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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향의 세상

by 오로시

화장을 안 한지 9년쯤 됐다.

결혼 전에는 화장도 하고, 좋아하는 향수도 있었는데

(남편과 연애할 때 처음으로 받은 선물도 향수였는데... 쓰지도 못하고 가지고만 있다.)

임신을 하고 나니 임신 증상 중 흔한 입덧 대신 냄새덧이 찾아왔다.

냄새덧은 특정 냄새에 예민해지는 현상으로 냄새 자극에 의한 구역질이 동반된다.


나는 특히 인공냄새에 예민해졌는데

화장품, 향수, 섬유유연제, 바디제품들, 염색약 냄새까지.

그래서 화장도 하지 않기 시작했고

제품들도 무향인 제품으로 구입하기 시작했다.

샴푸, 바디제품은 무향인 제품을 찾기가 힘든지라... 도브 센서티브바로 바꿨다.

고3 때부터 흰머리가 나서 염색을 하던 남편은 염색도 멈췄다.


아이를 낳고는 아이에 살을 맞대어하기 때문에 화장을 하지 못하고

그렇게 3명의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키우면서 나는 향이 없는 제품들만 사용하게 되었다.

남편의 머리는?? 고잉그레이다.

고잉그레이(going gray)는 말 그대로 머리가 서서히 하얗게 변해간다는 뜻이다.


내가 화장을 하지 않게 된 시기와 남편의 염색을 끊은 시기가 비슷하다.

그렇게 자연인이 되었다. 그리고 자유롭다.


예전에는 화장하지 않으면 밖에 못 나갔었는데 이제는 화장한다는 자체가 답답하다.

남편은 얼굴은 나이치고 젊어 보이는 데 머리가 하애서 사람들은

어린 꼬마들은 흰머리만 보고 할아버지라고 하기도 하고

주위 사람들은 잘 어울린다는 평을 한다.


다행히 아이들은 아빠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머리가 하얗다며 좋아하고,

친구들이 할아버지라고 하면 머리가 하얀 아빠라고 정정해 준다.


화장을 안 하는 엄마도

염색을 안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된 아빠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또 한 편으로는

화장을 안 해도 괜찮고

염색을 안 해도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내가 좋으면 하는 거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가장 나다운 걸 선택하면 그걸로 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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