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가
20대 중반까지 오로지 한국에서만 살다가 다른 나라로 가게 되었을 때, 감각적으로 새로이 느껴지는 것들은 아주 단순하였다. 파스텔톤의 색과 곡선을 살린 이미지들, 표지판 글자들 사이의 띄엄 띄엄한 간격, 각 버스 정류장의 이름을 알려주는 녹음된 프랑스 여성 목소리, 인간과 조용히 공생하는 거대 동물과 같이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는 트램, 프랑스인들이 내뱉는 특유한 억양의 감탄사.
이러한 요소들이 나를 둘러싸게 되면 길가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경험들이 언제나 설렘만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들어가고 체험해야 하는데 그 앞에서
멈칫하게 만드는 것, 프랑스 초기 생활에서 가장 먼저 이질감을 주었던 것, 바로 ‘문’이다.
친구 집을 방문하는 것이 그 시작점이었다. 파리에는 지어진지 100년이 넘은 건물들이 허다하니 구식 엘리베이터들 역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 날은 친구 스튜디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어둠 속에 고요히 흐르는 물줄기처럼 엘리베이터가 스르륵 내려왔다.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나는 당연히도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내 눈앞에 돌연 나타난 것은 직접 열어야 하는 또 하나의 내부 수동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앞에서 우왕좌왕하였다. 문을 앞으로 밀어 보아도 열리지 않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미닫이문임을 알고 옆으로 문을 밀고 나서야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다.
이 엘리베이터의 구조는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문들과 비슷하였다.
구식이던, 현대식이던 프랑스에서 만난 많은 문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파리에는 19세기 중반부터 실행된 도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로 인해 과거의 화려한 양식을 지향한 건축물들이 많다. 당연히 문을 허투루 만들 리가 없다. 가문의 문장과 식물 장식이 문을 둘러싼 경우도 있지만 근엄한, 때로는 잔뜩 성이 난 듯한 얼굴 조각이 문 위, 양 옆에 배치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막 정착을 시작한 외국인의 눈에는 여기저기 보이는 모든 건물들이 육중하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친구집의 이중문 엘리베이터 이후, 두 번째로 나를 난감하게 만든 문은 바로 내가 계좌를 만들어야 하는 한 은행 지점의 문이었다. 그 은행의 문들은 모두유리로 만들어지고 철제 프레임이 달린 까닭에 은행 외부에서 들여다보면 내부가 보였다. 첫 번째 문을 열고 들어가 두 번째 문 역시 열어야 은행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 은행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구조이다. 그렇기에 나의 당혹감은 더 크게 다가왔다.
파리 도착 이틀 차, 은행의 외부 문을 어떻게 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당황해서 벌건 대낮에 진땀이 날 정도였다. 머뭇거리던 차, 다른 사람이 들어가려고 하길래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 그 사람이 문 손잡이 근처에 있는 작은 동그라미 버튼을 누르는 것을 보았다. 순간 동그란 버튼의 테투리가 초록색 불빛으로 반짝거리고 그제야 문은 열렸다. 두 번째 문역시 그 사람 뒤를 쫒아 들어갔다. 이번에도 동그란 버튼을 눌러야 하지만 첫 번째 문과 달리 안내 데스크의 직원이 그쪽에서 문을 열어주는 뭔가를 눌러야 열리는 식이었다.
지금이야 버튼을 몇 개를 누르던 아무렇지 않지만 그때는 괜스레 기운이 빠지고 좀 더 민첩하지 못했던 나 자신을 탓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에서는 계좌를 만들려면 아무 은행이나 들어가서 그날 당장 만들 수 없다. 꼭 등록된 거주지 근처의 은행에 접촉하여 약속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 보통 3,4일 또는 일주일 후에 약속이 잡히기도 한다. 계좌를 여는 방식조차도 여러 문이 존재하는 듯한데 실제 은행 문까지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셈이었다.
문이 주는 심리적 무게는 꽤나 육중하다.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 그 자체이기도 하면서 내가 맘대로 한 공간을 드나들 수 없도록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관문을 통과하다’와 같은 표현을 쓰며 발전하여 상위 단계로 진입하는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사실 은행 약속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은 나에게 있어 성공적인 유학 생활의 첫 관문이었던 것이다. 이중 문과 그 버튼들이 안겨준 무안함은 그날 아침부터 긴장하며 담당 은행 직원과 나눌 대화들, 은행 용어들을 머릿속에 되뇌며 집을 나선 한 외국인 유학생의 마음에 꽤 강력하게 작용하였다.
사실, 프랑스 문에 대한 나의 당혹스러운 경험은 유학 이전에 떠났던 유럽여행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때 카우치서핑을 이용하여 한 프랑스 부부 집에 이틀을 머물렀다. 둘째 날은 새벽부터 일어나 파리의 아침 풍경을 즐기며 한적한 룩셈부르크 공원을 쏘다닐 계획이었다. 새벽에 조심스럽게 일어나 집을 나서 나선형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계단 불을 켜고 싶었지만 초인종과 계단 불 스위치를 분간할 수가 없어 엄한 새벽녘에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를까 겁이나 휴대폰 불빛을 이용하였다.
그런데 1층 건물 출입문이 문제였다. 아무리 밀어도 열리지 않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굉장히 당황하며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문을 열 수 있는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40분을 서성였다…! 그러다가 계단 복도가 밝아지며 한 사람이 내려왔고 여유롭게 내게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곤 그대로 자신의 길을 나섰다. 문은 손잡이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옆 벽면에 있는 네모난 스위치를 눌러야 걸개가 풀렸고 삐-소리가 날 때 문을 밀어야했다. 휴대폰 불빛으로 아무리 주위를 꼼꼼하게 뒤져도 보이지 않던 스위치였다. 그 당시도 파리의 새벽 풍경에 대한 설레는 마음이 한풀 꺾여 약간 초라한 마음으로 하루 여행을 시작한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파리에서 유학을 진행하며 나는 여러 건물들을 드나들게 되었다. 점 점 이 곳의 문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문을 못 연다고 거기서 의미 부여를 하는 시기는 지나간 지 오래이다. 이제는 가끔 가보지 못한 파리 내의 여러 동네들을 산책하여 다채롭게 장식된 문, 발코니 장식들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한다.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발을 동 동 구르던 그 시절보다 한결 태평한 마음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파리의 화려하고 육중한 문들은 여전히 어딘가로 나를 이동시켜줄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대신 도도하게 하나의 ’ 관람대상’이 되어주었다.
도시 안에는 여러 건물 그리고 여러 문들이 있다. 그런데 시각을 조금 더 확대해보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문이 존재한다. 바로 공항이다. 해외생활 5년 차에 접어들어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게 이 공항이다. 특히 소지품을 검사하는 검문 벨트 앞에서 나는 유독 긴장을 한다. 벨트는 돌아가고 있고 빠른 시간 안에 코트, 휴대폰, 여권및 비행기표, 각종 기계들을 펼쳐놓아야 한다는 미세한 압박감이 있다. 검문 벨트 앞에선 한국어, 영어, 불어 모두 잘 알아듣지 못하는 0개 국어자로 전락하고 만다.
어릴 적부터 해외여행 및 출장을 최소 200회는 해온 남자 친구, 공항 직원으로 근무했던 내 여동생, 해외 주재원 경력의 주위 친구들은 공항만 오면 겁보가 되는 내 심리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공항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최소 3,4시간 전에는 도착하여 커피 한잔 마셔주며 모든 것이 완벽함을 체크해야 안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비행기는 산뜻하게 날아가지만 공항만큼은 내게 있어 나라와 나라 사이 존재하는 커다란 대문과도 같은 것이다. 코로나가 끝나 자유로이 다른 나라로 떠날 수 있는 때가 오면, 그때는 나도 공항에 대한 긴장을 풀 수 있을까?
앞으로도 여러 다양한 문들을 비롯한 흥미로운 요소들을 눈에 담으며 도시 관람을 이어갈 예정이다. 동시에 스위치, 버튼 없이 그대로 열어젖힐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이곳 파리에서 나는 언제나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