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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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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랑꼴리한 말미잘 May 23. 2024

6. 박목수와 그의 아내와, 일단 한 잔

괴산 답사 1

3월 초 어느 날,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하고 옆지기와 함께 부랴부랴 괴산행 길을 떠났다. 초봄, 해가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저녁 7시가 넘으면 시골길은 깜깜할 것이었다. 어둡기 전에 도착하고 싶었다.

아직은 겨울 풍경이다. 마른 나뭇가지가 을씨년스럽다. 그러나 긴 겨울 동안 얼었던 땅들이 녹고 나무에 물이 차오르고 있다. 곧 새 이파리들이 솟아 나올 것이다.

크게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시골길에 들어섰다. 아주 작고 한적한 마을이다. 집도 몇 채 되지 않아 보였다.  새로 지은 경로당 겸 마을회관을 지난다. 동네가 작다 보니 학교나 작은 마트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아주 깊숙한 시골 마을이라 할지라도 작은 잡화점, 점방은 하나씩 있었던 것 같다. 작은 점방에는 대부분 살림집이 딸려있어서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을 부르면 안채에서 누군가가 나오시곤 했다. 아니면 백살도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깜빡깜빡 졸고 계셨는데 주로 담배나 라면, 소주, 과자류 등을 팔았다. 연극하던 이삼십 대 시절, 시골 마을로 합숙훈련이나 창작워크숍을 하러 갔다가 휴식 시간에 점방으로 몰려가 담배를 사기도 하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새우깡이나 버터코코넛 쿠키를 사 먹곤 했다. 야밤에 뒤풀이를 하다 술이 떨어져 막내 단원에게  어떻게든 술을 구해오라고 등을 떠밀면, 치기 어린 막내들이 과감히 점방 문을 두들기기도 했다. 한참만에 눈을 비비고 나오신 점방 주인들에게 등짝을 얻어맞고도 소주를 전리품처럼 안고 돌아오던 후배들의 모습(지금 생각하면 어리기 그지없는)이 떠오른다.


이제는 이런 점방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형마트와 편의점 때문이겠지. 웬만하면 다들 자가용이 있으니 대형마트서 장을 보거나, 급할 때면 24시간 깔끔하게 운영되는 편의점으로 가게 되니까. 점방을 열고 있어도 재고만 쌓일 테니 누가 계속 점방을 지키겠는가.


가끔 이런 점방을 운영하면서 필요하면 라면도 끓여주고, 막걸리 먹는 손님 있으면 멸치와 오이 몇 조각내어주며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서비스에 신경 쓰지 않고, 민원에 시달리지 않고, 그냥 내가 내키는 대로 하면서... 그런데, 돈을 벌지는 못해도 까먹지는 않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잠시 옛 추억과 잡생각에 젖었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작은 마을을 지나 새로 난 길이 있다. 귀촌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게 되면서 생긴 길이다. 1차선의 좁은 도로, 서울의 차선 반듯한 도로만 운전하다가 이런 시골길을 만나면 긴장부터 된다. 저쪽 편에서 차가 오면 어떻게 하지? 예전에 이런 길을 가다 자동차 바퀴가 빠져서 고생한 일도 있었다. 꼬불꼬불 길을 얼마 가지 않아 시야가 확 트이면서 넓은 밭들과 그 너머로 새로 지은 집들이 보인다. 이 집들 중에 내 친구 박목수가 지은 집들이 꽤 있다고 들었다. 그중의 박목수와 그의 가족들이 사는 집도 있다.


박목수와 그의 아내 J가 반갑게 맞이한다. 이 부부는 조금은 특별하게 살아간다. 시골에 살고 있지만 농사를 짓지는 않는다. 박목수가 대목이기 때문에 주로 집을 지어서 먹고 산다. 가끔 마을 할머니들에게 장구도 가르쳐 주기도 하고, 아내인 J도 워낙 사근사근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마을 일을 즐겁게 하는 것 같다.


단층이지만 층고가 높은 집이다. 박목수는 친환경적으로 집을 짓는다. 그런데 자재니 페인트니 친환경적으로 하면 돈이 많이 드는 것 같다. 마당은 없이 창고와 차고로 쓰이는 공간 옆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일단 층고가 높은 넓은 거실이 보인다. 안쪽으로 널찍한 부엌이 딸려있다. 어머님과 딸내미까지 4인 가족으로 방 세 개와 화장실이 있다. 이 가정에는 가끔은 식구들이 늘기도 한다. 집 짓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 같이 일할 보조 목수들이 필요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씻기도 해야 한다. 그래서 화장실을 넓게 지었단다. 샤워공간과 분리가 잘 되어 있어 옷을 갈아입기에 편하도록 설계했다.


박목수의 집과 연달아 몇 채의 집들이 멀리 산을 바라보고 있고, 그 사이에 밭과 공터가 있다. 그곳에 집들을 지을 예정이라 하는데, 끄트머리에 아직 주인을 만나지 못한 집 한 채가 외롭게 서있다.

어쨌든 현재로는 집들이 많지 않아 시야가 확 트여있다. 박목수의 집 데크에 나와 앉으면 멀리 산이 보인다. 좋다.


늦은 저녁 겸 한 잔을 하기로 하였다. J는 부지런히 음식을 하고 있다. 맛있는 냄새가 난다. 동네 할머니들하고 놀다가 조금 늦게 들어왔다고 한다. 내가 가져간 와인 한 병을 땄고 맛있는 음식들이 식탁 위로 올라왔다. 집을 보러 온 건지 술을 마시러 온 건지, 그게 그건지.... 안주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으니 술이 그냥 쑥쑥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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