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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도련 Jul 29. 2020

낯선 것을 대접하는 배려

아빠가 양주를 모으는 이유


여우와 두루미.


벌써 수많은 아이들에게 읽힌 이솝우화입니다. 상대의 입 모양을 고려하지 않은 접시, 즉 ‘배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마 둘은 충분히 사이가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우 앞에는 납작한 접시를, 두루미 앞은 호리병을 놓아주었다면요. 낯선 공간에서 나에게 익숙함을 준다는 것. 그야말로 최고의 배려니까요. 하지만 상대 또한 낯선 것을 함께 해야 한다면 어떨까요? 그리고 나를 위해 아껴 두었다면요?


설이나 추석. 소위 <민족 대명절>에는 아빠의 퇴근이 기다려지곤 했습니다. 갖가지 선물상자를 들고 풍족하게 돌아오는 아빠 모습, 보기 좋았거든요. 어느 날에는 손이 모자라 내가 주차장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마트 진열대에서 본 참치세트와 운이 좋으면 육류 같은 것들. 냉장고가 채워질 무렵엔 엄마와 나 모두 기진맥진이었지요. 이렇게 서로 주고받고 하는 날이 즐거웠습니다.

우리에게 반찬으로 오르는 익숙한 것들도 많았지만 아빠는 유독 '술'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어두운 쇼핑백 안에 커다랗고 왠지 기품까지 있어 보이는 상자. 그 속에는 대부분 양주 세트가, 새겨진 꽃문양이 금박으로 덮인 보자기에는 전통주가 들어있었습니다. 엄마는 '너희 아빠는 밖에서 얼마나 애주가로 소문이 났길래 다들 술을 보내주니.'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아빠가 하는 말이 좋았습니다.

"그건 나중에 사위  거야. 같이 마셔야지."

네, 아직 내 나이 반 오십입니다. 지금 시집을 가고 밑으로 아이가 둘이라면 이 글이 농도 짙은 진국일 텐데 아쉽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사위' 누가 될지 궁금했습니다. 어서 미래 남편을 운명처럼 만나 결혼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아빠의 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 외식을 나가면 아빠는 소주와 맥주를 시킵니다. 그것 말고는 딱히 와인을 찾아다닌 적 없고 막걸리 전문 주점을 가본 것도 드물었습니다.

드라마 속 회장님 아들이나 딸이 속상한 일을 겪으면 찾아가는 고급진 <> 더더욱 가본일이 없지요. 그곳은 마치 심각한 <고민거리의 성지>가 됩니다. '출생의 비밀' 또는 '회사 기밀에 대한 실망'을 고뇌합니다. 주말 가족드라마나 아침드라마를 챙겨보는 희귀한 20대라 <>에 대한 나의 인상은 이렇습니다.

바텐더가 손님 앞에서 흰 천으로 슥슥 잔을 닦고 한 줄로 나란히 옆으로 앉는 걸 본 적 있을 겁니다. 주인공들은 꼭 한숨을 내쉬고 소주잔보다 조금 긴 잔에 술을 담습니다. 아니면 얼음이 반 이상 채워진 잔일 것입니다. 술의 빛깔은 열에 아홉은 보리차 색이겠지요. 그러나 대학을 갓 졸업한 나에게 친숙한 술집과 너무 다른 모습. '저렇게 한 잔을 털어 넣으면 해결책이 떠오를까?' 했습니다. 경영하는 회사도 없고 큰 기업 사모님도 아니지만요. 마주 보고서 건배할 수도 없지만 꼭 한 번은 <>에 가보고 싶었습니다.  

내게 유리병에 담긴 양주는 모두 <>에서 팔 것 같은 모양새였습니다. 보리차와 구분이 힘든 묽은 갈색. 그리고 빤딱이는 천에 싸인 속상자. 내가 명절에 보던 바로 그런 술 말입니다. 앞서 말했 듯 우리 아빠도 '소맥' 이란 칵테일은 기가 막히게 만들어 주지만 양주의 세계엔 문외한입니다. 내가 왠지 비싸고 멀게 느끼  아빠도 그런가 봅니다. 받아온 양주를 거실 진열장에 조심스럽게 넣고 꺼내는 일이 없습니다. 매해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진열장은 빽빽하게 찼습니다. 출처도 전부 잊고 지내기 일쑤였지요. 성인이 된 동생이 진열장을 지나며 '이건 대체 언제 다 먹을 거야?'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습니다.

"우리 사위 오는 날에 주지 ."

어릴 적에는 아빠의 말이 나의 먼 결혼을 암시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보게 될 며느리보다 사위를 더 생각해주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5년 후면 서른이 될 지금은 한 뼘 더 느끼게 되었지요. 전에는 또렷하지 않았던 것을요. 이를 테면,  말을 듣고 밀려오는 뭉클함과 고요함입니다.

아직 나조차 얼굴도, 주소도 모르는 나의 남편. 과연 술을 잘하는 사람일까? 의문도 들고 아빠와 술을 놓고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분명한 건 무척 복 받은 사람이겠구나, 합니다. 우리 아빠가 익숙하진 않지만 나름 귀하다 여기는 것을 오랜 시간 아껴서 대접할 사람이니까요. 나의 뭉클함은 바로 이런 이유였습니다.

이제 역사가 꽤 된 이 말은 가끔 연애 중에도 떠오르기 마련입니다. 주량이 어느 정도 되던 친구를 만날 땐 " 양주도  먹니?" 묻기도 하고, 아예 술을 못했던 친구를 보면 속으로 '큰일 났다. 우리  인사  오겠네.' 했지요. 누구나 사귈 당시에는 이별을 생각하지 않으니 타당한 어림이었습니다. 지나서야 우스운 걱정이 되었지만요. 언젠가 아빠의 <양주 메이트>가 나타난다면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아빠가  날을 위해  낯설던 것을 꺼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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