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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netus Aug 30. 2021

프랑스 남부 75km 도보 여행(2)

상 자크드콩포스텔SaintJacques de Compostelle

상 자크 드콩포스텔Saint Jacques de Compostelle




인적 드문 산속 마을에서는 거주 주민들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슈퍼나 카페는 물론 빵집 하나 없는 작은 마을들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 정원이던, 초원이던 동물들은 자주 마주치게 되는데 이들을 보는 것 역시 작은 즐거움 중 하나였다. 특히 소, 염소, 오리, 닭 등이 모두 모여 있는 동물농장 앞에서는 꽤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난다. 







철조망 옆에는 구멍 사이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번번이 실패하는 오리 한 마리도 보였다. 구멍으로 머리를 자꾸 들이미는 모습을 보고 들어서 넣어줘야 하나 생각하기도 했지만 괜히 공포심을 조장할 것이 뻔했다. 






산등성이 하나를 넘기고서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큰 염소와 작은 염소들을 마주쳤다. 철조망이 있어서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사진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었기에 콧구멍, 귀 펄럭거림(?)을 모두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산속, 초원, 평지를 번갈아가며 걸었지만 두 번째 날은 9km만 걸으면 되는 일정이라 무리 없이 씽씽하게 두 번째 도착지인 도시 몽퀵 Montcuq에 도착했다. 여기는 여러 카페, 바, 식당, 관광안내소, 박물관까지 있는 알찬 도시이다. 간단한 일정이었지만 새벽부터 걸었기 때문에 카페가 보이자마자 앉아서 커피와 크라상을 주문했다. 여행 도중 마주치게 되는 카페나 빵집은 너무나 반갑다. 

  






여기도 상 자크 드 콩포스텔 순례길의 한 지점이기에 카페 리셉션에 가서 도장을 찍었다. 뒤에는 미리 출력해간 종이 지도가 있다. 휴대폰으로 구글 맵스나 도보여행 지도를 계속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배터리를 아끼기 위해 종이로 출력해갔고 길을 찾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동네에서 발견한 잠자는 고양이




이날 머물 캠핑장에 미리 텐트를 쳐놓았다. 그리고 뭘 먹을까 하다가 파리 한인마트에서 미리 챙겨 온 컵라면을 먹기로 했다. 새우튀김우동이었는데 남자 친구가 안 맵다면서 정말 맛있게 먹어서 뿌듯했다. 이 날은 시간이 많아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있는 야외 수영장에 놀러 가기로 했다. 인공적으로 만든 시설이 아니라는 정보만 있어서 인적 드문 연못 같은 곳이려니 하고 갔는데 의외로 시설 구비가 잘 되어 있고 사람들도 많아서 놀랐다. 바닥도 부드러운 모래에 물도 따뜻해서 더위를 식히며 수영할 수 있었다. 







한바탕 수영을 한 후 모래사장에서 쉬고 있는데 남자 친구가 바로 지금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수영 후에 라면이 먹고 싶은 것은 인류 보편적인 심리에서 나온 것인가..? 나는 어렸을 적에 다니던 스포츠센터 이야기를 해주었다. 1층에는 수영장이 있고 2층에는 매점이 있어서 수영을 마친 후에는 2층에서 컵라면이나 핫바를 먹으며 아래에 수영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곤 했다. 이 이야기를 프랑스 남부 한 시골 마을 야외 수영장에서 하게 될 줄이야. 이 날은 배가 별로 안고파 저녁은 시원한 수박 한 통과 바게트, 치즈로 해결한 후 그다음 날 일정을 위해 빨리 잠들었다. 




여행 세 번째 날, 

15km 아침부터 걷기


이날은 거의 새벽 다섯 시 반쯤에 일어나 씻지도 않고 로션만 바른 후 바로 길을 나섰다. 이날은 꽤 가파른 길이 많아 땡볕을 반드시 피하고 싶었다. 마을을 벗어나자마자 막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너무 힘든 것이다. 그제야 내가 일어나서 물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보다 앞서서 걷던 남자 친구를 멈추어 세우고 물이랑 비스킷까지 먹었다. 그리고 가파른 길을 오를 때에는 입으로 숨을 충분히 들이마시고 내쉬며 작은 보폭을 유지했다. 꼭 내 몸을 하나의 기계를 다루는 듯 조종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더 나아가서는 내 몸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된 계기였다. 



 




묵묵히 산길을 걷다 작은 교회를 발견했다. 일정 자체가 곳곳에 있는 교회, 성당들을 방문하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산속 깊숙이 위치한 교회들은 찾는 이들이 거의 없거나 미사 자체가 중단된 곳들이 많다. 오랫동안 버려져 자연 속에 방치되어 있다가 최소한의 보수 공사만을 마친 곳들도 있다. 






상 자크 드 콩포스텔 여행자들이 남긴 포스트잇들, 교회의 역사를 소개하는 액자와 상 자크 조개가 있다. 테이블 위의 액자들은 이탈리아 명화들을 인쇄해놓은 것이다. 






제단에 놓인 장식품들도 간소하다. 잘 알려진 유명한 성당, 교회들에 있는 화려한 제단화, 건축양식들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우연히 거주민들, 여행자들의 흔적이 남겨져있는 간소한 형태의 종교 오브제들을 마주치는 것 역시 큰 즐거움이다. 꼭 귀중한 문화재를 통해서만 문화, 예술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한 시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코드이면서도 개개인의 소박한 생활 속의 염원을 담는 매개체이다. 



보통 교회에는 식수 수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워낙 깊은 산골이고 식수라고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아 물통을 채우지 않고 교회를 나섰다. 






교회가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져 풍경을 이루는 작은 건물이 되어 있다. 




더러운 곳에서 자는 것은 

더위보다 더 힘들다..



이 날은 부단히 걸어 최고 기온 전에 목적지인 캠핑장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런데 캠핑장이 수영장, 카페 등 공동시설들은 나름 번듯한데 텐트를 펼 부지가 좀 더러웠다. 심지어 우리 텐트가 있는 곳은 바로 옆에 냇물이 흐르는 곳이라 모기를 비롯하여 잔 벌레들이 너무 많았다. 바닥은 울퉁불퉁하여 우리가 가진 여행용 매트로는 역부족이었다. 




캠핑장 측에서 미리 쳐놓은 텐트가 있다는 말에 처음엔 좋아했다. 다음 날 무려 26km가량을 걸어야 하기에 우리 텐트를 정리할 필요 없이 바로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캠핑장 측에서 미리 쳐놓은 텐트 역시 크기만 컸지 비위생적이었다. 매트를 깔아 한 번 누워보니 텐트 상단부에 먼지가 그대로 보여 아찔했다. 




텐트 먼지를 바라보며, '이건 아니야..'




'정말 이곳에서 자야 한다고...?' 


땀으로 끈적해진 내 몸에 사정없이 달려드는 산모기들에게 거의 30초에 한방씩 뜯기고 또 그곳을 긁어대며 나는 캠핑장 환경에 몹시 실망했다. 배는 또 고픈지라 근처 대형 마트에서 미리 사온 빵, 치즈, 과일들을 먹었다. 입은 거의 튀어나올 대로 튀어나와있는지라 남자 친구도 기분이 한풀 꺾여있었다. 그대야 군인이라 젊은 시절 여러 야영 경험을 통해 다양한 곳에서 자보았겠지만, 나는 캠핑 초보자.. 




하지만 아무리 야영 경험이 많아도 구글 평가만으로 캠핑장의 실제 환경이 어떤지는 알기 힘들다. 캠핑카를 끌고 온 사람과 우리처럼 텐트를 쳐 맨바닥에서 자는 사람과는 소감이 다를 것이다. 모두 잘 알고 있는데도 괜히 화가 나서 애먼 남자 친구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했다. 이 날은 처음으로 우리가 3박 4일 캠핑 중 분위기가 안 좋았던 때였다. 




옵션을 바꾸어 그 캠핑장 내에 있는 실내 숙소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그 당시 나는 보건패스(백신패스)가 없는 상태여서 실내 숙소는 물론 수영장, 식당까지 이용할 수 없었다. 그 대형 텐트에서 삼십 분 정도 낮잠을 잔 후 나는 더위를 제대로 먹었고 장기간 도보로 퉁퉁 부은 몸을 고스란히 느꼈다. 인근 도시는 또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요새형 중세 도시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날은 여행 첫째 날 만큼이나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9시부터 곧바로 잠이 들도록 노력했다. 내일 26km를 걸으며 더위를 피하지 못할 것을 생각하니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잠이 부족하면 더 힘들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잠이 들기 전까지 하던 생각이 있다. 



'우리 바캉스 온 거 아닌가? 왜 이런 고생을 하지?'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까지 걸을 이유가 있을까?'



불행 중 다행인지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밤 모기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역시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깜깜한 와중에 커피를 끓여마시고 초콜릿과 코코넛이 들어간 비스킷을 야무지게 씹었다. 이때 남자 친구가 머리에 후레시를 쓰고 민첩하게 움직였는데 평소 같으면 웃겼지만 그때는 귀찮아서 웃지 않았다. 




눈곱만 대충 떼어낸 후 빠른 걸음으로 캠핑장을 나섰다. 어차피 더위로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 세수고 로션이고 소용이 없다.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내 보건 패스가 적용되는 날! 우리가 문명을 경험하는 날! 호텔을 예약해둔 날! 26km를 부단히 걸어내어 호텔방에 점핑하는, 그야말로 선명한 콘트라스트가 돋보이는 하루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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