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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스트 조윤정 Oct 21. 2021

매운 음식이 필요해


마감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배가 고프다. 10시가 넘은 시각, 냉장고를 열어 알탕이나 떡볶이, 골뱅이 소면 같은 매운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한다. 재료가 없으면 최대한 자극적인 것으로 주문해 술과 함께 먹고 마신다. 피곤할수록,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그 양과 빈도수가 늘어난다.


카페가 매일 문을 열고 닫는 사이 빗자루는 닳고, 고무장갑은 구멍이 난다. 바리스타의 위는 헌다. 이것은 하루종일 마신 커피 때문이 아니다. 피로가 유도한 야식과 술 때문이다. 야식은 가능하면 많이, 수다와 함께 천천히 오래 먹어야 효과가 있다. 그래야만 내일이 오는 시간을 유예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혼자 있을 수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이지만, 아무 일도 없으며 심지어 그들과는 무관하다.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 시간이 길수록 좋은 사람이다. 평상시 결코 따로 연락해 친구를  만나는 법이 없다. 매일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변이 너무 와글거리고 소란스러울 땐 명상 선생님을 찾는다. 선생님의 조언은 이랬다. ‘배에 상상의 공간을 뚫어두고 필요없는 이야기를 통과시킨다. 흘려 보낸다.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롭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만 붙여둔다. 타인의 고통에 지나치게 이입하거나 배려하기를 그만둔다. 착한 사람 컴플렉스를 버린다.’


매운 음식과 술을 마시는 대신, 따뜻한 물에 목욕을 하고, 조용히 독서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게 두도록 했다. 잔잔한 음악을 틀고 스트레칭을 하며 머릿속을 고요히 비우기로 했다. 그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다가올 내일도 소중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느 새 방문한 창 밖의 달빛이 몸과 마음과 그 ‘너머’를 따뜻하게 어루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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