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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May 14. 2021

달콤한 나의 도시, 부다페스트

'잘 쉰다는 것'에 대하여

"K 씨는 나흘간의 연휴 기간 동안 뭐 할 거예요? 나는 쉬는 게 더 싫어. 할 게 없어."


-'할 게 없다고요? 난 벌써부터 설레는데...' (속마음)






쉬는 것에도 노하우가 필요한 지 언제부턴가 '잘 쉬는 법, 잘 쉬는 기술, 휴식법' 등의 단어나 문구들이 종종 눈의 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은 쉽게 해도 잘 쉬는 것엔 영 젬병인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왔으니, 어쩌면 이를 위한 가이드 라인은 필수 요소 인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나도 잘 쉬는(사는) 것에 대한 욕심 아닌 욕심으로 지금 여기, 헝가리에 터를 잡고 있는 것이니.

여전히 배워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선 늘 뭔가에 쫓기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있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어깨 근육이 뻣뻣해져 오는 것만 같구나)

쉬어도 뇌가 바삐 움직이고, 마음이 불안하고, 몸이 아파오고. (그때의 나에게 지금의 ‘잘 쉬는 법'을 전수해 주고 싶다)



물론 헝가리에 있다고 해서 인이 박인 내 습성이 쉽사리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가 체감할 정도로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좋은 쪽으로 말이다.

최소, 굳이 '~법' 따윈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은 성장하였다.






도시 전체가 조용하다.

하긴, 부다페스트의 주말은 항상 평화롭다.

이런 여유가 내게 '잘 사는 법' 같은 거 없이도 '그냥 살면 돼'라는 메시지를 편안하게 주입시켜주는 듯하다.

산교육이랄까.



괴테는 "건축은 얼려진 음악"이라는 말을 하였다.

그의 말을 인용해 보면, '부다페스트는 내게 얼려진 음악'과도 같은 곳이다.

내게 음악은 쉼의 일종이기에 이 도시는 한마디로 쉼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다.




부다페스트, 뉴거티(Nyugati Palyaudvar M)역


'커피를 담아 가야지!' - Six Letter







플랫 화이트를 담은 텀블러 + 당근 케이크가 들어있는 박스(Bite Bakery)를 태우고(?) 오늘의 무대로 가본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 (Orszaghaz, latogatokozpont : 헝가리어로 '오르사그 = 국가', '하즈 = 집'을 뜻한다.)




두너강, 강변(그리고 주변에)이 담고 있는 아름다운 광경, 널찍한 공간, 수많은 벤치,

이 장소를 한껏 입체감 있게 만들어주는 노란 트램.

이 공간이 내게 주는 힘은 무척이나 크다.



‘어쩜 이러지?’싶을 정도로 지루하거나 질리지가 않다.



내가 쉼을 얻고, 삶을 그리길 원할 때

도화지 삼고 싶은 곳.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공간.

도시도 자연을 어색하지 않게 입을 수 있다고 말해주는 증거, 부다페스트.







국회의사당은 페스트 방면 두너강(헝가리어, 영어로는 '다뉴브강', 독일어로는  '도나우강'이라 불린다) 변에 가로 잰 듯이 올곧게 서있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헝가리 국회의사당.

너를 보면 내 어깨에 괜스레 힘이 들어간다.

내가 너를 만든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뿌듯한지!






Kossuth Lajos(코슈스 러요쉬, 헝가리 혁명가)

이 광장 이름의 주인이다.





고요하지만 생동감 있는 공간이다.

그 사실이 나를 한껏 들뜨게 했고, 난 그 기운을 포개어 쉼표를 살포시 찍어본다.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줄 아는 도시, 부다페스트.






요즘 꽂혀 있는 바이트의 '당근 케이크', 안 달고 맛있다.

한 입 베어 물고, 진한 커피 한 모금 -



이미 완독 한 수필집과 아직 못다 읽은 소설 한 권을 들고 나왔다.

둘 다 끝장(?) 낼 요량으로 말이다.



읽다 보면 감성의 변화가 일어날 때가 있는데,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는 것까지 계산해둔 준비물이다.





광장 한가운데 헝가리 국기('정열, 충성, 희망'을 상징)가 펄럭이고 있다.






부다페스트의 상징물.

Old tram, 2번 트램(Villamos)




국회의사당이 오선지라면,  2번 트램은 화음을 만들어내는 음표 -






언제, 어디서든 툭- 걸터앉아

이 도시의 일원이 될 수 있는 벤치가 도처에 즐비해있다.

이 관대함이 참 좋다.















뉴욕에서는 경제적 배경과 상관없이 평평한 센트럴파크에 누울 수 있고,
공원을 산책하고,
벤치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고,
브라이언 파크에서 토요일 여름밤에는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
이런 도시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공통의 추억이 만들어진다.

                        유현준의 <도시 이야기> 중






자유의 광장을 거쳐 걷기를 이어간다.

뒤돌아보기 차마 '안녕'하기 힘든 국회의사당의 모습이 견고한 톤으로 인사를 건네고 있다.






Szabadsag Ter (써버샤그 띠르 : 자유의 광장)



두 할머니의 뒷모습.

헝가리 할머니들은 귀엽다. (귀여우시다)

형형색색의 베레모(5월이 되어도 꾹 눌러쓰신다)를 쓴 모습들, 그 옆으로 삐져나온 흰머리 칼, 80년대의 운치가 느껴지는 트렌치코트, 노인의 역사가 느껴지는 빛바랜 진주 귀걸이, 올이 나가 헝클어진 스웨터, 눈빛에 담겨있는 그들의 지혜, 자신들의 삶을 관조하며 걷는 여유로운 걸음걸이까지.



그들에겐 과거를 짐작케 하는 각자 고유의 색이 있다.

함부로 어르신들의 삶을 예측할 순 없지만,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여유로운 나라, 헝가리에서 살아가고 계신 모습이 그들의 지금을 만든 것 같아 난 그게 왜 이리도 부러운지.

내가 그동안 봐왔던 거리의 헝가리 노부부들은 대부분 함께 손을 잡고 거닌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앞으로의 계획이 뭐야?"보다 "어떻게 살아가고 싶어?, 어떤 삶을 원해"?라는 질문이 내게 더 알맞은 문장이 될 수 있단 걸 구별하기 시작한 것이.

광고나 드라마나 나오는 삶을 꿈꾸기보다 내가 개척한 나만의 온전하고도 고유한 삶을 바라 왔고,

손에 잡히는 물질이나 눈에 보이는 결실들보다

내 눈이 반짝이는 것에, 태도에서 풍겨 나오는 단단함에 대해 꿈꾸기 시작했다.



'그런 삶이 분명 존재하겠지?'하고 갈망하고 궁금해왔던 내 마음의 씨앗이 세상을 향해 눈을 돌리게 한 원동력이 되었고,

혹시나 하고 상상해왔던 삶이 '이곳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가닥을 잡으면서부터 난 드디어 안도할 수 있었다.



이들의 모습이 '돈, 명예, 힘'보다 크고 위대하게 느껴져 내 삶의 지향점처럼 자리 잡히고 있다.

그 맞잡은 두 손에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만 같았고,

그 모습을 귀하게 여기던 순간부터 이곳에서의 삶에 대한 확신은 커져만 갔다.



저기 걸어가는 할머니들의 절반도 안 되는 살을 살아온 나로서는 앞으로의 일을 그려본다는 것이 하나님의 영역을 넘어선 일이기 때문에,

감히 '무엇'이 되겠노라고 단언할 수는 없겠지만,

'어떠한' 모습으로 앞으로를 걸어가고 싶은지에 대한 각오는 다시 한번 다질 수 있었다.







Bank Utca (뱅크 우쩌)

일명 부다페스트의 월스트리트(!)

이 주변 건물들은 신식이 많고, 거리 정렬이 좀 더 날렵하다.






집으로 가는 길 -


저녁이 되니, 조금 쌀쌀해졌다.

엊그제는 비상식적(28도)으로 덥더니,

돌아오는 한 주는 잦은 비가 내릴 예정이란다.






'이런 건물도 있었어?'하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잦은 달콤한 나의 도시, 부다페스트 -




각 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다 보면

내게 손짓을 보내며 호감을 안겨 주는 곳이 있다.

더 소통하고 싶고, 알아가고 싶고,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으면 좋겠는 욕심나는 사람 같은 곳.

반면에 어떤 화려한 미사여구를 던져도 진심이 전해지지 않는 곳도 있다.



그중 부다페스트는 (전자도 후자도 아닌)

영영 이별하고 싶지 않은 도시였다.




나는 그런 이곳을 여전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때론 그것이 내게 순수한 쉼이 되기도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헝가리의 수도는 ‘부다페스트’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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