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담긴 글에 대하여 :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되레 전공을 하였던 문학에 대한 애정이 깊어졌다.
삶을 향한 고찰을 문학만큼 잘 대변하는 것이 있을까. 팍팍한 일상을 마주하고 있을 때면 이따금씩 떠오르곤 하는 교수님의 편지(USB에 담아두고 프린트까지 해서 보관 중),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4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부드럽지만 견고함이 엿보였던, 여느 교수님들보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한 스승님으로부터의 메일이 도착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울림을 주는 멋진 편지글이다.
혹시나 교수님께서 어떤 키워드를 넣어 이 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메일 내용에 관해 저작권(?) 침해가 될 것인지 하는 약간의 우려도 있지만, 내용상 (문학과 영어를 공부하는, 혹은 배움을 갈망하는) 특정 다수에게 전달되어도 무방하다는 판단이 들었기에...
‘이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동경을 품었었다.
직업, 물질, 보여지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이 지닌 태도와 행동, 마음가짐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돌이켜보면 난 그러한 것들을 갈망하고 꿈꿔왔던 거 같다.
자신의 경험, 노하우, 이점 등을 애정하고 키우되 자신만의 이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닌 나눔으로 실천하며 공유하는 이가 되자는 다짐을 했던 것이. 꿈 많고 열정 가득했던 때에 삶의 지표를 발견했던 순간이.
딱 이맘때 즈음이었다. 봄을 흉내 내는 것 같았던 겨울.
그 서걱하고 맑았던 공기 내음이 썩 기분 좋았던 그날을 기억한다.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들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며 그때 가졌던 ‘감사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더불어 문학을 사랑하고 학문하는 이들에게 이 글이 잔잔한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길 바라며..
교수님의 편지를 내보낸다.
새해가 되었고 그 사이 눈도 많이 왔는데, 다들 잘 지내고 있겠죠?
12월 중으로 여러분들에게 메일을 한번 보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바쁜 일들이 겹치다 보니 이제야 연락하게 되었습니다. 몇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우선 모두 작년 가을 학기 저와 함께 열심히 노력해서 의미 있는 수업 시간을 만들어간 점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다음은 수업과 관련된 일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다름 아니라 여러분들의 기말 고사 답안지에 관한 것입니다. 저의 원칙은 학생들에게 페이퍼와 답안지를 돌려주는 것인데 이미 방학을 했고 저는 학교에 따로 연구실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의 기말 고사 답안지를 과 사무실에 맡겨 두었습니다. 3월 말까지 과 사무실에 보관해주기로 했으니 각자 조교를 통해서 찾아가기 바랍니다. 이 얘기를 하다 보니 여러분들의 학점에 대해서도 잠시 설명하고 싶군요. 어떤 학생들은 본인은 상당히 열심히 노력했는데 왜 학점이 A나 B+가 나오지 않았을까 궁금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일단 여러분도 짐작하고 있듯이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성적을 몇 점이라도 올려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이 학기 초에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을 해서 시험을 잘 보고, 페이퍼 점수를 다 채우고, 출석 및 참가 점수를 잘 받았기 때문에, 역시 상대평가라는 상황에서는 점수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실 가을 학기는 이미 지나갔고, 이 기회를 빌어 여러분들의 앞으로의 (영어) 공부와 관련해서 잠깐 얘기해 볼까 합니다.
우선 영어공부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가능하다면 앞으로 어떤 분야의 어떤 과목이건 영어로 수업을 듣고 페이퍼를 쓰고 토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런데 여러분도 경험했듯이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고급 영작문 능력은 논리력과 창의력뿐만이 아니라 구문 능력도 갖추어져야 하니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여러분들이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로서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어휘수준 및 발음공부 방법에 대해 한 두 가지 구체적 제안을 하겠습니다.
먼저 어휘력은 대학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무리 없이 따라가려면 최소한 TOEFL에 나오는 수준의 어휘는 단어의 뜻과 철자 및 발음 그리고 사용례를 철저히 알아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가운데 KAPLAN이나 BARRONS 등의 미국 교재를 구해서 공부하거나 (예를 들어 이디엄 교재로는 KAPLAN의 TOEFL IDIOMS QUIZ BOOK같은 책이 있습니다), 여의치 않다면 한국 교재 가운데 토플 수준의 어휘를 따로 정리해 둔 책 (발음부호와 파생어 및 예문이 잘 나와 있는 것이라면 어느 책이나 큰 상관없습니다)을 구입하거나 빌려서 이번 겨울 방학 중에 단어와 이디엄은 철저히 공부해 두도록 하세요.
그리고 외국어를 잘하려면 표현을 익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발음도 잘해야 합니다. 나이 먹어서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면 native speaker들이나 영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처럼 완벽한 발음을 할 수는 없지만, 개인적인 노력 여부에 따라 어느 정도는 액센트를 줄이고 영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BARRONS에서 나온 American Accent Training (with 5 CDs by Ann Cook)입니다. 이 책은 특히 한국의 성인들이 어차피 흉내내기 어려운 몇 몇 개별 발음에 치중하는 것보다 미국 영어 특유의 리듬과 액센트를 집중적으로 훈련시켜주기 때문에 특히 한국 대학생들에게 큰 효과가 있습니다. 씨디플레이어를 켜놓고 책을 보며 꾸준히(최소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매일 3개월 이상) 따라 하면 서서히 발음에 변화가 생기고 자신감을 가지고 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일단 익숙해지면 책을 안 보고 연습해도 되지만, 특히 처음엔 책을 보는 게 나을 겁니다. 물론, 외국어이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 도달하더라도 계속해서 연습하지 않으면 어느 시점에서 발음과 표현이 급속도로 다시 나빠지기 때문에 적어도 몇 년간 꾸준히 공부하라고 충고해주고 싶습니다. 어휘력, 표현력과 발음 공부는 특히 영어로 수업을 듣고 참가하는데 기본적인 사항이므로 모두들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특히 혹시라도 다음 학기에 제 수업을 들으려는 학생들은 반드시 이번 방학 때 가능한 한 많은 준비를 해두기 바랍니다. 어떤 특정한 단어나 표현을 떠올릴 때 과연 학생들이 이것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하면서 머릿속에서 대체할 수 있는 쉬운 단어와 표현을 더듬어 본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여러분을 무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학생들 간에 어느 정도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에 개인적인 노력으로 상향 평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말입니다.
음....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뭐 대학강사가 아니라 마치 책 장사가 된 기분이 드네요. 다른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개별적으로 대화할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최대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영어 공부에 대해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러분들도 잘 아시다시피 저는 사실 영어 선생이 아니라 문학 선생이 아닙니까.
해서 이 기회에 여러분들이 방학 중에 관심을 가지고 읽을 만한 책들도 몇 권만 소개할까 합니다. 영미 문학은 전공과 관련해서 많이 읽을 기회가 있을테니 다른 나라 작품들에 대해 얘기하지요.
우선 성장기 소설을 권하고 싶은데, 성장기 소설 중에서는 누가 뭐라해도 독일 작가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을 첫 손 꼽을 수 있겠네요. 십 대의 청년기에서 이십 대로 넘어갈 때 인생의 목적과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고민을 두고 홍역을 치루는 것은 누구나 거쳐가야 하는 하나의 통과의례입니다. 저는 이 책을 뒤늦게 대학 시절에 우리말 번역본으로 처음 읽었는데 정말 몰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삼십 대에 영역본으로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여전히 우리가 평생 생각해 볼만 한 내용이 담긴 책이라고 느꼈습니다. 여러분 중에 성장기 소설을 넘어서서 인간의 존재의미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붙들고 씨름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역시 헷세가 쓴 “싯다르타”를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에 지금은 한 유명한 투자신탁회사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는 후배가 재미있는 책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영역본으로 한 권 구해서 보내주었는데, 출퇴근 길 버스 안에서 한 달 만에 다 읽었다고 합니다. 그 후배는 영문과 졸업한 지도 한참 되었는데 버스 안에서 읽을 수 있을 정도니 여러분들도 어렵지않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친구는 이 책이 정말 감명 깊었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한 번 읽어보고 왜 이런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지 한 번 생각해보세요.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싯다르타”는 붓다, 즉 부처의 다른 이름) 불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쓰여진 책이지만 기독교인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사실 놀랍게도 그 고민의 뿌리에 있어서는 기독교와 불교에 상당한 공통점이 있지요. 다만 해법에 이르는 접근법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실존주의적 (존재의 의미와 생의 부조리 등에 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과 “전락” (펭귄에서 나온 영문번역판의 제목은 “The Fall")을 추천하고 싶군요. 이방인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전락”은 다소 생소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전락”이 훨씬 더 충격적인 작품이었습니다. 누군가 방학 동안 이 책을 읽고 자신이 받은 충격을 개강 후에 제게 얘기해주면 좋겠군요.
독문학 불문학 작품 중에 몇 편을 추천했으니, 러시아 문학도 한 편 소개하지요. 똘스토이도 좋지만 (특히, “안나 카레리나”) 가장 흡입력과 깊이가 있는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입니다. 빼어난 성격묘사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리묘사, 허를 찌르는 극적인 반전에 반전, 게다가 알료샤와 조시마 장로가 대변하는 기독교의 신본주의적 관점과 이반이 번뇌 속에 추구하는 인본주의적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독자들을 완전히 장악하는 소설입니다. 이 작품을 안 읽고 소설을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작품들을 죄다 읽은 학생들에게는 현대 희랍 작가 중 니코스 카잔차키스를 권해주고 싶군요. 제가 가장 재미있게 또 감명깊게 읽었던 작품은 “희랍인 조르바” (영문 번역판의 제목은 “Zorba the Greek"이고, 한국어 번역으로는 이윤기 씨가 영역본을 재역해서 ”고려원“에서 출간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입니다. 앤쏘니 퀸이 주연한 흑백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는데,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의 “자유” 및 “자유인”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단지 일반적 의미에서 사회적, 정치적 속박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사상에서의 자유, 학문에서의 자유, 심지어 종교에서의 자유까지도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걸작입니다. “희랍인”은 무엇보다도 “자유인”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으면서도 철저하게 삶의 근본적인 힘과 질서에 거스름이 없는 조르바의 삶은 오늘날 고도로 정제된 제도와 문화 속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가 그저 부러워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그런 의미에서 지적이고 정신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에 대한 회의감과 더불어 심지어 어느 정도의 열등감마저 갖게 만드는--그런 자유와 사랑에 충만한 삶이지요.
사실 좋은 책을 권하자면 끝이 없어요. 그리고 한국 작가 중에도 “모비 딕”을 쓴 멜빌이나 도스토예프스키에 필적할 만한 작가가 한 명 있기는 해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지. 혹시 들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죽음의 한 연구”라는 책을 쓴 박상륭 씨가 있지요. 박상륭 씨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평생 서점을 운영하며 한국어로 책을 썼는데, 어느 평론가는 “박상륭이 떠난 한국 문단은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와 토끼들만 우글거리는 형국“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80년대와 90년대 초반까지 박상륭의 소설은 지성인이라고 자처하는 대학생들은 누구나 읽었어야 했던 ”비급“과도 같은 작품이었습니다. 한 문단, 심지어 한 문장이 몇 페이지씩 흘러가기도 하는데, 비문은 하나도 없다는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에요. 하도 그 문장과 언어가 특이한데다 내용마저 난해해서 (적어도 처음 읽을 때 그렇게 느껴집니다) 제 개인적 경험과 이 책을 읽은 다른 몇몇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 50페이지를 읽는데 보통 한 일 주일 이상이 걸립니다. 하지만 일단 마의 50페이지를 ”소리내어“ 읽고 나면 그 다음은 남도 말씨와 가락에 바탕을 둔 박상륭 특유의 호흡에 빨려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굿거리, 휘몰이, 자진모리 등과 같은 리듬과 박자가 이 책을 읽는 동안 여러분을 춤추게 할 것입니다. 언어만이 무서운 힘을 가진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저는 이 책을 읽다가 어떤 대목에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면서 읽은 적이 있을만큼 그 내용도 강력한 작품입니다. 문학 공부를 제대로 한 번 해보겠다는 학생에게는 필독서입니다. 다만 워낙 큰 도전(아마 한 두 달은 걸릴 겁니다)에 될테니 아무 때나 불쑥 붙들었다가 포기하지 말고 호흡을 가다듬고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은 다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게 좋을 겁니다. 그래도 뭐, 7, 8차례 찾아오는 대학 시절의 방학 동안에 한 번쯤 ”죽음의 한 연구“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는다는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되겠지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점점 어려운 작품들을 소개한 것 같아 우리말로 된 (원래는 독일어로 쓰여졌지만)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소개하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50년대, 60년대에 “불꽃같이 살다 간” 전혜린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인 있겠지요. 이 책은 전혜린 씨가 쓴 것은 아니고, 전혜린 씨가 독일 유학 시절에 한국어로 번역한 책인데, 한국어 제목은 “압록강은 흐른다” (속편은 “그래도 압록강은 흐른다”). 원래 저자는 대한 제국 말기에 태어나 삼일운동 후 어찌어찌해서 결국 독일로 망명하여 그 곳에서 망국의 한을 안고 의사로 여생을 보낸 “이미륵”이라는 사람입니다. 원제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 책은 출판되던 해, 독일 출판협회에서 해마다 선정하는 그 해에 가장 아름다운 독일어로 쓰여진 책으로 뽑힌 바 있습니다. 심지어 나중에 독일어 교과서에도 일부가 실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원작도 빼어났겠지만 전혜린 씨가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아름답게 옮겨놓은 우리말 번역도 빼어나기 때문에 언어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지요. 구한말의 양반가에 태어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그 시대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는데, 동시에 어린 아이가 경험한 그 시절의 자연과 관습 등이 정말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머리 아플 때 천천히 음미하며(savor) 읽으세요. 저는 이 작품은 한꺼번에 죽 읽어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아껴가며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한꺼번에 보따리를 너무 많이 풀어놓아서 혹시 압도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이런 책들을 한꺼번에 읽을 수도 없거니와 또 그럴 필요도 없지요. 각자의 취향과 상황에 맞는 것이 있다면 조금씩 읽어보세요. 지금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세계가 열릴지도 모르니까.
수업 시간에 그런 말 한 적 있는데, 기억하나요?
문학은 결국 머리로 하는게 아니라 감수성과 열정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었죠? 사실 문학작품만큼 우리의 감수성을 건드리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또 우리의 삶의 폭과 깊이를 키워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우리의 가장 직접적인 고민과 구체적이고 생생한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쓰여졌을 때, 문학은 우리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감동을 주고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온통 뒤흔들어놓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이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은 분명 특권계층입니다. 지금 현재 무엇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그 끝없는 가능성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대학시절은 무엇이든 경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기간입니다. 하지만 이 시절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십분 발휘하여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지,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가치있는 지를 제대로 찾아보고 고민해보지 않는다면 그러한 특권의 시간은 매분 매초마다 여러분의 손아귀에서 스르르 빠져나갈 것입니다. 절대 잊지 마세요. 공부를 위한 공부, 학점이나 취업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의 정신세계를 넓혀주고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데 바탕이 될 수 있는 그런 공부를 하세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정말 마음껏 공부하세요. 그리고 영어공부와 독서는 여러분이 생에서 해야하는 그러한 고민의 한 축에 자리잡았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점 명심하세요.
글이 너무 길어져 미안합니다. 하지만 수업 말미에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그러나 여러분과 같은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로서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입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고 알차고 의미있는 방학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