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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레나의 마음숲 Jul 18. 2021

초등 엄마 관계 맺기

햇볕과 바람과 비의 시간을 통해 과일은 익어간다.

3년의 짧은 워킹맘 시절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내가 가장 부러웠던 사람은 만 원짜리 동사무소 프로그램을 갈 수 있는 전업 맘이었다. 일반 유치원보다 비싼 영어유치원에 보냈고, 방과 후 프로그램을 2개 이상 신청했고, 피아노 학원을 보냈다.

하지만 아이는 낮에 하원 하면서 엄마 손잡고 동사무소에 가는 친구를 가장 부러워했다. 어쩌다 반차라도 낸 날이면 아이는 아직 하원 하지 않은 종일반 친구들을 붙들고 우리 엄마가 벌써 왔다며 방방 뛰며 좋아했다.

첫째가 7살이 되던 해, 선물처럼 둘째가 찾아왔다. 계획하지 않았던 임신이었지만 당황스러움보다 반가운 마음이 컸던 이유는 첫째가 학교를 갈 무렵이면 아이 곁을 지킬 수도 있겠다 싶은 희망이 들어서였다. 둘째를 낳고 다행히도 재택근무로 전환할 수 있는 자리가 나면서 나는 아이 곁을 지킬 수 있었다.

워킹맘으로 지내며 어린이집, 유치원에서의 엄마들 커뮤니티가 없던 나는 학교에 가고 나서 엄마들의 커뮤니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세계는 단연코 내가 그때껏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였다. 아이가 친구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나도 아이 엄마를 친구로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다. 10년 동안 같은 아파트에 산 어린이집 친구 엄마 2명이 없었다면 진심이 통하는 소통은 영영 못했을지도 모르는 초등학교 1학년의 시간을 보냈다.




첫째가 2학년이 되던 해, 사립 초등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전학을 온 아이가 있었다. 첫째는 전학 온 친구들에게 유독 마음을 쓰는 아이였다. 누군가가 외로워 보이거나, 어려운 일에 처해 있는 걸 보면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알아주는 오지랖 퍼 중에 한 명이었다. 첫째는 금세 전학 온 아이와 친해졌다. 전학 온 아이의 엄마는 얼마 후 나에게 따로 연락을 주었다. 첫째 덕분에 전학 온 학교에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차 한 잔을 같이 하자는 말에 나는 흔쾌히 그 마음을 받았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그 엄마와 나는 조용한 카페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의 어색함도 잠시 우리는 대화가 끊이지 않게 이어졌고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무장해제되어 많은 것들을 나누었다. 흔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점이, 지금 좋아하고 향유하는 것들이 비슷하다는 점이, 무엇보다 워킹맘으로 지내다 얼마 전 퇴직을 하고 전학을 왔다는 점이 우리를 급속도로 가깝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아침과 점심을, 어떤 날은 저녁까지도 하루의 많은 시간을 가족 이상으로 함께 했다. 공유하는 것들은 점점 늘어났고 어느새 비밀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잘 아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건너 건너 아는 엄마에게서 NIE 팀 수업에 빈자리가 났다며 우리 첫째를 그 수업에 추천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네에서 유명한 수업이라 대기자가 많다는 이야기만 듣고는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아이를 그 수업에 합류시켰다. 비밀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그 엄마에게도 그 수업을 하게 되었노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하고도 한참 동안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 엄마의 아이도 첫째가 합류한 그 수업을 오랫동안 기다렸고, 아직도 대기 중에 있다는 사실을.

첫째가 그 수업에 합류하고 나서부터 이상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예전 같지 않은 냉랭함과 겉도는 듯한 대화만을 이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내심 많이 서운했지만 아주 깊게 내 모든 것을 나누었던 그 엄마와의 시간을 그렇게 내려놓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 시간을 그냥 흘러가게 두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엄마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티 나지 않게 그 엄마를 받아주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그 엄마에게도 또 다른 커뮤니티들이 생겼다. 아이가 하나인 그 엄마는 차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해줄 수 있었고, 아직 어린 둘째와 차가 없던 뚜벅이인 나와는 다른 동선과 다른 방식의 모임들을 이어갔다.

그리고 때때로 그 커뮤니티와의 약속이 펑크라도 날 때면 그 엄마는 나를 찾아왔다. 어느샌가 그 엄마에게 있어 나는 언제고 자신이 필요할 때, 외로울 때  노크하면 쉽게 만날 수 있는 스페어타이어가 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억지로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를 나는 그때의 시간을 통해 깨닫곤 한다. 그때 가졌던 내 진심을 부정하고 싶지 많은 않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충분히 진실했고, 충분히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다만 그 진실과 최선이 같은 시선과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지 못했음이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다.


계절 안에서 과일은 햇볕과 비와 바람을 통해 시간을 들여 무르익어간다. 익지 않은 과일 맛을 이제는 굳이 먹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제시간에 맞게 햇볕과 비와 바람을 통해 익어가는 과일처럼 나는 지금 그 속도에 맞춰 인연을 맺고 그 시간 또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인연에 내 진심이, 내 최선이 아쉬움으로 남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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