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1_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짐작하지 못하도록 만든 제목. 공연예술 평론을 하는 저자의 에세이임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완벽한 문장이었겠으나, 종결되지 않은 채 끝난.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이다, 라고 말하지 않고 굳이 말을 줄인 제목.
2_ 며칠 전, 집에서 10분 정도 훑어 보면서 대여섯 장의 페이지를 읽어보면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특히 공연예술이라는, 필연적으로 사라지는 무대, 글을 읽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영영 보지 못할 무대에 대한 글을 남기는 저자의 일에 매력을 느꼈다. 저자는 꽤나 자주 문장을 완결하지 않은 채로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곤 하는데, 이 또한 사라짐에 대한 사유를 하는 저자의 문체로서는 꽤나 적절한 것이 아닌가, 하고 설득되어 버렸던.
3_ 집에서 청주공항으로 출발하기 5분 전, 나는 잠시 몇 권을 책을 떠올렸다가 이내 결심을 굳혀 이 책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집어들었고, 안개를 뚫고 어렵게 이륙한 (처음 타보는 항공사의)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코를 박고 있었고. 살짝 안개가 걷힌 제주공항에 착륙하는 순간에는 마침, 눈물이 찔끔 나기도 했던.
4_ 아직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체감하기로는 며칠 지난 것 같은 3박 4일 제주도 가족여행 일정. 제주도 대정읍의 한 펜션에서, 모슬포항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나는 잠시라도 틈이 나면 이 책을 다시 손에 들고.
5_ 제주의 유난히 센 바람과, 남쪽 바다 저 멀리서부터 기어코 내 코끝에 당도한 냄새와, 옆에서 재잘대는 나의 아이들과 아내의 말소리, 하늘을 막고 있는 구름과 그 사이를 뚫고 나의 시야를 밝혀주는 햇살, 이 모든 것들과 어우러져. 언젠가는 사라질 제주의 기억들과 함께 떠올라 지속되어 줄, 공연예술 평론가 목정원 님의 사유와 문장들을 가슴에 담아보며. 여행을 함께 하는 가족들에게, 너무 많은 밑줄을 긋지 않았냐며 페이지를 보여줄 때마다, 그것은 마치 줄은 안 그은 것과 똑같지 않냐는 말을 핀잔처럼 들으면서도, 그것이 괜히 뿌듯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