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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Apr 11. 2022

[인도에서] 좋은 책방

-Sophia bookshop-


Sophia bookshop in Pune city [in India]



책 읽는 소피아 아주머니의 멋진 모습 -



입구에 들어서며 보이는 한 여인이 있다.

‘저 분이 소피아 아주머니구나..’



소피아 북샵이라 이름 지어져 있기에 그녀는 필시 소피아 아주머니련다.



그를 따라갔다. 자주 가는 인도 중고서점이라고 했다.



큰 기대는 없었지만 호기심이 생겼다. 그에게 이 시간을 맡기고 따른다는 그 느낌이 좋아 그대로 그를 따라 향했다.



생각보다 거리가 멀었다.

너저분한 길가, 엄마의 말대로라면 흡사 성산대교 같아 보인다는 '코레가온 파크 브릿지'를 건너고,



사이사이 보이는 호텔과 잘 깎이고 닦인 소박함을 떠나 한참을 도태된 모양으로 도시를 지키고 있는 판자촌 주변으로 상대적인 위화감을 주는 건물들, 커다란 면적을 자랑하는 인도의 '푸네' 시내, 새삼 보는 또 다른 Pune의 여러 모습을 지나 그렇게 당도한 곳, 소피아 북샾. (구글맵 상으론 Sham sharon society라고 구역을 가리킨다)



소피아 아주머니가 환히 웃으며 우리를 반긴다.


인도인은 한국인에게 관대하다. 비단 한국인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하얗고 낯선 이방인들을 좋아한다.



그들은. 누구든지 그들의 모습과 달라 보인다면 빠질 듯한 눈망울로 하얀 이방인을 쳐다본다. 그윽이. 깊이 있게. (인도인들의 신체적(?) 특성상 초롱한 눈망울을 그냥 뜨기만 해도 찰랑찰랑 많은 것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윽하다는 것이다)




소피아 책방, 책 냄새 풍기는 한 평 남짓의 책방



나를 인도한 그는 이곳에 자주 온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소피아 아주머니의 태도에서 알 수 있다. 필시 단골 고객과 주인장의 대화이자 태도이다.



소피아 북샾은 두 평 남짓 되어 보였다. 삼면이 철장 선반 위 누런 책들로 둘러싸여 있고, 나머지 문 입구에 남은 한 면, 소피아 아주머니의 의자가 놓여있다.




그곳이 그녀의 평생 자리처럼 느껴졌다.



자주 오는 단골인 그에게 한국 서적이 꽤 들어왔다고 유쾌한 목소리로 전한다.



"당신이 많이 기뻐할 것이라 생각해! 덕분에 나도 기대되고"



그녀의 영어는 꽤나 낭랑하고, 자연스러웠다. 여느 인도인들의 인도식 특유의 발음과는 또 달랐다.

대략 그녀의 사회적 수준과 자라온 환경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그녀와 동시대를 지내왔을 법한 이들에게 사실 이와 같은 대화를 이어갈만한 영어 실력을 내가 이곳 인도에 있는 동안(4년 전 비행기 안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예외)은 듣지 못했었고, 우선 단 몇 평이어도 이러한 여유를 만끽하며 책에 뒤덮여 숨 쉬는 아주머니에겐 분명 삶에 허덕여 보이는 다른 이들과는 다른 평온함이 있었다. (여유로움보단 평온이 맞다. 인도에선 모든 이들이 여유로워 - 배부른 근심, 걱정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 보이기에 좀 더 구별점을 두기 위해선 '평온'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는 단숨에 한국어로 된 제목의 책들을 뽑아낸다. 지적인 손놀림이었다. 그냥 툭-하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권.



어떤 기준으로 집었냐 물으니 '목차를 보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기준보다 아닌 것을 제하는 쪽으로 답한다. 되려 더 단단한 단호함이 느껴진다.



한두 장 넘겨보고 두어 문장을 짚어 본 후, 직감으로 고른다 하였다. 크게 까다로운 기준이 없음에 다(많이 다양하게)독가임에 분명해 보였다. (아! 자기 계발서는 읽지 않는다 하였다. 나와 같다) 나 또한 전엔 소설 하나만을 고집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다양한 장르를 만나보고 싶다. 갈수록 내가 아는 것이 하나라도 있나, 싶은 것이 세상을 더 넓게 깊게 성실히 탐독해야겠단 생각뿐이다.




순식간에 다섯 권을 집은 그 -




"이 머나먼 타지에서, 그것도 대형서점이 아닌, 인도 수도도 아니고, 대도시보다 조금 덜한 이 뿌네라는 곳에, 그 뿌네 중심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꽤나 외진 이곳에 어떻게 이런 한국 서적들이 들어와 있을 수 있죠?"라고 내가 물었다.



한국 유학생들이나 주재원으로 온 한국인들 등 그런 이들로부터 건너 건너온 책들이란다.


‘나, 그리고 그.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이 이곳을 거쳐갔구나..’



무언가 소수민족을 이룬 기분도 들고... 외국여행 때마다 진귀하거나 풍요로운 순간을 즐길 때면 느끼는 그 이상의 감정이 솟아났다. 이 서점을 알게 된 것이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SUNDAY 'CLOSE' 입니다.




이건 꿈이다. 꿈이 아니고서야 내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이건 실제다. 실제이고, 존재하는 것이기에 내가 있다.



소피아 북샾이란 이름을 본 순간부터 이곳은 꿈속 장면 같은 곳이라 생각했다. 소피아 아주머니를 보고선 더욱 확고해졌다.

나를 인도한 그와 할머니 나, 인도 책방, 구석구석 숨어 있는 한국 서적들. '비현실'처럼 여겨졌다.



그가 값을 치르려 한다. 각 도서의 뒷표지를 보며 눈을 굴린다. 무언가 중얼거리기도 하고..



"I will pay..........in rupee......."

-"Ok! Great!"



그가 먼저 값을 불렀고, 아주머니는 만족한다는 눈빛을 보낸다.



책값을 왜 먼저 부르냐 물었더니 이 아주머니께서 한국 화폐 단위를 모르시고, 한국인들로부터 들여온 중고서적이기 때문에 책의 인지도, 가치 등에 대해 문외한이어서 종종 오는 한국 손님들에게 그들이 책정하는 값을 따르고 믿는다 하였다. 특히 그는 단골손님이다.



한국인인 내가 봐도 그의 인상은 꽤 정직해 보인다. 아주머니께도 그리 보이리라... 결국 계산해 보니 그녀에게 (물가 대비) 밑지는 장사가 아니다. 인도에서 한국인의 인심은 좀 더 후하다. 타지에서 좀 더 자비로워지는 한국인 특유의 아량이 있다.



그는 갑자기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곡선을 그리더니 한 권의 책을 집어 들었다.



"오쇼 알아요? 인도인들이 존경하는 위인인데.."

-"아뇨, 처음 들어봐요."

"그럼 한 번 읽어봐요.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내용도 좋고, 인물도 좋고.."

-"아, 네. 감사합니다."



그는 며칠간의 나를 겪고,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오쇼의 일대기를 담은 책을 권한다.

나에게, 어떠한 도움을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본 그라면, 분명 옳은 책을 '나에게 알맞게' 권했으리라 생각한다. 분명.




책도 기대되고, 지금 이 순간도, 이후로도 뜨거운 가슴으로 평생을 두근거리며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와 이 서점의 힘이 거대하게 다가왔다.



이곳에선 누구와도 사랑에 빠질 수 있겠단 생각까지 든다.

짧다란 원형 의자에 두런두런 앉아 이 책, 저 책을 들여다보며 맡는 책 향기. 어질하게 빠져든다.




소피아 아주머니, '어떠한 삶을 걸어왔을까'.




이런 후미진 곳에서 자그마한 책방을 꾸려가며 저런 호탕한 웃음과 멋스러운 말투를 구사하는 아주머니라니.



30년 후에 내 모습이
더도 덜도 말고 저분과 같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리라!


아주머니는 갑자기 남편 이야기를 꺼내신다. "나와 남편은 천생연분이에요! 예전엔 식사 태도나 옷매무새 등 사소한 결점들로 서로를 헐뜯었다면 지금은 언제나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정도쯤이야'하고 넘기는 일이 많아졌죠. 그이는 참 멋진 사람이에요. 나의 모든 행동과 하는 일을 지지해 줘요. 나 또한 그를 존경하고요! 그런 사람을 만나야 해!"




나는 "정말 멋져요!"라고 말하여 호탕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이 책방을 나서면서 그에게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서점이 아닌, 책방이란 명칭이 더 어울린다. 'Sophia BOOKSHOP'



곧 있으면 떠나는 발걸음이 못내 아쉽다. 못내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환상적인 꿈을 깨기 싫은 기분이다.



-"우리 커피 한 잔 마시러 갈까요?"

"좋죠!" 그가 말한다.



살아가는 이야기, 책 이야기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봐야겠다.

풍족한 대화가 오고 갈 것이다.



4월의 인도. 소피아 아주머니가 계신 책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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