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에는 중점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터닝포인트 라고도 부른다.
커피를 볶을 때, 예열된 로스터기에 차가운 생두를 투입하면 드럼안의 온도가 내려가다 멈추는 지점이 있다그것이 중점이다.
생두와 가스의 양에 따라 멈추는 온도는 다르지만, 열이 가해지는 한, 언젠가는 반드시 멈춘다. 멈춘 온도는 잠시 후 상승하기 시작한다. 차가운 생두가 따뜻하게 탄생하는 시작점이자, 인생의 터닝포인트다.
2019년 어머니는 구정이 지나자마자 끊임없이 사고를 당하셨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올해 어머니가 좋지 않다고 했던 말이 가시처럼 박혀 불안과 공포를 안고 왔다.
길에서도 계단에서도 어머니는 자꾸 넘어지셨다. 얼굴이 긁히고 무릎이 까지다가 급기야 오른쪽 팔목이 부러졌다. 기부스를 한 채 마루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뒤로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고, 뜨거운 것에 슬쩍 닿아도 큰 화상을 입으셨다.
“이상하다. 누군가가 등 뒤에서 자꾸 떠다 미는 것 같아.”
그때마다 나는 매번 울면서 달려갔지만, 어머니의 사고는 내가 그녀의 곁에서 잠자고 있는 동안에도 일어났고, 예고도 없이 계속되었다. 끝없는 불안의 순간에 문득 중점을 떠올렸다.
아무리 해도 더이상 추락하지 않는 온도 같은 것이 삶에도 있을 것이라고, 끝 없는 미궁이 아니라, 알 수 없는 밧줄 같은 것이 허공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의 영혼을 붙잡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그저 내버려 두어도, 아무리 망가져도, 결국 올라갈 수 밖에 없다는 믿음, 자기 검열이나, 주변의 관심 같은 것이 언제나 공기중에 흐르고 있어 결국 조금씩 좋아질 수 밖에 없다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면, 검은 물 속에서, 달고 새콤하고 향기로운 좋은 것들이 올라와 추락하고 도망치고 싶은 나를 꼭 부여잡고 언제나 터닝포인트 위로 데려다 놓는다.
기적처럼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의 팔목은 조금씩 아물었고, 어머니와 나는 서로 더 긴밀해졌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외국으로 떠났던 지인들이 돌아왔고, 집 값을 올리라는 주인의 성화가 더 나은 집을 발견하게 했다. 차가운 겨울은 따뜻한 봄을, 차가운 어두움이 환한 빛을 품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며 오늘도 커피를 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