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나를 지켜주는 견고한 요새다
인간이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라지만 가끔은 불안이 너무 심해서
왜 인간은 이 따위로 설계되었을까 하는 원망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요즘 나는 특히 불안한 시기를 겪고 있다.
3주 동안 온 에너지를 쏟아 강연을 들었는데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해 허무해지기도 했고,
6년 가까이 먹던 정신과 약을 끊은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아침에 가장 희망차고 기분도 좋았는데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짜증부터 나고 하루를 보낼 생각에 막막해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감흥이 없다.
특히 주말은 하루종일 자유시간이라 증상이 더 심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할 일이 있어서 주의를 돌릴 대상이라도 있지,
집에 하루종일 처박혀 있으니까 뭘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앞으로의 미래가 아득하고 막막하게만 느껴졌고,
당장 내 앞에 닥친 거대한 시간의 무게 때문에 숨이 막혔다.
어제도 가슴을 짓누르는 불안에 괴로워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노트를 펼치고 펜을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나의 감정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떠오르는 대로 한 페이지 정도를 채웠을 때,
아까의 불안은 대부분 사그라든 상태였다.
덕분에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고 있던
북스타그램 계정 개설과 글 수정 작업, 만화 업로드를 해낼 수 있었다.
오늘도 하루종일 기분이 들쭉날쭉하고 불안감이 엄습해오길래
저녁을 먹자마자 당장 노트 위에 내 감정을 마구잡이로 썼다.
이번에는 두 페이지를 꽉 채웠다.
불안 때문에 목구멍이 조여오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그 불안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기 위해
종이 위에 내 감정을 거의 토하다시피 써내려갔다.
작가들 인터뷰를 보면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분들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감정을 정리하고 불안을 잠재우는 데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 같다.
특히 나처럼 정신과나 심리상담소가 나를 도와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는 내 이야기를 들으면서 속으로 고개를 저을 수도 있지만
종이는 내 감정과 생각에 대해 그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들어준다.
남 눈치가 보여서, 혹은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도
노트에는 자유롭게 적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려 한다.
불안감이 들 때마다 노트든 블로그든 떠오르는 대로 적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감정이 정리되면서 그 실체가 드러날 수도 있으니까.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그 글을 쓰기 전의 나와 쓴 후의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말에는 파동과 입자가 있어서
입밖으로, 또는 자판으로 내뱉은 말은 마음속으로 담아둔 말보다 훨씬 큰 위력을 발휘한다.
불안과 싸우기 위해 써내려간 글자들이 점점 쌓인다면
그것으로부터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견고한 요새가 구축될 것이고,
언젠가는 발밑에서 철썩이는 불안의 파도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음지을 수 있을 만큼
견고하고 강한 사람이 되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