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직이 계약직을 거쳐 대기업 정규직이 되는 험난한 길
인생의 희박한 확률 속 행운
'한 번 파견직은 영원한 파견직'
지금은 퇴직하신 상사는 말했다.
그들이 정규직이 될 일은 아주 희박하며, 회사에서는 알음알음 파견직을 이렇게 칭하고 있다고 한다.
*파견직 : 파견업체의 소속 직원이 대기업 직원들과 같은 사무실에서 한 공간에서 일하지만, 복지/연봉 등은 파견회사 내규를 따름. 즉 대기업 직원이 아닌 용역 외주업체 소속의 직원.
나와 대립각을 세우던 상사는 종종 나를 따로불러 파견직과 정규직을 나누었다.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지! 넌 정규직이야.
쟤들은 우리랑 소속이 달라. 다른 회사 직원이야. 2년 후에 그만둘 애들이니 너무 어울리면서 휩쓸리지 마"
첫 문장은 이해가 되었지만 , 두번째 문장부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소속을 기준으로 인간의 급을 나누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대기업에서 파견직이 정규직으로 되는 과정은 아주 희박하다.
차라리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경력을 쌓고, 대기업 입사에 도전한다면 훨씬 가능성이 높을것이다.
대기업 파견직에게는 책임소재를 넘길 수 없는 단순업무만 배정할 수 있다.
해당직원이 실수를 하면, 정규직이었던 내가 그를 대신하여 거래처에 사과하곤 했다.
(아주 희박한 가능성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한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매우 운이 좋았던 것이다. )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파견직원이 정규직까지 되었던 사례에 대해 소개해보겠다.
STEP1. 소속이 다른 '파견' 직원 : 2년
STEP2. 대기업 소속 '계약' 직원 : 2년
STEP3. 대기업 '정규' 직원 전환
무려 4년의 기간을 가슴졸이며 기약없이 기다려야 하고, 운이 좋으면 계약직까지 전환되어 2년 기간만료 후 해고통보를 받는다.
정규직이 되었던 직원들은 '성실(야근, 근태) + 인성(동료들의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하며, 본인이 일하는 분야에서의 '업무역량'이 돋보여야한다.
즉, 어느정도의 일머리는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세대가 다른 4-50대 상사/임원들의 대화도 잘 맞춰주는 센스는 기본이다.
여기에 계약이 도래하는 시점에 특수한 상황이 더해져야한다.
해당부서에 그를 대체할 수 없는 인력부족 상황이 발생해야하고, 그 사람을 채용하지 않으면 회사에 손실(손해)을 끼치는 위험상황이 맞물려야 한다는 뜻이다.
극히 희박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일례로 내가 보았던 '대형 고객사와 계약서 체결 업무' 케이스를 소개한다.
정규직 1명, 그를 보조하는 계약직원 A가 있었다.
A는 소속이 다른 파견직원으로 입사했으나 일머리가 있고 성실하여 대기업 계약직으로 운좋게 전환이 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계약 체결이 많았던 성수기 시즌에, 계약직원의 2년 기간만료 기간이 도래하고 있었다.
하필 그 시기, 정규직원이 예상치 못하게 가족의 건강악화로 갑작스러운 휴직을 선언하게 되었다.
다른부서의 정규직 인력을 투입시키기에는 누가봐도 인수인계 기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아주 바쁜 성수기에 대형고객사의 컴플레인이 발생할까 노심초사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정규직만큼 업무를 빠삭하게 알고 있는 계약직원A를 기간만료로 해고시켰다가, 다음인력의 매끄럽지 못한 업무로 회사의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까지 예상되자 그(A)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계약직원A는 정규직으로 전환이 되는 큰 운을 획득했다.
(*안정적인 정규직원이 계속 있었다면 계약직원은 기간만료로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대기업 정규직 전환은 일만 잘하면 되는것이 아니다.
여러 특수한 상황들이 모두 맞아 떨어져야하고, 흔치 않은 상황들이 계약만료 시점에 겹쳐져야한다.
나의 가족인 친언니가 대기업의 파견직으로 가는걸 고민했을 때, 난 무조건 반대깃발을 들고 뜯어말렸다.
"첫 시작은 중소기업이라도 정규직에서 시작하길 바래. 거기서 업무경력 쌓고, 대기업으로 이직하는게 훨씬 가능성이 있거든. 경력에 도움되는 핵심 역량을 중소기업에서 잘 길러봐.
배우고 싶은 분야가 명확히 있으니, 굳이 물경력이라 칭하는 파견직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을것 같아.
중소기업에 비해 당장 월급을 높게 받는다고 한들, 단순업무만 부여되기 때문에 경력조차 될 수 없어.
중요한 20대의 시작을 돈만보고 시간 낭비하면서 대기업 파견직으로 일하기엔 너무 아까워."
중소기업에서 일하면서, 대기업 파견직을 알아보던 친언니에게 했던 나의 조언이다.
상대방이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른 답변을 줄 수 있겠지만, 가고자 하는 분야가 뚜렷했던 친언니에게는 중소기업 정규직을 권했다. 경력을 쌓고 이직을 여러번 하던 친언니는, 당시 대기업 직원었던 나보다 훨씬 높은 연봉으로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은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지만, 인생의 정답같은 길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
오랜 회사생활을 경험하며, 지인 / 친구들에게도 종종 조언을 해주고 있다.
무조건 파견직 입사를 반대하는건 아니다.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 따른 답을 주고 싶다.
대기업 공채 입사 11년차에 퇴사한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내가 계약직이었다면..?'
답은 내 마음속에 있다. 고로 나는 참 운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