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6
먹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먹질 못하고, 사고 싶은 것이나 갖고 싶은 걸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던 어린 시절.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돈을 벌 수 있게 되면 처음 번 돈으로 제일 갖고 싶은 걸 하나 사야지.’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당시에 P사에서 나오는, 걸으면 바람 소리가 휙휙 나는 운동화가 유행이었는데 나는 그 신발이 꼭 갖고 싶었다. 그때까지 나는 엄마에게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조른 적이 없었지만 그때만큼은 달랐다.
어머니에게 운동화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마지못해 운동화 가게에 가보자며 나를 앞세워 갔다. 부푼 마음으로 운동화 가게에 들어서서 전시된 운동화를 황홀하게 바라보는데 옆에 서 있던 어머니의 옅은 한숨이 들려왔다. 가격 때문이었다. 그때 내가 갖고 싶은 운동화는 10만 원 정도였는데, 우리 집 형편 상 그 운동화를 사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한 번 운동화를 한 번 번갈아 쳐다보다가,
“에이, 이 운동화 실제로 이렇게 보니까 좀 별론 거 같아요. 엄마 옆에 다른 운동화 가게 있던데, 거기 가볼래요.”
나는 일부러 이렇게 말하곤 어머니를 이끌고 짝퉁 운동화를 파는 다른 운동화 가게에 가서 싼 운동화를 샀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 또래 친구들이 내가 갖고 싶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것만 눈에 들어왔다. 부러운 시선으로 한참을 운동화 뒤를 쫓던 나는, ‘월급을 받으면 꼭 저 운동화를 사야지!’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치킨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기다리던 첫 월급을 받는 날도 돌아왔다. 나는 받은 월급을 소중히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기쁜 마음으로 용돈을 드렸다. 그리고 운동화를 사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어쩐지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나는 품에 안은 월급봉투를 다시 한번 꼭 품에 안으며 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도저히 신발을 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 돈을 벌기 위해 땀을 흘렸던 지난 한 달을 돌이켜보니 신발 한 켤레를 사고 날아갈 돈이 아까웠다.
내가 이 돈을 벌기 위해 그동안 어떤 일들을 겪어냈던가. 그런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게 무서워졌던 것이다. 나는 이때 돈의 힘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돈이란 힘들 게 벌면 벌수록 쓰기가 어려워 움켜쥐게만 된다는 것. 그리고 쉽게 벌수록 쉽게 날린다는 것.
그런데 돈이란 게 참 얄궂어서 사람들은 부자가 되기에 애를 쓴다. 큰돈을 벌고 싶어 하고 무조건 돈이 되는 것을 하기 위해 앞장을 선다. 그래서 큰돈이 생겼다고 하자. 내가 생각했던, 아니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돈이 내 수중에 들어왔다고 하자. 나는 과연 그 돈을 감당할 수가 있을까.
사람들은 막상 큰돈이 내 앞에 왔을 때 당황스러워한다. 나에게 10억, 100억쯤이 생기면 이걸 하고 저걸 하고... 이렇게 쓰고 저렇게 쓰고... 목표들을 다 세워두지만 정작 그것이 현실이 되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포함해 그런 큰돈을 만져본 적도 벌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기 때문이다. 상상 속에나 있었던 그 돈이 눈앞에 나타났지만 결국 그 돈을 관리하는 방법을 몰라서 날리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어렸던 나 역시 돈을 아끼고 쓰지 않는 법만 알았지 제대로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지를 못했다. 그러다 보니 번 돈을 쓰는 게 무서워졌던 것이다.
그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몇 달로 나누고 쪼개서 모았다가 운동화를 살 생각 같은 건 하지를 못했던 것이다. 돈에 대해 무지했고 돈에 대한 체계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돈을 버는 것도 쓰는 것도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