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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Nov 14. 2022

헝가리에서 열린 결혼식

내 친구의 결혼식


부다페스트에서 북쪽으로 35km 정도 떨어진 'Vac(바츠)'라는 도시에서 친구의 결혼식이 있었다.



헝가리에 살면서 총 세 번의 결혼식에 참석 했었는데,

첫 번째는 한국 남자 & 헝가리 여자의 예식이었고,

두 번째는 한국 여자 & 헝가리 남자,

세 번째가 신랑, 신부, 하객 모두 헝가리인들만 참석하는 순수 헝가리 결혼식이었다.



회사에서 동료 이상으로 가깝게 지냈던 Tamara가 결혼을 하는데 나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남편 될 사람도 내 이야기를 자주 들어서 많이 궁금해한다고.


헝가리는 동거 문화가 만연해 있는데 따마라가 남자친구와 동거 중인 걸 알았던 나는 종종 그녀에게 "결혼은 안 해?" 하고 물었었다. 그러면 그 친구의 대답은 한결같이 "결혼엔 관심 없어!"였는데, 어느 날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반지를 자랑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며 그와 결혼할 것이라고 자랑하던 그녀. 막상 프러포즈를 받으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기뻤단다. 결혼이 하고 싶어지더라고.. 그래서 바로 식을 올릴 준비를 할 것이라 신나했던 그녀의 표정이 아이처럼 귀여웠다.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묻길래 "당연히 가야지!" 하고 화답했는데, 알고 보니 회사에서 유일하게 나만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다른 헝가리 친구들이나 상사들도 초대를 못 받아서 혼자 멋쩍어했던 기억이…


한국인 상사가 본인도 결혼식에 가도 되겠냐고 물었는데 난감해했던 따마라의 표정도 가관이었다. 결혼식은 안 되고, 나중에 따로 밥을 먹자고 제안하는데, 할말이 없더랬다. 초대장이 가진 상징적인 의미가 정말 크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는 적당히 아는 사이가 아닌, 본인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하나의 표식인 것이다)









헝가리의 결혼 문화는 한국의 문화와는 조금씩 차이(개인적으로 느낀 바를 열거)가 있다.



1. 우선 헝가리 결혼식은 초대장을 받지 않은 하객들은 결혼식에 참석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한두 달 전부터 결혼식에 올 하객들의 리스트를 정리하고, 개개인에게 참석 여부를 확인한 후 명단을 확정시킨다.


2. 또 대체적으로 헝가리인들의 결혼 예식은 긴 편이다. 무려 1박 2일간(or 2박 3일) 축하의 시간을 갖는다. 그래서 숙소도 예약해야 하고, 기본 세 끼 이상의 식사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하객 명단의 정확성은 필수이다. 내가 간 세 결혼식이 다 그러했다.


3. 결혼식이 열리는 곳은 주로 신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개인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을 수 있다).


4. 그리고 결혼식은 구청(polgári eskübö - 우리나라의 주민센터 같은) 공무원의 진행 하에 이루어지는 서약(신랑, 신부 각각 한 명씩의 증인 필요)을 거쳐야 합법적인 결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서약식이 끝나면 신랑, 신부, 하객 모두 샴페인을 들고 건배를 외친 후, 정식으로 부부가 됨을 알린다.


5. 결혼식이 끝나면 그때부터 밤새 하루 종일 춤만 춘다(이게 가장 쇼킹 포인트다. 정말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춤만 춘다. 심지어 초대 전에 신부가 "춤출 거니까 연습 많이 해와" 이런 유의 경고 아닌 경고?까지 날린다)


6. 축의금 문화,는 없었지만 요즘은 헝가리도 이 문화로 변해가는 추세이다. 기존의 신랑, 신부가 필요로 하는 선물을 주는 것에서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7. 결혼식 끝나고 신혼여행을 따로 가지 않는다. 경조사 휴가도 따로 없다(물론 1년에 한 달 이상의 휴가를 쓸 수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길게 떠날 수 있다).







초대장이자 청첩장 : 결혼식 진행 순서가 적혀있다.








결혼식 2주일 전, 피로연장에서 10번 테이블에 앉으면 된다고 말해주는 신부, 따마라.

내 옆엔 헝가리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친구가 앉아 통역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친절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다.







뉴거티역에서 바츠까지는 약 30분 정도가 소요됨 -







작은 기차 여행이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지라 엽서만 미리 사두고 기차에서 급하게 편지를 써 내려갔다.

'쓰는데 내가 시집가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바츠는 부다페스터들의 여름 휴양지로도 인기가 많은 곳이다.

실제 결혼식은 바츠에서도 20분 정도 차로 떨어진 곳에서 열렸다.











신부에게 전달할 꽃바구니와 축의금 -






부다페스트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꽃집이 생겼다.


결혼식에 전달할 꽃바구니라 화사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생각보다 훨씬 풍성하고 예쁜 결과물이 만들어졌다. 역시 한국인의 손재주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바츠 역에서 따마라 친구의 차를 타고 결혼식이 열리는 피로연장으로 향했다.

날이 너무 좋아 내 마음도 신부의 설렘처럼 반짝이는 듯했다.






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에 Csaba (처버, 따라마 친구)가 수영장에서 만난 신랑, 신부의 스토리, 신랑이 신부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등의 이야기를 생생히 들려주었다. 회사에서의 따마라는 여장부다. 헝가리인 중에 처음 본 유형의 친구랄까. 일에 열정적이고 욕심도 많고, 욕심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주도면밀하게 일처리를 하고, 리더로서 부원들까지 살뜰히 챙기는 일명 '원더우먼'이었다. 그녀는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나에게 찾아와 고충을 토로하곤 했다. 절대 그 외에 사람들에겐 티 내지 않는 프로페셔널한 태도까지 갖췄다. 나 또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이 친구에게만 속내를 드러냈고 그러면 적재적소에 내게 달려와 함께 고민을 덜어주던 소중한 친구다.










와아아아아!

"헝가리에 이렇게 멋진 곳이 숨어 있었어? 완전 헝가리의 토스카나잖아!"

(관광객들은 헝가리에 부다페스트가 전부인 줄 알지만 실제로 이곳 말고도 큰소리로 자랑하고 싶은 명소들이 많다)



결혼식에 집중하느라 장소 사진을 많이 찍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내년 여름에 꼭 다시 가리라! 다짐하며 그 마음을 달랬다. 헝가리에 웬만한 소도시는 다 섭렵했지만 그중에서도 엄지척!













처음에 도착한 곳은 피로연 장소였다.

* esküvő : '에쉬큐뵈'는 '결혼', '결혼식'이란 의미.






하객들의 이름표와 다과가 준비되어 있다.






예식을 기다리고 있는 하객들 -






피로연 연주 연습을 하고 있는 악사들 -





부페식으로 차려진 식음료 -

실제 피로연 때는 코스식으로 요리가 나왔다.





어머! 신랑 등장!

이분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언드라쉬, 따마라의 남편이다.






피로연장 밖의 모습 -

신랑 신부 가족들과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구청 직원이 나와 결혼 서약식이 열릴 장소 -






성당에서의 예식이 진행되기 전, 헝가리 전통적 의식이 이뤄진다.






'Ceremónia'

'체레모니아'라고 적혀 있다.






왼쪽에 검정 조끼를 입은 분이 결혼식 사회자였다.

"신랑은 신부를 많이 사랑합니까?"부터 "그렇다면 신부를 불러내보세요. 안 나오면 도망간 겁니다." 등등의 짓궂은 장난식의 말까지.

하객들의 이목을 끌만한 이런저런 멘트를 해나간다.






부케를 들고 신부를 기다리는 신랑 -

신부를 부른다.






10초 정도 모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기다리고 있는데, 신부가 등장했다.

"나와 결혼해 주겠니?"라는 질문에 "예스!"라고 화답하며 입을 맞춘다.











본격 결혼식 시작 : 모두 다 같이 행진 -




그러더니 진풍경이 펼쳐졌다.

악사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신랑, 신부를 필두로 뒤에 하객들이 쪼르륵 뒤따라 행진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는 곳은 피로연장 근처에 결혼식이 거행되는 성당이었다.

땡볕 아래 모두가 그 장소를 향해 음악에 맞춰 전진하였다.







걸어가면서 홀딱 타들어갈 뻔!






성당이 바로 부근에 있었다.











화동 등장!

뒤에 바로 신랑 신부 입장이 있었다.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신부님은 엄숙하지만 간결한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내가 듣기에도 그러했지만 옆자리의 처버가 듣기에도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말씀이었다고 했다.






예식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신랑, 신부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이 하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성당 아래로 보이는 마을 풍경이 장관이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국적 불문하고 행하는 그것!, 단체사진 촬영을 했다.








성당 앞 계단에 서서 매우 클래식한 분위기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의 클래식은 약간 올드하단 의미. 처버(따마라 친구)랑 웃으며 그런 말을 뱉었다.

이게 웬 쌍팔년도식의 사진이냐고!

난 대답했다. 원래 전통적인 것이 영원한 것이라고.






사진을 찍고 나서 다시 피로연장으로 -

이제 구청에서 나온 직원의 지휘로 서약식을 진행한다.

아직 절반도 안 끝났다.

이때부터 점점 배가 고팠다는 사실!






서약식이 시작되기 전, 주전부리 타임 -

다들 나처럼 허기졌던 것 같다.






내 이름표 앞에 놓여 있던 답례품 -

초대장에 새겨져 있던 나무 문양이었다.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 문구 -






피로연장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내년 여름휴가 장소로 확정!’










서약식 (Polgári Esküvő)






유독 뜨거웠던 여름의 어느 날.


심지어 드레스를 입은 신부에게 절묘한 각도로 강한 햇볕이 내리쬐더라. 어깨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그을릴 때까지 묵묵히 참아낸 따마라가 대견했다.


‘누가 양산 좀 씌어주지! 아, 헝가리엔 양산이 없지.’






헝가리 국기의 띠를 두른 사람이 구청에서 나온 직원이다.

인상 깊은 장면은 구청 직원이 신랑, 신부가 어떻게 만나서 사랑했는지에 대한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모두 그 이야기를 들으면 웃거나 울고, 마지막엔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며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라'라는 식의 주례가 아닌, 오로지 신랑, 신부에게만 집중되어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인생의 반려자로 생각했는지 등에 대한 사실적 스토리를 접한 것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그러고 나서 부부가 된 두 사람의 반지 교환식이 이루어지고, 뽀뽀 타임을 갖는다.

그 후,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신랑 신부 선서, 서약식을 하고 둘이 각각 서약서에 서명(증인도 같이 서명)을 한 후, 샴페인 축배로 식은 마무리가 된다.

그렇게 이 둘은 합법적으로 정식 부부가 되었다.



서약서를 수료증처럼 두꺼운 파일에 담아 전해주는데 그게 마치 '우리 결혼했어요'와도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되는 것이다.








egészségedre ('에기(스)쉬게드레'는 헝가리어로 '위하여!' 건배사)







축배 후, 피로연장 옆에서 이제 부부가 된 이들과 가족부터 시작해 개별적으로 사진 촬영 시간을 가졌다.






이날 내게 많은 도움을 준 처버(검정 옷) 다음 차례는 나!

저 뒤에 보면 신부의 들러리 의상이 인상적이다.

신부보다 더 화려하고 고운 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다. 한국이었다면 난리났을 일이다.







헝가리 결혼식은 체력전이다!



지금부터가 나를 뜨악(!) 하게 했던 일인데, 서약식이 끝난 오후 5시 30분쯤부터 새벽 3시까지 종일 춤만 췄다고 하면 누가 믿으려나?

여자끼리 추고, 남자끼리 추고, 가족끼리 추고, 커플을 번갈아 가면서 추고, 아이들이랑도 추고, 어르신들과도 췄다. 신랑을 파트너로 두고도 추고, 신부를 파트너 삼아 춤을 췄다.


악기 연주, 음악 소리 때문에 귀도 얼얼해지고, 살다 살다 인생에서의 모든 춤은 여기서 다 본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춤 안 추려고 뒤에 숨어 있다가 신랑 손에 붙잡혀 끌려 나가기도 했다. 기차처럼 사람 뒷꽁지 붙잡고 칙칙폭폭 춤도 추고! 살아 생전 춤출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춤솜씨는 젬병인 나.







정다운 광경이다.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다. ‘이 속에 내가 있다니..’ 어딘가 비현실적이게 여겨지기도 한다.

올드한 헝가리식 컨츄리송, 포크송 같은 종류의 음악을 배경 삼아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며 새로운 부부의 연을 기뻐하는 헝가리인들.

매우 길고도 ~~~ 진-하게 축하해 준다.

눈도장만 찍고 가는 결혼식이 아닌, 모두 함께 신랑, 신부에게 진정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는 알고 보면 진지하고도 사려 깊은 축하의 세레모니지 않나 싶다.






중간에 사회자 아저씨의 진행으로 재밌는 질문이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10억과 아내 중 고르라면? 엄마와 아내가 물에 빠졌다면? 등등의 질문.

같은 헝가리인들이 듣기에도 민망함은 그들의 몫이었다. 내 몫도 조금 있었다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겸연쩍게 웃어댔다.






정말 밤새도록 춤만 추더라.

자정이 다 돼서야 몰래 도망쳐(?) 나왔다.






따마라에게만 몰래 이야길 하고 나왔는데, 그런 내게 집에 가서 먹으라고 맛있는 모둠 케잌을 안겨주었다.






하루는 회사 일이 너무 힘들어 몰래 방에서 눈물 찔끔 내며 씩씩 거리고 있었는데 따마라가 선물이라며 전해준다.

결혼식 사진이었다.

(으구, 이 녀석아! 이걸로 완벽한 위로가 되진 않았어ㅎㅎ)








따마라보다 더 긴장했을지도 모르는 결혼식이었다.

하객 중 한국인(외국인)은 내가 유일하다고 한 그 순간부터 설렘과 동시에 떨리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개인적으로 초대를 받은 것 자체가 내겐 큰 의미가 있었고, 그날 겪었던 헝가리 사람들의 모습과 예식, 장소, 분위기, 음식, 춤까지 모두 여운 짙은 꿈결 속 한 장면처럼 쉬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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