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과외비 128만원을 쏟던 시절

나의 기억 속 그 때 그 시절

by 드림트리

그 때 그 시절, 대학입시가 코앞에 다가왔던 급박한 시절.

한 달에 내게 들어간 과외비는 128만원이었다.


#영어과외

1. 약 12년 전, 한 달 과외비 55만원을 부르며

"고*대 출신이에요" 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과외선생.

그녀는 출신학교조차 의심스러울만큼 최악이었다.

"직접 저희집에 오셔서 과외 받으면 됩니다."

방 4개가 딸린 50평대의 아파트에서 받았던 과외는 실상 과외가 아니었다.

동시간대, 3개의 방에 각각 모르는 학생들이 시간차를 두고 왔고, 그녀는 여기저기 방마다 왔다갔다하며 모르는걸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녀는 '1:1 밀착형 수업=과외' 의 의미를 전혀 모르는듯했다.

아니면 캐나다로 간 아들의 유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에 미쳐있거나 말이다.

그녀는 직업비하, 부모님 무시 발언을 자주 하였다.

"다른 사람들 몸 씻기는 사회복지사같은 사람들.. 솔직히 너무 아닌것 같아. 난 그런거 말이지.. 정말 못하겠더라. 대단하다고 해야할지.."

"너희 부모님 말은 듣지도 마, 걸러들어."

신기하게도 나 또한 이런 돌팔이 밑에서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했고, 엄청난 돈을 갖다바치며 부모님께도 최악의 불효를 하게 되었다.

책상 위에 놓여진 고*대 졸업장과 학위수여식 사진을 보며, 마치 내가 그 학교에 갈 수 있을거라는 착시현상으로 나의 시야를 가려버렸던 탓이었을까.

(마치 스카이캐슬의 예서처럼 말이다.)

아버지가 힘들게 벌어들인 피같은 돈을 그런 헛된곳에 날려버렸다는 죄책감은 여전하다.


2. 그녀는 연*대 대학생이었다.

30만원대로 저렴하게 과외를 해준다는 지인의 소개를 받고 과외를 시작했으나 , 막상 우리 엄마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40만원은 받아야해요."

그녀는 가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프다며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으나 난 바로 눈치챘다.

꾀병이라는 것을.

가르침보다는, 본인의 대학 타이틀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었다.

성적을 올려보겠다는 일념보다는, 명품백을 사고 싶다는 목표로 과외를 하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물론 내 수준이 성적을 올리기엔 적합하지 않았음도 인정한다.)

그들은 자신을 위한 공부에 성실했을뿐, 돈을 받고 일하면서도 다른이들에게는 성실하지 않았다.

2연타로 경험한 영어과외 이후, 대학 타이틀이 그닥 멋있어보이지 않았다.


#수학과외

수학 성적이 그나마 잘 나왔던 이유는, 내가 수학에 그나마 관심이 있었고, 과외 선생들을 나름 잘 만났기 때문이다.

출신 대학을 떠나 내가 열과 성을 다하면 그들도 똑같이 최선을 다해 알려주었다.

특히 동생과 함께 받았던 43만원의 수학과외,

과외선생님의 출신대학은 상대적으로 좋지 않았으나 오랜 과외경험과 탄탄한 실력 그리고 성실함을 갖춘 좋은 분이었다.

어느 날 ,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낸 한 부부가 내게 물었다.

부부 : 수학과외 받는다며? 선생님은 어디학교 나왔어?

나 : **여대 나오셨대요.

부부 : (상당히 비웃으며) **여대?.. (깔깔) 그러니까 너네가 성적이 안나오지. 얼른 바꿔라 (비웃음)


잘 가르치는것과 공부를 잘 하는건 분명 달랐다.

그럼에도 당시 세상이 대학 간판 하나로 사람의 모든걸 판단하는게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국어과외

동*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의 국어(언어)과외는 35만원이었다.

국어선생님의 집에 과외를 받으러 갈때마다 따뜻한 홍차를 타주셨다.

고3 타이틀을 갖춘것만으로 극강의 스트레스를 받던 나에게, 그 홍차는 따뜻한 힐링을 선사해주었다.

어떤날은 우리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과외비로 피자를 한턱 쏘며, 내년에는 멋진 대학생이 바란다고 했던 그 선생님.

예쁘게 차려입고 맛있는걸 사주는 대학생 선생님의 모습은 자유로움의 상징이자 내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국어과외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잠깐의 힐링을 맛보러가는 시간이었다.

물론 마음에도 없던 공부를 해야한다는게 너무 싫었지만 말이다.



언,수,외 를 위해 많은 학원과 과외를 다녀보았다.

'잘 가르치는 건 출신대학과(공부를 잘했던것과는) 다른거구나' ,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돈받고 일하면서 (가르침에 있어서)불성실한 사람들도 많구나' 라는 진리를 얻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돌이켜보면 배움에 있어 가장 행복함을 느꼈던 시간은 따로 있었다.

바깥은 매미가 목청 찢어지게 울어대던 무더운 여름,

작은 시골마을의 청소년 수련관 지하1층에 들어설 때 시원하다 못해 춥다고 느낄정도로 빵빵하게 틀어둔 에어컨 바람의 상쾌함.

그 곳에서 몇십명의 또래 아이들과 북/장구/꽹과리를 치며 연습했던 사물놀이반 수업이 그저 행복했다.

선생님 한 명의 감독하에, 각 자 연주하고 싶은 악기로 서로 장단을 맞추며 '덩기덕쿵더러러러'를 외치며 연습할 때의 즐거움은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방학마다 열렸던 청소년 수련관 어린이 수업들은 참 유익했다.

선착순 모집으로 사람들 발 디딜틈 없는 경쟁속에서도, 우리들을 등록하기위해 어머니는 끝없는 줄을 기다리고 계셨다.


시사,논술, 글쓰기 라는 학문에 관심과 흥미를 갖도록 만들어준 글쓰기 반,

풍경화를 그릴 때 엔돌핀 수치가 올라간다는걸 느끼게해준 그림 반,

먹물에 벼루가는 재미로 다녔던 서예반.

생각해보니 이 세 가지는 여전히 내게 즐거운 흥미거리로 남아있다.

여전히 글을 쓰고있고, 성인이 되어 미술과 캘리그라피를 배웠던 경험이 있으니 말이다.


많은 돈을 쏟아부었던 언,수,외 과외의 기억은 안타깝게도 '고통,스트레스,불효'라는 단어 외에는 남아있는게 없다.

다만, 어린시절 청소년수련관에서 배웠던 경험들은 '행복, 즐거움, 훌륭한 가성비'로써 인생의 가장 큰 경험과 자산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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