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미눈을 슬퍼하다
남명(南冥) 조식(曹植) 지리산 열두 번 오르면서 물과 산 보며 인간과 세상 궁구하며 간수 간산 간인간세(看水看山 看人看世)했다면, 나는 종일 길 위 바라보며 나무 실은 차 단속하는 간도간거(看道看車) 한다. 인간세는 살피지 못한다. 한쪽만 쳐다보면 눈 쏠려 가자미눈 되기 십상 동료와 하루씩 자리 바꾼다.
나는 안다.
이렇게 살아선 안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무리 정신 차리고 정면 보아도 내 눈 금세 비뚤어진다. 선과 악, 가난과 부, 천당과 지옥, 페르소나, 이상주의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이냐. 불란서 현대철학 교양스럽게 남의 목소리 흉내 내는 인문학 시대 씹어 삼키는 똘레랑스... 고향 앞으로 엄숙하게 퉁수나 불어라. 경전 옆구리 끼고 걸어도 내 눈엔 똥만 보여 단박에 가자미 눈 된다.
도둑이 돼도 좋으니 부모 공경하는 알짜 도둑만 되어라. 자본의 간부가 되어라. 자식에게 싸대기 맞아 신문에 나는 꼴은 슬프다. 비극이다. 민나 도로보다까라(みんな泥棒だから). 두 개의 막대기로 돈구멍 쑤셔대라. 없이 살아 차별당하는 건 싫어. 생선 지키던 고양이가 생선을 물고 달아난다. 고양이는 서로 할퀴고 손가락질한다. 눈치 살피던 쥐 숨을 곳이 없다. 역사적으로다 오래된 쥐의 슬픔. 고기도 씹어본 놈이 맛을 알고, 돈도 처먹은 놈이 돈맛을 안다. 정치고 나발이고 인간 실종이다. 영험한 사랑의 기술 가르치는 사회는 육십 넘어도 한 알이면 하루 세 번 거뜬하단다. 앞뒤 잴 것 없이 시들한 중년 딱딱하고 거대하게 만들어주는 특효약 널렸는데 얼어 죽을 금욕 도덕선생 타령이냐. 나는 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고통 없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란 것을. 그러나 자본 앞에 안착하는 자유 알아서 긴다. 미리미리 난짝 엎드린다.
우리는 안다.
동정과 연민은 안으로 굽는 비겁이란 것을. 시멘트 바닥에 떨어진 하청 노동자의 주검을 외면하는 원청 노동자. 사장의 핏발 선 눈깔. 부자 되게 해 준다는 뱁새눈 뽑아놓고 바라던 조마조마한 희망은 애저녁에 박살 났다. 그래도 부자가 좋다. 좋은 게 좋으니 나쁜 것들 불편한 것들 썩 물러가라.
짭조름한 물풀 사이 방사한 알의 성찬. 고개 돌려도 마음은 어느새 한쪽으로 따라가는 짝눈이 된다. 보이는 게 다 아니다 짜증 내지만 정면을 보지 못한다. 만화방창 봄바다 수초 옆에 두고 슬금슬금 모래 이불 덮는 가자미눈을 슬퍼하다(傷鲽鱼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