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도 사랑한다 말한 적은 없지만
꿈을 꿨다. 언니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꿈이었다. 사실은 완전히 꿈은 아니다. 그저께 전화에서 엄마는 언니가 책을 시켰다고 했다. 유치하게 엄마 앞에서 울 뻔했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제일 싫어했던 말이 있다. 열심히가 아니라 잘하라는 말. 이 말의 근원지는 한 국어 선생님의 메일답장이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어쩌면 그 말이 내가 문학에 대한 순정을 버린 이유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이 세상에 잘하고 싶어도 안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그게 너무 화가 나서 열심히마저 못하겠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이익을 내야하는 회사도 아닌 학교에서 최고참격인 선생이 제시했던 가치가 그런 수준이었다니 다시 생각해보면 고개가 절로 내저어진다.
미국에 오기 직전, 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땐 정말 이상했다. 친구들과 수십번 굿바이 인사를 했어도 무심하게 넘겼었는데 심지어 서은국 교수님의 답장이 왔을때도 눈물이 나진 않았었는데. 내 앞에서 무심하게 커피를 휘저어 먹는 언니 모습을 보다가 문득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어졌다. 그러다가 카페가 문을 닫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올 때까지 청승맞게 혼자 눈물을 흘렸다.
나는 왜 그토록 울었을까. 언니가 불쌍했을까. 하루하루 반복되는 언니 인생을 뒤로하고 아무 생각없이 미국으로 가는 게 미안해서였을까. 아니면 27세 클럽에 빠질지도 모를 언니의 한 해가 미리 걱정되어서였을까.
언니는 힘들어도 불평불만하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표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그런 언니가 가끔 답답하기도, 가끔 대단해보이기도 한다. 가끔은 아이처럼 순진해보이기도 하고 또 가끔은 금방이라도 없어져버릴 것 같이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다.
언니는 삼수를 끝으로 일을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열심히 공부한 죄밖에 없었던 언니는 대학에 가지 않고 어느 시점부턴 매일 일만 했다.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서 이미 4년 정도가 흘러버렸다. 그릇에 맞지 않는 회사로 출퇴를 반복하고 매일 악몽을 꾼다고 했다. 일을 시작하고 어느 순간부터 언니는 삶의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반은 체념한 모습, 반은 해탈한 모습이다. 나는 그런 언니를 구원해줄 수가 없다. 그게 나란 인간의, 어쩌면 모든 인간의 한계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린 사실상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내가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는 것보다 더 씁쓸한 일이다. 그저 그 씁쓸함을 곱씹으며 그 사람의 모든 혼란과 방황이 잠잠해질 때까지 곁에 있어줄 뿐이다.
한국의 폭력적인(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만) 입시 시스템을 문제 삼아야할까, 언니의 바보같이 열심인 우직한 성격을 문제 삼아야 할까. 운의 문제일까. 그것도 아니면 이 시대를 좀먹는 우울과 공황을 문제 삼아야 옳을까. 나는 정말로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야 죽이되든 밥이되든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다. 근데 언니만 생각하면 아직도 울컥하고 뭔가가 치밀어 오른다. 내가 운다고 언니의 힘들었던 시간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을 보상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이제 정말 그만 울고 싶다. 대신 언니를 응원해주고 싶다. 이번에는 '잘'이 아니라 '열심히'만 해도 충분할 때까지, 언니의 열심이 언니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때까지, 그때까지 지치지 않고 곁에 있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