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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부 Aug 26. 2020

돈 없으면 그냥 서러운 거야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2-4

이상한 서울 나라의 이방인 - 오성부

나는 일찌감치 돈을 벌기 시작했다. 돈이 없어서 서럽고 힘든 기억들이 많은데, 특히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가 그랬다.    

  

1. 16단 자전거     

초등학교 6학년. 당시는 친구들 사이에서 16단 자전거기 대 유행을 할 시절이었는데 나도 아버지한테 16단짜리 자전거를 갖고 싶다고 떼를 썼더니 어느 날인가 중고로 자전거를 한대 사주셨다. 그런데 1단짜리 자전거였다.   


학교 언덕을 오를 때면 16단짜리 자전거를 탄 학교 친구들이 내 앞을 쌩쌩 가로질러 갔다. 그때마다 나는 이를 악 물로 오기로라도 그 1단짜리 자전거 페달을 꾹꾹 누르며 높은 언덕을 꾸역꾸역, 기어이 올라가고야 말았다. 16단 자전거 놈들에게 질세라 더 기세 등등하게. 


이렇게 겉으로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쓰리고 아프고 힘들었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런 생각이 불쑥불쑥 고갤 들이밀었다.     

‘우리 부모님은 도대체 왜 돈이 없는 걸까...’      

 

2. 그랜저 따위 안 타도 되게...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이때 우리 집은 개척한 교회에 조그마한 사택 두 개를 만들어서 살고 있었는데 건물주인 아들이 우리 누나와 또래였다. 건물주 아들은 누나보다 1살 많은 고등학생이었는데 누나가 다니는 여중 옆의 남고를 다니고 있었다. 


그 집 아들은 등하교를 할 때 늘 그랜저를 타고 다녀서 한 번은 아버지가 누나에게 학교 가는 길이 같으니 저 집 차를 타고 편하게 함께 등교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누나는 아버지의 말을 완강히 거부했다. 사춘기 여중생 소녀에게 이것은 남의 집 차나 얻어 타고 다니는 월세 집 딸이라는 걸 스스로 드러내고 다니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누나의 속을 알 길이 없었던 아버지는 누나에게 불 같이 화를 냈다. 태워준다고 하면 고맙다, 하고 편하게 학교 가서 그 에너지로 공부에 더 힘을 쓸 것이지 쓸데없이 고집을 부린다고 말이다. 게다가 회수권이며 토큰도 아낄 수 있어 좋은 일인데 누나더러 막무가내라며 고개를 저으셨다. 아버지의 말에 말없이 돌아서 흐느끼던 누나의 모습이 지금도 눈가에 새록새록하다.


나는 그날 아버지와 누나를 모습을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생각했다.     

‘학교 가까운 곳으로 정말 이사 가고 싶다...’   

  

3. 그깟 치킨 한 조각     

중학교 3학년. 나는 치킨 집 배달원으로 내 생에 첫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됐다. 한 달 월급 28만 원. 배달을 하자면 오토바이를 탈 줄 알아야 했지만 나는 면허가 없어서 오토바이 운전을 할 줄 아는 배달원 형의 뒤에 타고 치킨을 배달했다.


나는 그때까지 치킨이라는 음식을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는데 냄새가 정말 황홀한 것이었다. 배달 주문이 들어왔을 때 치킨을 튀기는 사장님이 한 조각 주기에 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내 생에 처음 치킨을 맛 본 날이었다. 


바삭하고 쫄깃하고.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까, 싶게 머리가 아득해질 정도로 정말 맛이 있었다. 그래서 다짐했던 것은 아르바이트 비를 받으면 치킨 한 마리를 꼭 사서 식구들과 나눠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치킨을 배달할 때였다. 


그런데, 그날 오토바이가 미끄러지면서 배달 사고가 났다. 바닥에 치킨 몇 조각이 튕겨나 나와 나뒹굴었다. 배달 사고라는 것에 놀란 우리는 다친 데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이 떨어진 치킨들을 주워 다시 가게로 갔다. 사장님은 사고를 낸 우리를 보며 엄청 화가 나신 듯했지만 배달이 더 늦어지면 안 되기에 재빨리 새로 닭을 튀기기 시작했다. 


닭이 기름에 들어가자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 순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울렸고 나는 사고가 나서 배달을 못하게 된 치킨에 눈길이 갔다. 나는 닭을 튀기고 있는 사장님을 한번, 치킨을 한번 보다가 마침내 목구멍으로 침을 꼴깍 삼킨 뒤 몰래 치킨 한 조각을 꺼내 입 속으로 쏙 넣었다. 그런데 이런. 치킨을 입에 넣은 순간, 사장님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사장님은 내 쪽으로 훽 돌아서며 무서운 눈초리로 나를 쏘아보았다.     


“사고는 내놓고 지금 치킨이 목에 넘어가냐? 이거, 네가 살래?”     


정말 서러웠다. 그깟 치킨 한 조각이 뭐라고. 게다가 새 것도 아니고 바닥에 떨어진 치킨인데. 그 치킨 한 조각쯤 인심 좋게 내어주면 어디가 덧나나. 세상에 그때만큼 창피하고 누군가가 그토록 미워 보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돈의 맛을 제대로 보았다. 돈이 없으면 그냥 서럽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돈이 없으면 부모님께 효도를 하고 싶어도 마음껏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돈에 악착같아지거나 돈이 최우선이어서 돈에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과 부족할수록 설움 당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4.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도 여전히 돈이 없는 나날들에 굴욕스러운 일도 있었고 온갖 설움에 북받치는 순간들은 있었다. 돈이 없어 울고 돈이 없어 서럽고 돈이 없어 화가 났던 나날들.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친구네 집에 얹혀살아야 했던 때의 집 없는 서러움이 그랬고, 죽도록 일을 해대도 결국 원하는 것 하나 살 형편이 안 되었을 때가 그랬고, 점점 돈에 맞춰 가는 내 삶에 화가 날 때가 그랬다. 


그리고 그즈음 봤던 한 영화가 생각난다. 그때 내가 봤던 영화는 <베테랑>이었는데 여기에서 경찰 역을 맡은 황정민 씨가 이런 대사를 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돈 좀 없다고 비굴해지지 말자. 돈 좀 없다고 어깨를 늘어뜨리지 말자. 돈 좀 없다고 나약해지지 말자. 옛 속담에 선비는 물만 먹고도 이를 쑤신다고 했다. 돈 좀 없다고 인생 다 끝난 게 아니다. 물만 먹고도 이를 쑤실 수 있는 배짱 갑 멘털 지존이 되어보자.     


그리고 돈 좀 없다고 꿈도 꺾고 소신까지 꺾어가며, 

찌질한 인생을 살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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