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령 - 못봉-신풍령(빼재)산행기

by 민경남

달력의 숫자는 깊은 겨울이었지만 새벽의 그곳은 춥지 않은 날씨였다.

버스에서 내리자 대지는 새싹 돋은 봄 처럼 포근하고 따뜻했다.버스도 봄 바람을 맞으며 달려왔는지 예정시간 보다 한시간을 먼저 도착했음에도 지친 기색이 없어보인다. 일행들은 나른한 봄 처럼 여유가 있었다.차에서 부족한 잠도 보충했고, 미역국에 밥을 말아 느긋하게 조식도 먹고, 커피를 입속으로 올리는 호기도 부렸고, 배낭속에 있는 장갑,스틱,모자,두건을 꺼내 오랜동안 몸에 맞게 조절할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었다.

안성 매표소는 산 허리 부터 전체가 봉우리에 둘러 쌓은 형상이었다.잔 바람이 없이,새벽의 조용한 표정만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번 대간 산행 당일, 아내와 서울 동대문 나들이를 나갔다. 두타에서 아이들 신발도 사고,아내 머리끈도 사고,옷도 사면서 아내와 데이트를 즐겼다.지하도를 건너 동대문 운동장 안에 입주해 있는 청계천 노점상들이 파는 고풍스런 물건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고,좌판에 걸린 겨울 모자와 두건,장갑을 구입했다.망설임 없이 구입할 수 있었던 건 12월 추위속에 걸었던 대간길과 설악 귀떼기청봉의 추위를 몸으로 체득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동계산행 준비를 했지만 아쉽게도 동업령까지 올라가는 계곡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안성매표소에서 동업령까지는 계곡으로 들어가는 구비진 산길이라 바람이 불지 않았다.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몹시 더웠고,내복도 껴입으며 단단히 겨울 추위를 대비한 몸이라 그랬는지,장갑도 벗었고,방풍복도 벗어 던지고 싶었다.


계곡의 얼음 아래로 봄이 오고 있었다.새벽 어둠속에서 들리는 계곡 물소리는 맑고 청아했다.

물소리는 듣고 있자니 자꾸 계곡의 흐르는 물길에 눈길이 가는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인지도 몰랐다.

동업령이 가까이 오자 본격적인 바람이 너울대기 시작했다.눈발이 날리고 있었다.송이송이 눈 꽃송이 하얀 꽃 송이는 아니지만 어둠속에 보는 눈은 참으로 순결해 보였고,눈이 별을 대신하고 있는거 같았다.

눈발은 하산내내 그치지 않았고,능선을 타는 오랜시간동안 바람을 타고 나붓끼고 있었다.날이 밝았고,흐린 능선을 보니 어느새 햇님이 눈꽃을 가져갔고, 잔설만 능선을 희뿌옇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다리를 절룩거렸다.무릅을 다친것이 아니라 무릅뒤의 힘줄이 늘어났는지 오른 무릅을 굽히면 몹시도 아팠다.그러다 보니 능선을 넘기 시작할때 부터 힘에 부쳤다.제대로 걷지 못하니 눈으로 뭉쳐진 계곡의 경치도 지겨웠고,눈 쌓인 능선도,나무들 속에 묻힌 멋진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나마 안도 했던 것은 표시판에 새겨진 하산길의 ㎞가 줄어드는 것을 안도하며 인내할 뿐이었다.

송계삼거리와 횡경재에 도착했을때 작년 5월에 다녀간 똑같은 코스에 서 있으니 감정이 묘했다.

그때는 꽃피는 찬란한 5월이었는데,이제는 하얀 눈이 5월의 흔적을 모두 지웠냈기 때문일 것이다...

점심을 보슬보슬 내리는 눈과, 밥을 섞으며 먹었다. 하얀눈이 보온 밥통으로 들어갈때 마다 보온통의 찰밥은 냉냉한 눈이 들어갈때마다 본드처럼 경화되어 가고 있었다...


중도 탈출없이 목표지점인 신풍령(빼재)에 도착하니 또 한 구간을 마쳤다는 무사함이 좋았다...작년 대간산행을 한 뒤부터 산을 오르고 목표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을 위대한 업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거 같다.즐겨 찾아서,힘들면 쉬고,낮은 자세로 풍요로운 자연을 음미하고,바람가는대로 치솟은 나무와 풀잎도 손으로 잡아보고 즐겨야 했었다. 요즘에는 산에 오르는것을 도전이라 생각하며 목표도달후 얻는 희열을 큰 기쁨으로 느끼는것 같아 마음이 가볍지가 못하다....


산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으니,의젓한 친구들을 보는 것 처럼 듬직해서 참 좋은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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