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조조, 장비, (방구석)여포가 산다
<Episode 1>
"OO 어머니, OO 담임입니다. 전화드려 놀라셨죠? 너무 놀라지 마시고 들어 주세요.
오늘 체육시간에 OO가 친구랑 부딪혀서 벽에 머리를 부딪히는 사고가 있었어요. 그런데 OO가 좀 전 상황들이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네요. 제가 걱정이 좀 되거든요. 지금 바로 조퇴하고 병원에 다녀와보셨으면 해서 연락드렸어요."
조조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정년을 코앞에 둔 고령의 담임선생님은 수업 중 만난 사고(?)로 적잖이 놀라 목소리도 조금 떨리셨다.
"그런데, 선생님. 누가 밀쳤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그게, OO가 힘 조절을 좀 못하는 친구예요."
"네, 선생님. 아이 데리고 병원 바로 다녀올게요. 너무 걱정 마세요. 엑스레이 찍으면 그 기억 아마 돌아올 거예요."
"네? 엑스레이 말고 mri 이런 정밀 검사해 보셔야 할 거 같은데, 많이 비쌀까요?"
"아니에요. 엑스레이 면 충분할 거 같아요."
조조를 벽에 밀쳤다는 아이 이름을 듣고 나는 안심했다.
영유 동창인 데다 조조를 유치원 때도 가끔 힘으로 누르려던 아이였다.
전화를 끊기 전 담임선생님께서는 이 말을 덧붙이셨다.
"어머니, 밀친 아이가 저한테도 혼나고 그 상황에도 많이 놀라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묵혀둔 감정까지 한 번에 훅 날린 조조가 나를 보며 엷은 미소를 띠였다.
<Episode 2>
며칠 전 장비가 학원 수업 쉬는 시간에 전화를 걸어왔다.
"엄마, 엄마, 이번에 중등 선행수업도 한다는데 저 들으면 안 돼요?"
"지금도 숙제가 많아서 힘들다 하지 않았니?"
"아니에요. 저 더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왜 듣고 싶은지 물어봐도 될까?”
“이번에 수학 테스트 봤는데 잘 본 2명만 중등 선행 수업을 듣게 해 준대요.”
“아 그래? 그 2명 중 한 명이 혹시 너니?”
“아니요. 그냥 저 듣게 해달라고 하려고요.”
“음...... 집에 와서 다시 얘기하는 게 어떠니?"
“(시무룩) 알겠어요.”
4학년까지 현행도 느슨하게 공부한 장비는 5학년이 되면서부터 영어에 이어 수학도 학원에 보내달라 졸랐다. 남편은 저 의욕이면 뭐든 하겠다며 당장 학원 등록을 독려했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장비는 지금껏 느슨했던 자신의 뒤늦은 선택을 후회했다. 그러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 나 사립 중 가려고요. 방학 특강 좀 듣게 해 주세요."
2~3년 선행을 마친 친구들을 따라잡아보겠다며 특강을 듣게 해 달라 요청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당장 해보라며 카드를 내어주었다.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장비는 쉼 없이 달렸다. 도시락까지 싸가며 중간에 집에도 들르지 않았다. 두 달의 특강을 끝낸 장비가 말했다.
"엄마, 아빠, 나 그냥 일반 중 가려고요."
식물인간을 야채 인간이라 말할 수 있고, 말벌을 horse bee라 말할 수 있는 장비의 용기가 나는 가끔 은 무섭고 가끔은 웃프다.
<episode 3>
반장선거에 나가려는 장비의 연설문을 듣던 여포가 말했다.
“엄마, 나 이번엔 반장 선거 안 나가려고.”
“이번엔? 너 나간 적도 없잖아!"
"아니! 이번에 나갈 생각이었는데 안 나간다고."
“왜 나가려고 했어? 아니 아니 왜 안 나가?”
“작은 누나 반장 됐다고 상장받아오면 나 또 샘날 거 아니야! 그래서 나가려고 했지! 근데 생각해 보니까 어차피 인기 없어서 떨어질 거 같아.”
“용기 내 보지 왜?”
“아냐, 반장 되면 심부름 많이 해야 해서 힘들겠더라. 그래서 그냥 안 나가.”
작년 봄, 여포는 장비가 들고 온 임명장을 보고 통곡의 눈물의 흘렸다.
이름 석 자만 겨우 쓸 줄 알았으면서..... 왜 반장이 하고 싶은지 진심 궁금했다.
"엉엉. 반장 하면 '공부 잘하는 사람'같아 보이잖아."
공부하기는 싫어도 공부는 잘하고 싶고, 심부름은 하기 싫어도 누군가에게 주목은 받고 싶은 방구석 여포는 올해도 통곡이다.
(장비의 용기는 올해도 먹혀 버렸다.)
우리 집엔 고3 조조와 초6 장비와 초3 여포가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