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밤새 내린 비는 희번한 동살 무렵 그쳤다. 자박한 물웅덩이를 피해 개와 산책하고 화단 울타리를 고쳤다. 죽은 줄 알았던 상추가 속속 싹을 내민다. 밥 먹고 도시락 싸서 일 나섰다. 햇살이 언뜻 비치는가 했더니 도로 먹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작년 물난리로 무너진 축대 공사도 마무리다. 돌을 쌓은 윗면에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거푸집 설치 중이다. 두 사람이 양쪽 끝에 자재 나르고 망치질을 한다. 딱딱 젖은 계곡으로 망치소리가 퍼진다. 젖은 날개 고르던 산새 화들짝 놀란다. 무거운 공기 잘게 부서진다.
당나라 때 임제(臨濟) 선사가 말한 살불살조(殺佛殺祖)는 '참다운 견해를 얻고자 하려면 오직 한 가지 세상의 속임수에 걸리는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법어다. 이는 부처와 조사라는 관념에 집착하면 현재를 망각해버릴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고착된 개념은 종종 자신의 사유를 옭아맨다. 자아의 내부 혁명은 인식과 욕망의 구조 변환이다. 읽고 난 다음 써야 하는 건 사고의 정리와 창조며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질문을 세우는 일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성장과 변화의 기록이다 그림을 배워 전시회를 열거나 수필집을 내는 건 취미활동이다. 시와 소설을 취미로 하는 행위는 삼갈 일이다.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니 예전에 쓴 글은 자꾸 밀려난다. 책을 낸다는 생각이 부질없이 느껴진다. 파피루스 죽간(竹簡) 종이는 나무와 책의 중간 과정이다. 나무에게 부끄럽다.
임제 선사의 스승인 백장(白丈) 스님은 일일부작(一日不作)이면 일일 불식(一日不食)하는 화두를 평생 실천했다. 일하지 않고 먹는 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자본만 가지고 놀고먹는 무리를 만들었다. 즐거워야 할 노동이 고역으로 변했다. 행위의 수단과 목적이 분리되면 노동이고, 수단과 목적이 일치하면 놀이가 된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하는 인간이다. 고역스런 일이라도 아끼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할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