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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netus Mar 10. 2021

하얀망토의 성모 마리아교회

북적이는 마레 지구에서 순식간에 다른 세상을 만나는 법



지난 주말, 마레의 구석구석이 인파로 북적였다. 익숙하던 길을 선택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참이었는데 옆 골목에 보이는 교회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옆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도 들려서 정다운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에 가서 보고 싶어 졌다.





여기는 Église Notre-Dame-des-Blancs-Manteaux, 하얀망토의 성모 마리아 교회이다. 프랑스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디에서 쉽게 성당과 교회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때, 우리나라 개념대로라면 교회는 기독교인들이 다니는 곳, 성당은 천주교인들이 다니는 곳이지만 프랑스에서는 성당, 교회 모두 천주교인들이 다니는 기관을 칭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에서 천주교인들이 다니는 기관들은 성당 cathédrale, 교회 église, 바실리크 basilique와 같은 이름들로 불린다. 기독교인들이 가는 곳은 temple이라고 부른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역시 교회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경우 역시 교회 église라고 불리지만 뒤에 orthodoxe (adj. 동방정교회의)가 붙는다.



다시 천주교로 돌아와 살펴보자면, 성당 cathédrale, 교회 église, 바실리크 basilique, 모두 구분이 따로 지어져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두 교회 église에 속한다. 교회 église는 그리스어 ekklesia ( 의미: 모임, 공의회)에서 온 것으로 기본적으로 천주교인들을 모으는 모든 공간을 의미한다. 교회들 중에서도 한 교구의 대표 교회이며 주교가 상주하고 있는 곳을 바로 성당 cathédrale이라고 말한다. 바실리크 basilique는 교황이 한 교회에 내려주는 칭호이다. 그 이유는 다양한데 가령, 한 교회가 성인의 묘지 위에 세워졌거나 그의 성물들을 보관하고 있으면 바실리크라는 이름을 받는 것이다.  성당 cathédrale이었다가 교황의 칭호를 받고 바실리크 basilique로 정식 명칭이 바뀌는 경우도 있다.  



프랑스를 여행하다가 교회 église, 성당 cathédrale, 바실리크 basilique를 만나게 되면 모두 천주교 기관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천주교의 교리에 따라 내부가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있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대부분의 성당 cathédrale은 규모가 크지만 교회 église도 규모가 상당한 경우가 많으니 단순히 규모만으로 둘을 구분할 수는 없다는 점도 알아놓으면 좋다.



마레는 패션과 낭만이 있는 힙스터들의 동네라고 많이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화려한 부티끄들과 유적지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환경이 마레 특유의 북적이면서도 때론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곳곳에 공원, 정원들이 있는 것도 한몫을 한다.





밖에선 수많은 인파들이 돌아다니고 각종 빈티지 샵, 부티끄들이 있지만 이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소음들과 차단되며 정적이 감돈다.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공간 속으로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추운 겨울에 들어설 때는 온기가 느껴지며 스테인드글라스에 반사되는 온갖 색감의 빛들이 내부 기둥, 바닥까지 닿아있다.  



이 곳은  1257년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1685년에서 1690년 사이에 재건설된 교회이다.  원래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속해있는 교회였으며 이 수도회 신도들이 하얀색 망토에 까만 수도복을 입고 있었기에 교회의 이름 역시 하얀 망토의 성모 마리아 교회가 된 것이다. 노트르담 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 성모 마리아 수도원의 부지들은 국가의 재산으로 넘겨졌고 교회는 1807년 소교구 교회로 승인이 되어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교회 정문의 뒤쪽에는 1841년에 만들어진 커다란 오르간이 있다. 마지막으로 보수 공사를 한 것은 1968년이라고 한다. 하부의 세 개의 문과 벽 그리고 상부의 오르간이 모두 하나의 나무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파리에 교회가 정말 많지만 이렇게 멋진 오르간 구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오르간이 없는 경우도 있고 공간 커서 2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면 보통 오르간은 2층에 올려져 있다.   





성인의 모습을 한 천사 조각은 흔하지 않아 사진을 찍어두었다.





파도바의 성 앙투완의 석상, 그리고 그에게 바치는 봉헌물 판들이 배경으로 놓여있다. 아래에는 1,2유로를 주고 살 수 있는 촛불들도 마련되어 있다. 교회나 성당에 들어서면 이렇게 작은 불빛들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촘촘히 쓰인 봉헌물들 역시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성상 뒤로 많은 글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는 모습 그 자체에서도 흥미를 많이 느낀다.   





각 종교의 특색에 따라 봉헌물에는 다양한 오브제들이 쓰인다. 가령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는 올림푸스 신들의 모습과 유사한 작은 석고상을 바치곤 했다. 천주교에서는 이렇게 대리석 판에 성 앙투완에게 축복, 안녕을 기원하는 경구와 함께 날짜가 함께 쓰인다. 살펴보니 제일 오래된 것은 190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왼쪽 제일 상단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는 성당을 지키시는 분들의 캐비넷으로 보인다. 모든 교회, 성당이 이렇게 오픈되어 있는 캐비넷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가끔씩 이런 공간을 보면 흥미로워 계속 지켜보게 된다. 유리창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평범한 책상, 의자들도 유리창 너머에 있으면 관람을 유도하는 오브제가 된다. 더군다나 누군가가 머무르고 있는 여러 자연스러운 흔적과 공적인 업무가 모두 나타나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연도가 13세기까지도 올라가는 이 문화재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현대적인 공간이다.





이 교회에 들어서자마자 왜 이제 이 곳을 발견했는지 모를 정도로 놀랐던 이유는 바로 이 화려한 대주교좌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따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1749년에 만들어졌으며 네덜란드풍의 섬세한 목재, 금장, 상아, 주석 장식이 모든 면을 둘러싸고 있다. 계단 외부에 보이는 각 사각형 면들은 성경의 다양한 주제들을 표현하고 있다. 맨 위에 보이는 것은 발아래 루시퍼를 무찌르고 있는 대천사 미카엘이 있다.



교회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신기해하고 있으니 사진 속 할아버지께서 캐비넷에 들어가시더니 팸플릿 하나를 건네주셨다. 저분이 여기를 관리하시는 것 같았다. 나가기 전에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계속 왕복으로 걸어 다니셔서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다시 나가보니 사람들이 가득한 마레 거리들이 눈 앞에 보인다. 집 가는 길에 우연히 방문한 교회에서 뜻밖의 발견들을 하게 되어 조금 피로했던 정신 상태가 다시 맑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따로 종교가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여러 종교적 공간들이 지니는 오브제와 역사를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고요한 환경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파리에서 기독교 미술사를 공부하였지만 그것을 영화, 현대미술과 접목하는 일을 주로 해왔기에 이번 기회를 빌어 교회, 성당 탐방들을 제대로 다녀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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