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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빚 불리는 나쁜 습관의 좋은 예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8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1. 밥은 살 수 있을 때만... 제발!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 벌어 그달, 그달의 사는 것을 겨우겨우 해결하던 시기. 돈 버는 것은 어렵고 사는 것은 더 어려운 때였다. 


돈도 없고 백도 없고. 오로지 자존심 하나로 이를 악물며 독한 타지 생활을 꾸역꾸역 뚫고 나아가던 나날들. 가진 거 없다고 해서 ‘꿀리지는 말자!’라는 그 어떤 근성만이 남아 있었다. 


나의 ‘꿀리지 말자'는 모토(motto)는 이를 테면 적어도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땐 내가 사자, 라는 것이었다. 당장 내일 교통비가 없더라도 오늘 밥은 사게 되는, 이상한 꼴통 자존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보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는 게 맞을 것이다. 


서울에서 없이 산다고 무시당할까 그랬고, 밥 한 끼 얻어먹기라도 하면 거지 근성을 가진 것처럼 보일까, 싶어 그랬다. 그래서 누군가 밥 계산을 하기 전에, 혹은 상대가 계산이라도 할라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강하게 거부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이런 속마음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나를 “마음 씀씀이가 되었다”, “요즘 벌이가 좀 괜찮은가 보다”, “인심이 후하다” 등의 표현으로 나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덧 그 칭찬에 익숙해져 내가 밥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취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역효과가 났는데 주변 사람들이 나를 아주 풍족하고 여유로운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보다 생활이 더 어려웠고 쪼들렸고, 머릿속으로는 다음날 써야 할 돈 계산을 하느라 바빴다. 


어찌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 상황인데. 그러나 나는 내가 없다는 걸 말하기가 어려웠다. 내가 없다고 했을 때 나에 대해서 생각할 상대의 시선이 두려웠고 내 말을 들은 직후에 보일 상대의 표정들이 상상이 돼 도저히 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건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었다. 


나는 결국 그렇게 용기 없이 허세만 잔뜩 부리다가 빚만 더 늘게 하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나도 돈이 없어. 오늘은 깔끔하게 더치페이 어때?”     

라고 말을 했었더라면. 더치페이를 하자는 말이 창피한 게 아니라 분수에 맞지도 않는 행동으로 가면을 쓰는 게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란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어쩌면 고달픈 나의 삶도 그 애환이 조금은 달래 지진 않았을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때 그런 큰 대가를 지불한 덕분에 내게는 어떤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밥은 정~말 살 수 있을 때만 사자.

형편에 맞.게.          


2. 내게 맞는 자전거는 따로 있었다     

나는 자전거 타는 걸 엄청 좋아한다. 여름이면 한강에 자전거 타러 가길 즐기는데, 그해 여름에도 자전거를 타기 위해 한강에 나가보니 어떤 남자가 아주 번쩍번쩍 멋진 자전거를 타고 휘익- 내 옆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매료돼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그 자전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보았다. 


그러고 난 후. 자전거를 타기 위해 페달을 밟는데 그날따라 자전거 타는 맛이 안 나는 것이었다. 조금 전 내 옆을 지나간 럭셔리한 자전거의 잔상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고 있는 탓이었다. 이래저래 자전거 탈 맛도 안 나고. 나는 자전거 머리를 돌려 집으로 다시 돌아와 인터넷으로 조금 전 본 자전거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헉! 소리가 절로 나는 금액이었다. 이백 만 원은 족히 되는 자전거였으니 말이다. 내 처지에 이런 자전거는 언감생심이었다. 월세 내기도 빡빡한 내게 이런 호화스러운 자전거가 웬 말인가! 나는 이 럭셔리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누비는 상상에 빠졌다. 


그러다 보니 모니터 속 자전거가 더 갖고 싶어 졌다. 이 자전거를 타고 나갔을 때 부러움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나를 생각하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확 저질러 버릴까? 아니야... 지금 내 처지에 이런 비싼 자전거가 말이나 돼?’     


나의 마음이 두 편으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결국 그 자전거를 사버리고야 말았다. 빚을 내서 말이다. 그렇게 산 자전거는 사실 처음에만 애지중지 하며 탔을 뿐, 일이 바빠지고 삶에 치이다 보니 어느 날부터는 저 멀리 방치돼 버렸다. 


충동된 마음. 그리고 남들에게 잘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 그렇게 나는 빚을 또 불리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비단 자전거뿐만이 아니다.

모든 순간, 어떤 자리에서든 내게 어울리고 내게 맞는 옷이 있다. 그리고 그 옷을 입어야 제일 폼이 나고 빛이 난다는 것을... 나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3. 그놈의 몹쓸 부심’ 때문에...     

서울에서의 첫 소개팅. 설레는 마음으로 소개팅 날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데, 문득 입고 나갈 옷이 걱정되었다. 옷장을 열어보니 세상에 말도 안 된다. 입고 나갈만한 마땅한 옷이 없었다. 죄다 일할 때 입는 작업복에 낡은 옷가지들이 전부였다.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 당장 옷을 사고 나서 생활비 걱정을 해야 했고 옷을 사지 않자니 소개팅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정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옷을 사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소개팅 당일. 약속 장소에서 만난 소개팅 상대는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연상녀였다. 그날 우리는 밥도 먹고 차도 마시게 됐는데 웬일인지 상대 연상녀가 밥과 차를 다 산 것이다.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얻어먹기만 하고 헤어지다니.  이대로라면 소개팅 상대에게는 매너가 지질히 도 없는 남자로, 주선자에게 욕만 먹게 될 운명이었다.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3차 갑시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이어지고. 이제는 그녀와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계산서를 보는데... 헉! 입이 안 다물어졌다. 밥과 차 마신 값의 세 배나 더 나왔던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 그러나 이미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카드를 긁는 현실이 되었다. 그놈의 몹쓸 부심 때문에.     


옷값 + 소개팅 3차 계산 = 한 달 치 생활비가 탈탈

부심은 부릴 때 부리자.          


4. 그러다 인생 망하는 거지... 정신 차리고 기사회생     

이렇게 저렇게 진 빚을 막다가, 막다가 보니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기 직전이 됐다. 빚에 허덕이며 정신을 못 차리던 어느 날,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니 정신이 확 차려졌다.     


‘이렇게 살다가 정말 인생 망하겠구나.’     


나는 내가 갚아야 할 빚 목록을 쭉 적은 후. 이걸 해결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몇 날 며칠 머리를 싸매며 이 궁리, 저 궁리하던 나는 중국에서 비누 박람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청담동 사장님과 함께 천연비누를 만들어 중국 쪽에도 유통을 막 시작하는 참이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을 해결할 방법은 오직 중국 쪽에 죽기 살기로 천연비누를 론칭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이 기회야말로 하늘이 내게 마지막으로 준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중국으로 들어가 박람회에 참가하게 됐고, 현지에서 알게 된 중국 친구들을 통해 중간 마진을 먹는장사까지 하게 됐다. 중국 사람들은 한국 물건을 굉장히 좋아했는데 박람회를 통해 알게 된 중국에서 사업하는 친구들에게서 한국 물건들을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 들어와 중국 친구들이 요청하는 물건들을 떼다가 물건을 내주고 그 중간 수수료를 갖는 셈이었다. 그 돈이 1백만 원~2백만 원쯤 되었는데 이 수입이 꽤 괜찮은 수익이었다. (불법으로 물건을 떼다가 팔거나 했던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중국 기업들은 한국의 물품을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의 소량으로 구매할 수가 없기에 중간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제정신을 차린 후 스스로 파고 들어간 빚 무덤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쌓인 빚 무덤이 어느 정도 깎여 평지와 가까이 되었을 때 나는 숨을 휴우, 몰아쉬며 허공에 대고 말했다.     


“살았다... 이제... 다신 돌아가지 말자. 그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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