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 왔다면 봐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일출이다. 그전에는 날씨가 좋지 못해 일출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항상 덩치 큰 구름과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구름 위에 있다. 발아래 절벽 아래로 구름이 강물처럼 흐를 것만 같았다. 안나푸르나 반대편으로 해가 뜨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에 붉었던 안나푸르나는 아침이 되니 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얀 설산들에 햇빛이 반사되어 주변이 금방 밝아졌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바라보기 좋았다.
아침 일찍 가이드는 고산병으로 먼저 출발했다. 물론 나도 정상은 아니었다. 속은 괜찮아도 머리는 계속 어지러웠다. 빨리 내려가는 게 산책이었다. 5일 차 일정은 이틀 치 올라온 양보다 더 내려가야 했다. 이틀 치 올라온 양을 하루 만에 내려가야 했기에 다른 날보다 빠른 오전 7시 30분에 출발했다.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머리가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숨이 덜 찼다. 200m도 내려가지 않았는데 이렇게 차이가 심하다니...
올라왔던 돌게단을 빨리 지나쳤다. 누군가 내리막길은 한순간이라고 했는데 나한테는 내리막길도 오르막길 못지않게 힘들었다. 올라온 양이 많으니 내려가는 것도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높은 계단들을 올라왔다는 것이 내려가면서 체감이 되었다. 계단 하나하나 살 떨릴 정도로 가팔랐다. ‘어떻게 올라왔을까’라는 의문만 들었다. 올라갈 때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 살기 위해서는 계단에 집중해야 했다. 풍경은 사치였다.
오후 5시가 넘어서 목표했던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지막 1시간은 기어 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발 하나하나를 천천히 땠다. 머리 어지러운 것이 사라지니 내 몸이 얼마나 피곤한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냥 온몸이 아팠다. 그냥 따뜻한 물에 씻고 자고 싶었다. 그래도 고산병 위험으로 3일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었는데 따뜻한 온수로 몸을 닦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작은 것들이 소중했다.
6일 차
드디어 마지막 날이었다. 가장 여유로운 일정이었지만 이미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마지막 날이라는 희망 하나로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계단들은 이제 보기도 싫었다. 또 짜증 나게 햇빛은 너무 뜨거웠다. 이놈의 날씨는 6일 동안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와 모험을 함께한 모자는 이미 거적때기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마음만큼은 여유로웠다.
흔들 다리가 보여서야 내 마음이 놓였다. 끝이었다. 흔들 다리를 건너는 동안 흔들리는 것이 내 다리 같았다. 이미 점심시간이었지만 도저히 먹을 힘도 없었다. 지프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향해 쉬고 싶었지만 3시간의 지프도 지옥 같았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그냥 살아있는 시체를 신고 내려가는 차였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 간단하게 씻고 짐을 정리했다. 근처 산촌다람쥐라는 한식집으로 향했다. 6일 동안 채우지 못한 단백질을 위 속에 가득 채워줬다. 거기서 나는 인생 삼겹살을 만났다. 오겹살처럼 쫄깃했고 삼겹살의 기름이 나의 위를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역시 사람은 제대로 먹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공깃밥 2개를 해치웠다.
저녁을 먹고 방에 돌아와서야 끝이라는 것이 실감되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도시의 소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 도시의 소음들이 나쁘지는 않았다. 행복했다. 남은 네팔 일정동안 속세에서 힐링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과연 나는 다시 여길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