에 갭은 너무나 크다

그러면 공부를 잘하지 그랬냐는 말을 할 수도 있고

내가 공부를 덜 해서 지금 이렇게 사는 거야라고

스스로 낮추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다.

과연 4년제 나와서 공채로 입사하고

회사에서 승진을 차고 차곡 밟으며 상사 비위 맞추고

획일화되어 가는 삶은 괜찮은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공채와 경력자들은 승진이 있지만

우리들은 승진이 없다는 것.

그들은 힘든 일을 하고 우리는 쉬운 일을 한다는 것

그들은 머리 써 가며 일하지만 우리는 시간 때우며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것이 대기업 비서들을 대하는 시선이다.


기회도 없고

그저 시간만 갈 뿐이다.


더 이상 발전이 없다고 생각할 때

아름답게 떠나는 게 제일 좋은 것이다.


여러분을 모시게 되면서 어려운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건 티도 안 나고. 알 수도 없다.


다만 주어진 직무에서 최선을 다할 뿐..



2019년 10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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