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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신용카드 지옥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5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서울에 올라와 처음 월세에서 전세로 이사를 준비할 때였다. 그래서 내 생에 첫 전세자금 대출이란 것을 받아보기 위해 은행을 찾았다. 그간 대출이란 것을 해야 할 필요성을 지극히 못 느끼고 살았는데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절차였다. 


그리하여 대출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은행에 제출을 하고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게 됐다. 나에게는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내가 대출이 안 나올 거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대출이 안 나오는 이유는 신용등급 최악의 10등급이라는 결과였다. 나의 신용점수가 이렇게 최악으로 치닫게 된 것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무렵, 나는 서울 친구들을 따라서 신용카드란 것을 처음 만들었다. 이때 내 월 수입은 120만 원 남짓이었는데 그때는 신용카드에 대한 그 어떤 개념이 없었던 터라 아주 가볍게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성인이고 월급도 나오니까 신용카드 쓰는 것 정도야 감당할 수 있다고 여기며 대책 없이 덥석 카드부터 발급받고 써댄 것이 화근이었다. 카드 한도도 있으니까 카드고 쓰고 모자라면 현금을 쓰면 된다고. 그리고 이때부터 나의 첫 빚이 시작됐다. 신용카드라는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카드 한도를 다 쓰면 현금을 쓰고, 다음 달 월급으론 카드 대금을 막는다. 현금 없이 카드로 사는 인생이 펼쳐진다. 그러다 한도 초과가 되면 한도 증액을 해서 쓰고, 그렇게 씀씀이가 점점 커지게 된 나는 이제 내 월급으론 카드 값을 감당할 여력이 안 될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그즈음, 다른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하나 더 발급을 받는다. 나는 이제 내가 버는 돈의 세 배에 이르는 돈을 쓰며 가까스로 돌려막기로 카드 대금을 막고 그게 막히면 또 다른 카드를 발급을 받고. 이쯤 되면 신용카드만 서너 개쯤 지갑에 꽂고 돌려막기에 허덕이는 신세가 된다. 자꾸자꾸 빚으로 배를 불리더니 결국 내가 떠안게 될 빚은 몇 백에서 벌써 천 단위의 숫자를 찍는다. 나는 빚쟁이가 되었다. 


그러나 빚의 굴레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빚을 갚기 위해 또 다른 빚 창구를 열게 된다. 각종 카드사마다 있는 ‘론’이라는 이름의 대출을 활용해 빚을 갚는다. 빚을 내서 빚을 갚고, 또 그다음에도 빚을 내서 빚을 갚는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가 쓰는 돈 없이 빚은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늘어갔다. 


이렇게 월 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빚 독촉이 시작되고 여기에 시달리다 또 다른 빚 창구를 발견하는데 카드사마다 있는 최소금액 결제 시스템이다. 카드 값을 한 번에 갚을 능력이 안 되니 어마어마한 수수료를 지불하면서 또다시 빚을 만들어낸다. 


빚으로 다져지고 높아진 산은 점점 헤어 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톱니바퀴를 만들어내고, 나는 여지없이 그 굴레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계속해서 뱅뱅 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지극히 합법적인 은행의 노예가 되었다. 


이렇게 내가 서른 살 때쯤 만든 빚이 약 1억 정도가 됐다.      

빚을 지는 이유는 내가 지금 처해 있는 현재 말고 긍정적인 나의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한때 그랬다.      


“어차피 다음 달에 돈 들어오니까 이번 달은 좀 쓰자!”     


돈은 유토피아적 상상을 하게 하는 힘이 있다. 


예를 들어 나에게 백만 원의 수입이 있다고 하자. 월세를 내고 의식주 생활을 하면 적자다. 그렇기 때문에 내 수준에 맞는 지출을 하고 환경을 생각해 검소하게 생활을 해야 하지만 다음 달의 수입을 생각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를 꺼내 긁는 일이 아주 쉬워진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돈 플러스, 다음 달 수입을 미리 같이 합산을 해 총 이백 만 원의 수입이라고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렇게 카드를 마구마구 겁 없이 긁어대는 현실을 만들게 된다. 누구나 그렇다. 돈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언젠가 보았던 인터넷 기사에서는 서울의 생활물가가 전 세계 337개 도시 중 26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식료품과 의류 등 생활과 밀접한 몇몇 품목은 물가 높기로 악명이 높은 뉴욕보다 더 비싸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 소득 수준은 OECD 주요국 중 중간 수준에 머무는 데 비해 서울 번화가 임대료는 전 세계 446개 도시 중 8위 수준으로 최상위 권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런 서울에서 살아남으려면 적어도 최대한 빚 같은 건 좀 덜 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활도 빠듯하고 사는 것도 팍팍한 데다가 빚까지 떠안고 있으면 정말 인생 살 맛이 안 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런데 나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좀 바꾸어 말하고 싶다.     

“네 지갑의 분수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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