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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인 Aug 01. 2022

잡문

杂文(317)

수영장에서 나와 로컬 푸드에 갔다. 휴가철이라 이른 점심인데도 한우 식당에는 손님이 바글댄다. 고기 뒤집는 얼굴이 연기에 가려 부옇다. 로컬 푸드의 토마토는 일찌감치 동났다. 복수박, 자두, 청사과(青りんご)를 샀다.

경남 고성에서 열리는 그림 전시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마음을 아이스박스에 꽁꽁 싸서 보냈다. 전시 기간은 한 달이니 준비하는 분들이 맛나게 먹었으면 좋겠다.


후텁한 공기가 감도는 읍내는 축제로 떠들썩하다. 큰 다리 지나며 내려다보니 은어 맨손 잡기가 한창이다. 뾰족한 텐트 지붕이 천변 양쪽으로 빼곡하다. 조용한 시골에 일 년에 두 번 축제 때는 길이 막히고 주차장은 만원이다. 사람 구경 나온 노인이 지팡이 짚고 휘청휘청 걸어간다. 남쪽에서 비껴가는 태풍이 몰고 온 비구름이 간간이 비 뿌리는 중에도 사람들은 꾸역꾸역 몰려들었다. 평소 한산하던 골목 식당에는 손님이 들어찼고 주인은 얼굴에 퍼진 웃음기를 지울 생각 없이 바쁘다.


어제저녁 바다에 홀로 여행 다녀온 화가 후배가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철판 위의 닭갈비를 집으며 곰곰 생각하니 지인과 술을 마신 지 일 년이 넘었다. 문학 모임을 탈퇴하고 칩거하다시피 지내며 통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기간제 일과 휴식을 병행하며 도서관과 수영장에 들락거렸다. 섬에서 반년을 살고 올라온 이후로도 일 찾는 외에 일상은 변한 게 없다. 연초에 스타트한 임시직은 가끔 결원을 보충하는 공고가 가물에 콩 나듯 뜰뿐이다. 나이를 감안해 젊은 사람을 구하는 듯한 일자리는 지레 삼간다. 그러고 보면 기간제 일자리도 오륙 년 후면 손 털어야 할 상황이 올지 모른다.


작년에 같이 일했던 김 선생은 집에서 논다. 연초부터 여기저기 지원서를 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연세가 칠십 중반이니 그럴 만도 하다. 노인은 해가 바뀔수록 일에서 점점 밀려난다. 부부가 살면 한 사람만 노인 일자리에 나간다. 김 선생은 복지관에서 사귄 친구들과 체육관에서 탁구 치고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점심 먹는 게 낙이다. 아침에는 천변 산책로 따라 걷기 운동을 한다. 냄비 공장에서 일하다 늘그막에 시작했던 집수리 일을 일찍 그만둔 걸 후회한다고 했다. 수입이 짭짤했던 집수리는 아들이 물려받아한다.


석천계곡에서 풀 베고 쓰레기 줍는 노인은 칠십이 넘어서 하루 세 시간만 일한단다. 새벽에 개 데리고 산책 가면 만나는데 일에 열심이다. 예초기와 낫으로 산책로의 풀을 베고 장화 신고 개울에 들어가 바위틈에서 쓰레기를 찾아내 포대에 담는 걸 개와 보았다. 체육 선생으로 은퇴한 노인이다. 곰돌이를 볼 때마다 '개 좋다!'를 연발한다. 두 번째 만났을 때 중성화 수술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일할 수 있는 말년을 즐기는 것 같다.


후배와 많은 얘기를 했다.

우리는 내공이 만만찮은 Y시의 선배들을 떠올렸다. J시인, D소설가, H화가와 도예가 S씨, 주막 주인장 J씨를 대화에 불러냈다. 그리고 앞으로 5년, 10년 후를 상상했다. 후배는 한 선배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독서의 맥락에 대해 말하고 취미로 소비하는 책 읽기보다 삶에서, 사유에서 실천하는 빡센 독서를 말했다. 후배는 자신만 알고 있어도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적 호기심과 교양 채우기 독서는 이기적이라고 말했다. 배워서 남 주고 읽어서 남 줘야 세상이 좀 나아지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자기애에 충실한 사람이 이타적이라고도 말한 것 같다. 술이 오르니 말이 많아졌다. 후배는 괜찮다고 했지만 미안했다. 미안한 만큼 자꾸 말이 튀어나왔다. 여자 얘기를 꺼낸 것 같았는데 난 이제 사랑은 글렀다며 웃었다. 후배는 이문구 작가와 박상융 소설가 얘기를 했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톨스토이의 인본주의를 말하고 P.A. 크롯폿킨의 상호부조론을 얘기했으며 아나키스트 신채호, 박열과 그의 애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를 말했다. 난 그에게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시리즈를 읽어보라고 권했고 동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책을 찾아 읽으면 좋다고 했다. 부산의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후배 시인으로부터 눈뜬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지껄였다. 아는 거라곤 쥐뿔도 없으면서 떠드는 게 공허하긴 해도 뭔가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달뜬 분위기였다.


이차로 생맥주를 마신 후 더 마시자는 후배를 달래 편의점에서 코끼리 맥주를 사서 군민회관에 갔다. 사람 없는 어둑한 군민회관 처마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기타 치고 노래 불렀다. 어니언스의 편지 박목월 작시 '기러기 울어예는'을 불렀다. 눅눅한 공기가 깔린 밤하늘로 두 사람의 합창이 퍼져 올라갔다. 천변 축제장에서 밤늦도록 떠드는 소리가 꿈결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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