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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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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Apr 17. 2024

4. 달걀프라이와 삶은 달걀

예산 답사기 2

"저희 집에는 항상 사람들이 옵니다. 같이 이야기하고 술도 마시고 노래도 부르고요. 그러니 두 분도 술 한 잔 하시고 주무시고 가십시오"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범상치 않은 외모의 집주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고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애들도 주말이나 여름휴가 때 친구들도 데리고 와서 놀다 가요. 너무 좋다고 하죠. 이제 따뜻해지면 꽃이 얼마나 예쁘게 피는지 몰라요" 안주인도 말을 거든다.


가야산 도립공원 쪽으로 길을 따라가다가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새로 지은 집 몇 채가 보인다. 가장 입구에 있는 작은 집 하나. 앞마당에는 각종 꽃들이 심어져 있고 마당 한 켠에는 정자도 한 채 지어져 있다.

"날이 좋으면 대부분 정자에서 놀죠"

집이 크지는 않았으나 제법 큰 거실과 부엌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양쪽에 두 개의 방과 화장실이 있었다. 한쪽 복도 끝에 다용도실과 뒤뜰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었고, 뒤뜰에는 닭과 개 두 마리(풍산개)가 함께 살고 있었다.

"원래 요 근처가 제 고향입니다.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와 살겠다고 마음었지요. 여기저기 살펴보다가 여기 왔는데, 딱 여기다 싶더라고요. 마음이 아주 편했습니다"

"아마 두 분도 다니시다 보면 여기다, 싶은 곳이 있을 거예요"

서울과 경기도 등 수도권에 살던 두 부부가 귀촌을 결심한 것은 십여 년 전, 남편의 고향으로 지역을 정하고 땅을 보러 다니다가 지금 이곳을 찾았다.

"집에 대해서는 잘 모르니 좋은 목수를 찾아야 했습니다. 지역에 계신 분들에게 맡기고 싶었어요. 이 지역에서 제일 잘한다는 분을 찾아갔죠. 돈은 하나도 깍지 않았습니다. 좋은 재료와 좋은 솜씨를 가진 분들이 짓기를 바랐습니다."

"저는 매주 내려와서 밥을 했어요. 우리 집을 짓는 분들인데 제대로 드시면서 일하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의 정성 때문이었을까? 집은 두 사람의 바람대로 지어졌다고 한다.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시원하고, 겨울에는 웬만한 추위에도 끄떡없다는 것이다. 집 곳곳에는 집주인이 직접 만들었다는 테이블과 의자, 각종 소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막걸리를 마시던 집주인이 갑자가 나갔다 오더니 하얀 달걀 몇 개를 내민다. 닭들이 나은 달걀을 바로 가져온 것이다.

"맛이 달라요. 바로 프라이해 드릴 테니 맛을 보세요"

과연 고소하고 맛있었다. 계란 프라이는 애피타이저였을까, 직접 농사지어 담갔다는 김장김치에 뜨끈 뜨근한 수육이 한 접시가 나왔다. 막걸리 한통은 금세 비워지고 또 새로운 병을 땄다. 그러나 옆지기는 여전히 요지부동, 나만 막걸리잔을 연거 펴 비우고 있었다.

집주인은 술이 한잔 두 잔 들어가자 연신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댄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보다는 서너 살 많은 60대 초반. 같은 시기에 이십 대를 보낸 또래의 사람들이 모여 80년대부터 현재 정치상황에까지 이야기가 이어진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집주인의 이야기는 거침이 없고, 우리 둘에 대한 호구조사도 이어지니 나도 다소 불편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숙소 예약해 놔서 가야 한다고 술을 사양하자, 대리를 부르면 된다, 차를 두고 택시를 타고 가라는 등 여러 가지 말로 회유(?)가 이어졌으나 옆지기는 B씨 얼굴만 보고 가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이 자리를 마련한 B 씨가 빨리 오기만을 바라고 있을 즈음, B 씨의 부인이 핸드폰 문자를 보더니 깔깔 웃었다.

"경주에서 탄 기차가 아산역에 정차하지 않고 가는 기차래요"

예산과 가장 가까운 KTX역은 천안아산역. 경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일행들과 같이 기차를 탔는데, 다 함께 서울역까지 오는 기차를 탄 것이다. 자신이 탄 기차가 아산을 통과하지 않는 기차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달은 모양이었다.

"다음역에서 내려서 다시 내려오는 기차를 타야지 어쩌겠어"

이미 오겠다던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아산역에서 승용차로 4~50분 걸리는 거리인데, 다시 광명이나 서울역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오려면 원래 예정했던 시간보다 적어도 1~2시간은 더 걸릴 것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술을 먹는 게 어떻겠냐고 꼬셔봤지만, 옆지기는 그냥 일어서자고 했다. 엉거주춤 일어서려는데 만류하다 지친 안주인과 B 씨의 부인이 갈 거면 저녁밥이라도 먹고 가라며 붙든다.

급하게 한 술 뜨고 나오려는데, 미안한 마음과 당황한 마음이 교차한다.


"어땠어?" 집에서 나온 이후 말없이 운전에만 집중하는 옆지기에게 슬쩍 물어본다.

"글쎄...."

"어차피 귀촌을 한다는 건 귀촌한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이루어야 하는 건데, 이 분들한테 많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이 분들 옆에 오면 조용히 살긴 힘들겠네. ㅎㅎ 참, 근데 B 씨를 보고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 사람은 주말을 여기서 보내기로 한 거니까..."

만사가 예정대로 되는 법은 없는 법이다.


잡아둔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나와 편의점에 가서 이것저것 고르다 보니 칙칙한 숙소로 들어가기도 기분이 좀 그렇다. 주변 호프집에 가서 생맥주라도 한 잔 하자 하고 검색을 시작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다. 도시는 조용하고 어둡다.

"아무래도 영업을 안 하는 것 같은데"

00 호프라고 크게 쓰인 간판을 발견하고 내가 얼른 차에서 내려 들어가 보니 여주인 한 명이 영업을 한다고 한다.

근데 생맥주도 안 되고, 치킨도 안 되고, 골뱅이도 안되고, 감자튀김도 안된다고 한다. 저녁을 대충 떠먹고 나온 뒤라 뭔가 먹거리가 되는 안주가 필요했는데.

약간 출출해서요.

게란 삶아드릴게요.

네???? 아, 괜찮아요...

병맥주와 오징어를 시켰다.


잠시 후,  견과류 과자와 한라봉 한 개를 가져온다. 여주인이 직접 한라봉도 까준다.

그리고 갓 삶은 달걀 네 개를 가져온다.

반숙으로 삶아진 따뜻한 달걀. 이 또한 고소하다. 여기는 달걀이 맛있는 지역인가 보다.


낯선 지역의 이상한 호프집에서 우리는 그렇게 삶은 달걀을 안주삼아 맥주를 홀짝거렸다.

"귀촌이 쉬운 일이 아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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