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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뤘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by 오로시

나는 꿈을 이룬 사람.

꿈이란 정의가 직업이라면 말이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적어냈던 직업란이 꿈이라면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이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고등학교 졸업 후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나는 한 번에 되지 않는 사람이라 남들보다 오래 걸렸다.

잘 되지 않아 포기한 적도 있었고, 도망친 적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 돌아 내 꿈을 이뤘다.

이게 내 꿈이라는 확신이 그때는 있었다.

이 직업만 갖게 된다면 내가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다시 도전하게 만든 나의 꿈.


마치 나의 선택지에는 이 직업 밖에 없는 듯이 다른 것은 생각해보지 않았다.

좋아하는 건 많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직업으로 연결시킬 생각은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꿈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10년이 지났다.

나는 꿈을 이룬 사람일까?

내 꿈을.. 모르겠다.

꿈을 명사로 정의해 놓았더니 그 꿈을 갖게 된 순간 꿈이 없어졌다.


20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달렸다.

30대는 꿈을 잃어버렸다.


더 이상 달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학창 시절 중간고사-기말고사-중간고사-기말고사의 무한 루프로 살 듯이

꿈도 끝내면 다른 꿈이 생겨야 하는데

10년 동안 질려버린 탓일까?

다른 꿈을 꾸는 것조차 무서워졌다.


이제는 내가 무엇을 놓쳤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꿈은 명사였다.

예를 들면 의사, 변호사, 교사, 마케터, 은행원, 경찰 등등의 직업이 명사적 꿈이라 할 수 있겠다.

의사가 꿈은 사람은 의사가 되지 못하면 실패다.

선생님이 꿈은 사람은 선생님이 되지 못한다면 실패다.


꿈은 동사여야 한다.

예를 들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어.

다른 사람들의 성장을 돕고 싶어. 등등


사람이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은 의사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 간호사도, 구급대원이 되는 것도 나의 꿈에 다가가는 일이니까.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은 사람은 가수를 꿈꿀 수 있겠다.

연습했는데 안 되면 내 꿈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상 크리에이터나, 이벤트 플래너, 파티 기획자가 되는 것도 꿈을 이루는 방법이다.


명사였던 나의 꿈은... 정말 내가 간절히 원하던 것이었을까?

사실 이건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가 00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어.

-00 하면 잘하겠는데?

-00가 좋다는데 00 하는 게 낫지 않겠어?


사실 직업을 갖게 되니 좋은 점은 더 이상 고민할 일이 없어졌다는 것 정도이다.

(아, 물론 백세시대에 사는 나는 다른 직업도 찾아봐야겠지만 말이다.)

그 말을 돌려보면 꿈이 없어졌다는 말과 같다.

만약 동사로 내 꿈을 생각했다면 (그것을 찾는 과정 자체도 쉽진 않았겠지만 )

직업 하나에 목을 메진 않았을 것이다. 그 직업이 꿈이 아니었을 테니까.


꿈을 이룬 나는 꿈을 잃어버렸다.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었던 걸까.

내 직업과 내가 원하는 삶과 같은 방향을 가고 있는 걸까? 그것도 잘 모르겠다.


지금 나의 직업은 약간의 애증관계로 변했다.

널 좋아했지만 널 좋아한 게 아니었던 것 같아.

널 원했는데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었어. 같은 느낌.


사춘기가 세게 오지 않았던 나는 이제야 사춘기를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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