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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걸음의 경제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7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서울에서 나의 20대는 그야말로 ‘알바 천국’이었다. 편지봉투를 붙이고 운동화를 빨아주는 아르바이트, 출장뷔페 아르바이트, 커피숍 아르바이트, 발레 파킹 아르바이트, 가드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했다. 느지막이 시작한 공부로 입학한 대학 등록금에, 월세를 감당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사는 게 너무나 고달프고 힘들고. 그러다 보니 절로 이런 생각이 다 들었다.      


‘다달이 80만 원씩만 하늘에서 떨어지면 정말 좋겠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일 뿐, 현실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번 나의 한 달 수입은 60만 원. 여기에서 월세를 내고 공과금에 핸드폰 비, 교통비를 제하고 나면 내가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은 10-15만 원이 전부였다. 물가 비싸기로 셋째가라면 서러울 이 서울에서, 나는 이 돈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나만의 ‘생존 경제’를 만들어야만 했다. 


나는 먼저 내 지출목록을 작성해 그 안에서 가장 손쉽게 줄일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체크를 해보았다. 아무래도 가장 만만한 게 교통비였다. 가만 보자. 우리 집이 잠실 새내이니까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들이 압구정.. 지도를 보니 걸어 다닐만한 거리로 보였다. 나는 그날부터 압구정에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잠실 새내에 있는 집까지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걸어서 2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나는 그때부터 매일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운동도 되고, 차비도 아끼고.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아르바이트하랴, 학교 다니랴, 정신없이 사는 데에만 치여 살았던 터라 주변 풍경 따윈 쳐다볼 여유도 없이 살았는데 걸어 다니다 보니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한강 풍경이라든지 사람 풍경 등을 보며 지쳤던 하루에 힐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 20분의 시간에 나의 하루 일과를 정리하거나 미래에 대한 설계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는데 치여서 미래고 뭐고 지금 닥친 현실만을 마주하며 해치우기 바빴는데, 그래서 정말 마음에 여유 한줄기 심는 것도 사치라 여겨졌던 나에게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온전히 나를 위하고 나의 인생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하는 소중한 시간이 돼 주었다. 


나는 폭우가 쏟아지거나 폭설인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걷고 또 걸었다. 

이렇게 6개월 정도를 걸었을까. 나는 매달 5만 원씩을 더 비축할 수가 있게 되었다. 비축한 돈을 모아두기도 했고 어느 날은 정말 보고 싶은 영화를 보거나 읽고 싶은 책을 사기도 했다. 걸어 다니다 보니 헬스장이나 어떤 운동 클럽에 돈을 들이지 않고도 운동의 효과도 얻을 수 있었고, 또 영화도 보고 책을 읽는 등 문화생활을 조금씩 하는 여유도 부릴 수 있는 삶이 되었다. 


나는 이때부터 돈에 대한 나의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었는데, 작은 돈을 잘 관리해야만 큰돈도 잘 관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가 봤을 때 정말 작은 돈이라도,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


나는 이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요즘은 티끌을 모아봐야 티끌일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티끌을 모아봐야 티끌인 그것으로, 내 생활에 작은 여유와 정신적 건강을 찾아 일상에 시너지를 줄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태산 같은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을 얻는 것이 아닐까.      


들여다보면 어디 한 군데 빠져나갈 틈이 없이 빽빽한 나의 지갑 현실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다. 찾아보면 내 지갑 경제에도 솟아날 그런 구멍 하나쯤은 있는 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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