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시애틀에서 마주한 기회와 거절, 인종차별, 나를 다시 보다.
워싱턴대학에서의 시간들은 단순한 영어 수업 이상의 시간이었던 경험이었다. 처음엔 그저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에서의 경험은 내게 훨씬 더 깊은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던 계기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과 직접 연락하여 미팅을 성사시킨 일이었다. 원래 투어 상품을 신청하려 했지만, 그 방식은 내가 이곳에 왔던 취지와 맞지 않다고 느껴졌고, 그래서 혼자 컨택해 보기로 결심했다. 연락을 해도 답이 없고,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되는 일도 많았지만, 결국 한 통의 늦은 메일이 연결고리가 되어 만남으로 이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단순한 운이라기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락을 드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인터뷰 상대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그 사람의 말투를 읽으며 ‘이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세상에 설명하고 있을까?’를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할 때 다시금 떠올린다. 사람 간의 연결은 거창한 전략보다, 진심 어린 '너는 어떤 사람이야?'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아마 여러분도 삶에서 그런 '메일 한 통'을 보낸 적이 있지 않을까.
그 작은 시도가 생각보다 큰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내게는 이 작은 시도가, '이게 될까?'를 지워준 돌파구였다.
“당신의 회사가 궁금하다” 대신 “당신 자체가 궁금하다”는 태도는 상대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되었고, 나만의 방식이 되었다.
다음으로 내게 있어 큰 도전은 영어로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였다. <Seattle Citizens’ Health & Diet>라는 주제로 미국 시민 다섯 명을 인터뷰해야 했었다.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기에 쉽지 않았고, 처음에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Perry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줄 서 있는 시간, 그 짧은 순간들도 활용해 보려 애썼다.
그렇게 하나씩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듣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용기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또한, 프로젝트를 위해 로컬 카페들을 찾아가 카페 알바를 시도했지만, 다섯 군데에서 모두 거절당하며 좌절을 겪었었다. 이후 접근 방식을 바꾸었다. 카페에 오래 머무르며 손님들이 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보았다. 처음 몇 번은 어떤 행동이 트리거가 되어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저 사람이 관심 가질만한 주제가 무엇이며 내가 어떤 질문을 던져야 인터뷰에 응해줄지 대충 감이 왔다. 스몰토크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도하고,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을 표현하려 했다.
사람 간의 연결은 계속되었다. 수업에서 페루, 브라질, 대만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을 만났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각자의 문화를 공유하며 새로운 세계를 배웠다. 이 경험은 단순한 교류를 넘어, ‘내가 어떤 환경에서도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던 경험이었다.
하지만 이곳이 늘 안전하고 자유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려 할 때 백인 학생들이 우리를 보며 코를 막고 찡그리는 일이 있었고, 지하철에서는 백인 할머니가 막아서는가 하면, 한 흑인 남성은 우리에게 “내 앞에서 말하지 말고 다른 데로 가라”라고 말했었다. 공항에서는 백인 부부가 “쟤네는 일본인일까, 중국인일까”라고 면전에 대고 말하기도 했다.
인종차별이라는 건 뉴스 속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그것은 꽤 현실에 가까운 문제였다. 또한 캠퍼스를 산책하던 중 총성과 비슷한 소리를 듣고 급히 기숙사로 피신했던 날도 있었고, 기숙사 창문 너머로 총소리가 들려온 날 밤은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우리는 항상 걸어서 이동했기에 거리에서 마약 중독자들을 자주 마주쳤고, 대마초 냄새를 맡는 일도 흔했다.
사실상, ‘안전하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길거리 곳곳에서 홈리스들을 마주쳤고, 특히 지하철까지 걸어가야 할 때와 다운타운 일대에서는 그런 환경이 더욱 극명했다. 동시에 조금만 이동하면 유니버시티 빌리지나 벨뷰처럼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이 이어져 있어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되었었다. 이곳의 홈리스는 단순히 거리의 사람들을 넘어, 대다수가 약물에 중독되어 있거나 위협적인 인식이 깔려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 존재를 보면서도 무심하게, 때로는 투명인간처럼 지나쳐야만 했다.
경찰조차 개입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현실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었다. 언뜻 세계의 선진국,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어 온 그 이면에 자리한 사회 구조의 모순과 한계를 마주하면서, ‘강국’이라는 단어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묻게 되었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