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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스트 조윤정 Oct 18. 2021

장난감가게와 커피집

팔순이 넘는 은희 엄마는 자유시장에서 여전히 옷가게를 한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의 옛 장난감 가게 옆에서. “할머니가 파는 옷을 누가 사기나 하겠니?” 엄마는 덧붙였다. 낡고 오래된 상점의 따끈한 구들장 위에 누워, 하루를 지키는 은희 엄마를 상상한다. 그 근처에는 내가 과외를 하던 궁약국과 지물포 아저씨의 가게도 있을 것이다. 굳이 찾아가 확인하지 않는다면 내 기억속에 고스란히 완벽한 장면으로 각인된 채.


엄마가 했던 장난감 가게에서는 미미옷장, 콩순이 같은 것을 팔았는데,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나는 가게를 지키지 않았다. 나에겐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는 일이 알 수 없는 공포였다. 서스럼 없이 타인을 대하고 싶지 않았다. 모르는 사람을 아는 사람처럼 응대하는 일은 내게 거짓같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단지 너무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장난감으로 가득 찬 가게 구석에 그림자처럼 앉아, 함께 다니던 평화교회 친구들을 만나거나 숙제를 하곤 했다. 목사님의 딸과 아들의 이름은 은혜와 평강이었는데, 나는 그들의 이름이 좋았다. 교회에서 열리는 문학의 밤은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으로 시작하는 달콤한 시를 짓고 읽을 수 있는 낭만이었다.


책 외판원도 가게를 방문하는 단골 손님이었다. 엄마가 장난감을 팔아 거금을 주고 사주신 세계문학 전집은 너무 거창하고 두꺼워서 1권 <데카메론>을 끝없이 시도하다 그만 질려버렸다. 초등학생이 두꺼운 하드 커버에 배경 설명만 수십장이 넘는 책을 읽을 수 있을리가 만무했다. 초등학생의 눈높이를 맞춘 동화책이 아니어도, 결코 제대로 읽어내지 못해도, 엄마가 사준 문학 전집은 내 평생 최고의 선물이었다. 아름다운 상징이었다.


하루에 수백명씩 만나는 카페에서 부끄러움을 되새길 사이도 없이 20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나는 가끔 어머니의 장난감 가게와 그 시절의 엄마를 생각한다. 은희 어머니의 옷가게를 상상한다.  

하루에 한 벌도 팔지 못해도, 아들과 딸에게 용돈을 받아 쓰는 한이 있더라도 아줌마에게 가게는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일지도 모르겠다. 은혜와 평강이 가득한 평화의 집, 그곳이 아무리 작은 공간일지라도.


나는 갑자기 일어나 차가운 밤을 거슬러 커피스트를 향해 발길을 향하였다. 좋고도 나쁘고 힘들고도 바쁜곳. 아프고 외롭고 기쁘고 슬픈 사람들이 한 가득 모여드는 곳, 매일 무한대의 커피향을 온 몸으로 만나는 나의 대학, 그곳으로.

참, 은희야, 어떻게 지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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