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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트리 Nov 02. 2023

인생의 남기고 싶지 않은 기록

10년차 대기업 직장인의 회사이야기

작년은 유독 공허함과 외로움이 가득 느껴지는 한 해 였다면, 

이번년도는 압도적인 업무량과 직장내괴롭힘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루종일 회사에만 얽매어 일만했던 상반기를 통으로 날려보내고 , 다가온 하반기는 새로 바뀐 업무가 나와 맞지 않아 너무 고통스러웠다. 


신입도 아니고 10년차에 접어든 직장인인 나는 주말만 되면 압박감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단 하루라도 주말이 편치 않았다. 일요일 저녁마다 다음날 해야 업무들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실타래처럼 얽힌 , 바빠서 미처 쳐내지 못한 일들은 언제나 내 일상을 괴롭혔다.


상반기 내내 지속되고 있는 물리적인 업무량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니 제발 인력을 달라고 간청했으나 철저히 묵살당했다. 

매번 인력을 요청하는 내게 부서장은 업무적인 역량과 능력의 문제로 못하는거라고 답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난 네가 일이 그렇게 많은지도 모르겠어"


차가 끊겨 한밤중 퇴근하는 나날이 심하게 잦아지자 그에게 상황을 말하니 이렇게 답한다. 

"00직원 좀 봐. 걔는 너보다 더 늦게 퇴근해"

00직원은 집이 멀어서 차가 안막히는 시간에 퇴근하기 위해 야근하는 경우도 있다는걸 난 알고 있다. 

종종 다른직원과 저녁식사 후 사무실로 복귀하는것도 모두 알고있다. 

그는 매번 일 때문에 야근하는건 아닐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건 00직원에게 피해가 갈까봐 그냥 가만히있는것이다. 그토록 성실하고 일도 잘 하는 직원을 본 적도 없었기에, 그에게 조금의 피해도 끼치고싶지 않았다. 부서장은 이런 내 심리를 이미 알고 있었다. 


철저히 나를 파악했으며, 조종했고, 궁지로 몰아넣으며

단순한 나를 다루는데 능숙함이 더해지는듯 했다.


가만히 야근하는 내게 뜬금없이 이런말을 한다. 

"협력사 직원 **이 좀 봐봐. 나이도 어린데 얼마나 똑부러지고 똑똑하니!

너도 그렇게 돼!"

내가 업무를 가르쳐준 신입 협력사 직원과 비교를 당하다니, 10년차를 바라보는 내게 못하는 소리가 없다.  

그는 나를 깎아내리며 놀리는것에 재미까지 들린듯했다.


업무가 너무 힘들다고 지속적으로 고통을 토로하자 내게 말한다.

"우리그룹 사람들 다 힘들어. 너만 힘든게 아니야."

그런데 우리그룹 사람들은 모두 6시반만 되면 모두 퇴근하여 오프라인 자리비움 상태가 된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내가 '6시가 되면 우리그룹 사람들이 모두 오프라인 상태가 되지 않냐'는 말을 감히 못할거란걸.. 

 

나는 때론 밤 10시에 퇴근하고도 집에서 재택으로 일을 해야했으며, 주말마다 언제나 노트북을 켜 재택으로 또 일을 해야했다. 수당도 보상도 없지만, 일이 정말 많았기에, 다음날에 몰아칠 업무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야했다.


그는 평일, 주말 밤마다 시도때도 없이 올라오는 결재 문서를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나보다.

마치 '일도 못하고 역량도 딸린 넌 이렇게 죽을때까지 일을 하는게 맞고 당연한거다'라고 생각했던것 같다. 


몇 번이나 일하다가 죽는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인생의 끝을 회사에서 맞이하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엄청난 부담감과 압박감에 하루도 편히 살아오지 못했던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아주 편해졌다.

난 떠나기로 했다.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기로 다짐했다. 

세상을 등지지 않고 부서를 옮기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부서장 마음대로 바꿔버린 업무도 나와 전혀 맞지 않았고, 심심하면 나를 하대하고 깎아내리는 그는 뭐 하나 배울것도 없는 정신병 걸린 인간일 뿐이었다.


그간 나의 노력이 너무 아깝기도 했지만 , 생명을 위협하는 업무량과 상사의 못배운 인성을 볼 때면 더 이상 미련이 없었다. 

나는 고과를 깔끔하게 포기하고, 아주 소중한 내 생명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다른 부서로 옮기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옮겨주세요.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어요."


그런데 상황이 생각보다 어렵게 흘러간다.

대체자가 없었고, 당장 대체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는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윗선에서는 굉장히 분주해진 느낌이다. 나를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그 사이 부서장은 직장내괴롭힘 가해자로 되어 지방 사업장으로 발령받았고, 직급이 강등되었다고 한다.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을 두고 주변에서는 내게 힘을준다.

"신경쓰지마. 그 분은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거고.. 너만 생각해.. 너만" 


그런데 바뀐 업무는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안그래도 아파서 힘든 내게 또 다른 가시가 다가와 찌르고 있다. 

화장실에 가서 벽을 붙잡고 살려달라고 신에게 애원했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이 심상치 않았다.

몸과 마음이 가시에 마구 찔려 회생조차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즈음,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절대로 인생에 새기고 싶지 않았던 '정 신 과'로 말이다. 


"요즘 정신과는 옛날의 그런 의미가 아니야. 그냥 마음의 감기일 뿐이야. 너무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잘 다녀와" 

과거의 나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쉽게 이야기했으나, 막상 닥치니 두려웠다.

솔직히 내 인생 기록에는 절대로 새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건 하나였다. 

'쉼' 

쉬지않고 달려왔고, 부끄러움없이 일해왔다.

난 정신과라는 기록을 통해 '휴직'을 회사에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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