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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 Dec 27. 2021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이

전쟁을 선포한 두 진영을 중재한 이야기

77년생인 나의 어머니 시절에는 아이들이 스물이 넘어 성인이 돼서야 '엄마의 갱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여자 25세, 남자 29세가 가장 흔한 결혼 연령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결혼 후 대략 3년 안에 아이를 낳는다고 가정할 때, 아이가 사춘기 변신을 시작할 무렵 엄마들의 나이는 많아야 40세 정도로 추산된다. 즉, 예전에는 아이가 사춘기 일 때는 엄마의 기력이, 엄마가 갱년기일 때는 아이의 기력이 빵빵할 때이니 괴수로 변신한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고 위로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세월이 변하고 결혼 시기가 늦어지면서 출산도 늦어졌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여성 신체 나이를 청년의 상태로 유지시킬 수는 없으므로 노산은 불가피하다. 어렵사리 아이를 갖고 마흔이 다 된 나이에 출산하거나 마흔이 훌쩍 넘어서도 출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노산의 위험을 방지하는 다양한 의료기술은 발달했지만 아이의 사춘기와 맞물리는 엄마의 갱년기는 막을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예전에는 흔하지 않았던 새로운 진영 갈등이 화제가 되곤 한다. 갱년기 엄마와 사춘기 아이의 대격돌! 아버지들은 대격돌을 막아보고자 나름의 노력을 한다. 엄마 편을 들자니 아이가 걸리고 아이 편에 서자니 아내가 무서운 현실이다. 동생이나 다 큰 형제가 있는 경우에는 진영 갈등을 넘어 가족 개개인의 분열로 이어지고 오고 가는 기싸움 덕에 냉기가 가득하다.


다행히 조금 일찍, 그러니까 29살에 출산을 한 덕분에 아들이 사춘기일 때 나는 기력이 짱짱했다. 그 덕인지 우리는 꽤 잘 지내는 편이다. '잘 지내는 편'에 불과함에도 '어떻게 그렇게 지낼 수 있냐?'는 질문이 하도 많아서 재능기부 차원에서 자격증도 없는 내가 상담에 강의까지 하게 되었다. 갱년기 엄마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사춘기 아이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는 이유로 중재자가 된 이후 '자신의 입장에 매몰된 상태'에 대한 문제 풀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엄마의 마음을 잘 다독이면서 사춘기 아이의 마음이 아직 어린아이임을 이해시켜드리는 작업이 핵심임을 깨달았다.


세상에 아무 생각 없는 아이는 없다. 다그치지 말자


엄마의 원래 하고픈 말 "시험 잘 봤어? **이는 몇 점이래? 너 어쩌려고 그러니!" 애써 숨기는 3초의 시간,

그리고 실제 입에서 나오는 말 "우리 아들 또는 딸! 수고했어! 지난번보다 잘했네,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강의 때마다 숙제로 드리는 내용이다.

세상에 이처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차라리 수능을 내가 보고 말겠다'라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순간을 애써 넘어가서 '네가 제일 힘들겠지', '너도 정말 잘하고 싶겠지'라고까지만 생각하기로 하자고 엄마들과 손가락 걸고 맹세한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 새삼 느끼는 사실은 '정말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는 본심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상처 투성이라는 점이다. 엄마가 분명히 초등학교까지는 '이쁘다, 착하다' 그랬었는데 점점 자기를 미워하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많다. 엄마의 신체 변화까지 이해하기엔 아직은 미숙한 아이들이기에 최대한 쉽게 설명해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엄마는 원치 않게 할머니가 될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걸 인정하는 게 너무 힘들 뿐이야.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갑자기 찾아온 '나이 듦'에 대한 슬픔이니 이해해 달라고 말해 주면, 모든 아이들이 수긍한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이해력이 빠르다. 다만 상담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엄마의 냉랭한 말투와 친구들과의 비교 습관에 기억력을 상실하고 자제력이 소멸하며 다시 공격 태세를 갖춘다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엄마가 어른이니까, 그래도 엄마가 엄마니까 참고 견디시라고 하기에는 엄마도 너무 힘들다. 반대로 부모니까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셨으니 참아야 한다고 강요하기에도 아이에게는 가혹한 부분이 있다. 서로의 입장에서 좋은 영상을 보여주고, 좋은 책을 권해 주고, 이야기를 듣고 소소한 솔루션을 드리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면 '잘 살고 있다'는 훈장을 얻은 느낌이다.

 

'오은영 박사님까지 갈 정도는 아닌데, 뭔가 실타래를 풀어보고 싶다는 분들께 강추입니다!'라는 지인의 소개로 또 한 묶음 팀이 구성되었다. 좋은 결실이 맺어지기를 기원하며 중재자로서 N 잡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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