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요즘 그렇거든요. 제가 저를 돌아봤을 때, 계속해서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무기력해진 것 같아요. 뭘 해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말이죠. 저를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오랜 기간 대학원을 준비했고 어쩌다 보니 입학 직전, 다른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다소 엉뚱한 이유로 그만두게 되었어요. 제가 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열심히 새로운 것을 해보고 있구요. 브런치에 '어감' 시리즈를 다시 연재하게 된 것도 새로운 것 중 하나이지요.
혹시 정말 바쁘게 산 시절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입시, 학업, 취미, 일. 그게 무엇이든 간에요. 그 과정에서 이루어낸 작은 성과들을 잘 기억하고 계신가요? 사소한 것이어도 좋아요. 시험에서 내가 원하는 등급이나 학점을 받았다든지, 성적 향상을 조금이라도 이루어냈다든지 하는 거요. 직장인의 경우 해내야 할 업무를 충실히 행한 것도 포함되겠죠. 멋지고 거대한 무언가가 없더라도요. 그리고 그 성과들에 충분한 보상을 주셨는지도 여쭤보고 싶어요. 돈이나, 명예처럼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 말고. 스스로 보상을 준 경험.
그런 경험이 없으시다면 밑 도식을 흥미롭게 생각하실 것 같아요. 학습된 무기력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에요.
여기서 B군을 볼까요? 저기에 있는 강아지가 마치 저 같았어요.
대피공간 없이 하루하루 계속 이어지는 준비기간. 이 끝없는 레이스에서 지치거나 뒤쳐지면 나만 손해다,라는 생각 때문에 계속계속 달리는 거죠. 어떠한 대피공간도, 보상도 없이요. 그러다 보니, 대피를 포기한 여섯 마리의 강아지처럼. 우리는 계속 무기력해지는 것 아닐까요. 마음에도 대피공간이 필요할 텐데...
무기력은 무서워요. 도전할 희망조차 앗아가는 것만 같죠. 마치 탈진 같기도 하고, 번아웃 같기도 하고. 유사한 측면들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는 무기력해진 나 자신을 인정하고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온 작은 성과들에 충분한 정신적 보상을 해주어야 해요. 나를 채찍질하고, 더 달려가라고 하다 보면 더 큰 무기력과 번아웃이 찾아올지도 모르니까요.
시간은 흘러가요. 때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말이 너무 폭력적으로 들릴 때가 있었어요. 이 시간 1분 1초를 꽉 채워서 살아야 해, 의미 있게 보내야 해 따위의 성과지향적인 태도로 살아가는 모든 순간은 정말 피가 말리는 압박감에 시달려야만 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내가 지금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언젠가 덜어진다는, 이 힘든 기간이 지나간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삶을 크게 보자고요. 이건 제가 저에게 하는 말이에요. 삶에는 다양한 순간들이 올 테니 이 기간도 그저 많은 순간 중 하나겠구나,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오늘 하루에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건강한 밥을 해 먹고 좋은 노래를 듣고, 가족들과 자잘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작은 것에서 작은 보람을 찾는 습관을 들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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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스스로를 충분히 다독이는 날들을 보내고 있나요? 한 번 기록해 보세요. 생각만으로는 조금 힘들지도 몰라요. 저는 기록의 힘을 믿어요. 이 글의 댓글이든, 지금 당장 워드에 작성하든 종이에 써보든. 글을 눈으로 보고 다시 한번 마음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요.
어감
어감 시리즈의 두 가지 뜻.
1. 말 혹은 글의 미적 아름다움을 뜻하는 '어감',
2. 어색한 감정의 줄임말 '어감'.
지금, 당신의 감정은 어떤가요? 스스로 다루기 참 어색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함께 기록해 봐요. 그리고 그 위로, 새로운 마음이 돋아나는 것을 느껴보세요. 글을 쓰면 쓸수록 든든한 생각이 자라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