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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erbalist Nov 12. 2024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공부였다.

독일 박사생의 마케팅 에이전시 '아이데틱' 합류기


공부하는 선비는 전시장으로 일하러 갑니다.


메쎄 베를린으로 향하는 출근길


독일에서 박사생은 직장인 아닌가요?


독일에서 박사 공부를 한다는 것은 흔히 ‘학문에 전념하며 돈을 버는 사람’ 정도로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계열 박사생들은 연구실에 고용되어 급여를 받으며 논문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계열 박사생들은 사정이 다르다. 장학금을 받지 않는 이상, 온전히 자기 돈으로 박사 논문을 써야 한다. 평균 7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기간 동안 수입 없이 공부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건 큰 재정적 부담을 안기기 마련이다. 게다가 독일의 박사 과정은 강의가 거의 없고, 대부분 독립 연구로 진행되기 때문에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도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박사생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아는 사람 중에 집에 틀에 박혀 논문만 쓰다가 정신이 완전히 나간 사람이 있어.”


이처럼 독일에서 인문계열 박사 과정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고립감을 느끼기에 충분한데, 하필이면 독일에 온 지 한 학기가 지나자마자 코로나가 닥쳤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강력한 폐쇄 조치를 시행했고, 도시의 분주한 움직임은 순식간에 멈췄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힘들게 유학을 다시 시작했는데, 돌아갈 순 없었다. ‘버티자’ - 이 마음 하나뿐이었다. 코로나 기간 동안 사라지기만 했던 나의 유학비를 다시 채우고, “논문만 쓰다 정신이 돌아버렸다”라는 소문 속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밖으로 나가야 했다.



 

드디어 코로나가 끝났다. 이제 일하러 가자.


2022년 10월, 코로나가 잦아든 시점에 나는 본격적으로 독일에서 진행되는 국제 전시회 통역의 ‘판’에 뛰어들었다. 독일은 전시회 강국이다. 매년 160-180개의 국제 및 국내 전시회가 열리고, 세계에서 가장 큰 박람회장 Top 10 중 네 곳(하노버, 프랑크푸르트, 쾰른, 뒤셀도르프)이 독일에 위치해 있다. 운 좋게도 나는 쾰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뒤셀도르프나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전시회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을 만날 기회조차 없었으니, 당연히 일자리를 소개해 줄 사람도 주변에 없었다 - 직접 발로 뛰는 수밖에. 페이스북의 ‘독일 유학생들의 네트워크’, ‘독일에서 구인구직’, ‘베를린 리포트’, ‘구텐탁 코리아’와 같은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부터 전시회 공식 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전시회를 하나하나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서 잠깐!

독일 현지 스태프가 필요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로컬 커뮤니티 사이트

◦ 베를린 리포트: http://www.berlinreport.com

구텐탁 코리아: https://gutentagkorea.com



독일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


그 결과, ‘K-Show(플라스틱 및 고무 산업 박람회)’를 시작으로 ‘Medica(의료기기 전시회)’, ‘Drupa(인쇄 전시회)’, ‘IDS(치과기자재 전시회)’, ‘Ambiente(소비재 전시회)’, ‘IFA(가전 박람회)’, ‘Intersolar(태양 에너지 전시회)’ 등 2024년 10월까지 30개 이상의 국제 전시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이렇게 전시회에서 일하며 쌓은 경험 덕분에, 방구석에서 홀로 연구하던 ‘고립된 박사생’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 ‘사회화된 박사생’으로 조금씩 변화해 갈 수 있었다.



국제 전시회에서 일하며 모아 둔 Lanyard




전시회 산업의 강자, 독일에서 아이데틱과 함께 일하다.



게임스컴 통역원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국제 박람회에서 일하다 보면, 언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임을 새삼 느낀다. 또 박람회 현장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자주 벌어지기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 대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도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일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좋은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아이데틱과의 인연도 바로 그런 특별한 만남 중 하나였다.


아이데틱과의 첫 만남은 작년 8월, 쾰른에서 열린 게임스컴에서 시작되었다. 구인 공고가 ‘구텐탁 코리아’에 올라왔고, 평소 머리를 많이 쓰는 일에 지쳐 몸을 쓰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에 운영 스태프로 지원했다. 줌으로 면접을 보았고, 결과는 놀라웠다.


“운영 스태프를 희망하셨지만,

통역 스태프에 더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어 통역 스태프로 선발하게 되었습니다.”


순간 살짝 당황했지만, 임금이 더 높다고 하니 신나게 일해야지!


나는 참 일복이 많다. 통역 업무 이외에도 다양한 업무를 수행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쾰른 전시장이 집에서 두 정거장 거리라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들다 보니, 눈을 감고도 다닐 정도였다. 더군다나 한국인 스태프 중에서도 유일하게 쾰른에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도시의 지리도, 슈퍼마켓도, 레스토랑도 훤히 꿰고 있었다. 아이데틱이 필요로 하는 물품이든, 급히 찾는 장소든 - 쾰른에 대한 이러한 익숙함 덕분에 나만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아이데틱 식구들과 스태프들, 2023년 8월 게임스컴 <별이 되어라 II> 현장



아이데틱에 대한 첫인상은, 내가 여태껏 일해온 다른 회사들과 사뭇 달랐다. 회사 전체가 그야말로 “젊음” 그 자체였다.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 속에서도 서로를 챙기고 도와주며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바쁜 업무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일해줘서 고맙다”라는 따듯한 말 한마디와 함께 25명 전원의 식사를 통 크게 쏘는 대표님의 모습에 회사가 가진 특별함을 느꼈다. 우리 같은 일회성 단기 알바에게 독일에서 차돌박이를 사준다?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다. 아이데틱이 독일 전시회에 다시 참가하게 된다면, 꼭 함께 일하겠다고 Kay님께 말한 것은 단순한 빈말이 아니라 나의 진심이었다.


아이데틱의 통 큰! ‘게임스컴 회식’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공부였다.



효정 씨, 저희 베를린 IFA에 참가합니다.




그렇게 게임스컴에서의 인연 덕분에 올해 베를린 IFA에서 현지 PM으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이미 IFA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어서 두려움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규모가 달랐다. 베를린 전시장에서 5.1홀(2,565m², 대략 776평) 전체를 사용하는, 그것도 “35명의 직원들이 베를린으로 출장을 왔고 55명의 현지 스태프들이 동참”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라는 소식을 듣자마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 규모를 생각하고 “다음에는 아이데틱과 함께 일하겠다”라고 Kay님께 약속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두 달간 함께 준비하는 프로젝트였지만,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아니었다. 몇 개월을 고군분투하며 준비한 아이데틱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내 손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 스태프 섭외와 관리, 필요한 물품 준비, 그리고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일 등이 나의 업무였다. 이처럼 현지 PM으로서 현장을 위한 전반적인 지원과 문제 해결을 담당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긴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효정 씨, 내일은 좀 늦게 출근해도 돼요”라는 대표님의 제안도 거절할 정도였다.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공부였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2024년 9월, 베를린 IFA 준비 현장에서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동안의 긴장감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안도감도 있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일하는 대표님과 다른 직원들을 보며 떠오른 내 부족함과 어리숙했던 순간들, 그리고 아쉬움 때문이기도 했다. 그래도 성공적인 전시회라는 결과와 “잘했다”라고 따듯하게 다독여 주는 아이데틱 식구들 덕분에 이번 경험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이 되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거부할 수 없는 달달한 입사 제안



우리 회사도 이제 박사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아.



IFA 기간 중 대표님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 말속엔 독일 전시회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전시회에서 여러 업체와 일하며 농담처럼 “우리 회사에 입사해!”라는 제안을 많이 받기도 했기에, 그 말이 진심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IFA 끝나고 철거 작업이 한창일 때, 대표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효정 씨, 우리 회사에 정식으로 입사해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어.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근무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이 말씀과 더불어 내가 좋아하는 ‘꿀’ 두 병을 건네주셨다. 매일 호텔 아침식사 때 빵에 꿀을 발라 먹던 내 모습을 눈여겨보신 현재 나의 사수 Eva님 덕분이었다. 이보다 더 달달한 입사 제안이 있을까!





입사 결심은 단 1초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공부가 제일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입사를 결정한 것은, 직원들과 정이 들어서도, 그 꿀이 달달해서도 아니었다. IFA 전시회에서 PM으로 두 달간 일하며 느낀 팀워크의 매력과 현장에서의 생생한 경험, 그리고 협업 속에서 만들어지는 시너지 때문이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차분함’이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요란하지 않고 부드럽게 해결해 나가는 아이데틱 사람들 - ‘차분함’이라 말했지만, ‘능숙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자세가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졌다.

(우당탕탕 현지 PM이었던 내가 현장 지원을 잘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데틱 식구들의 이 ‘차분함’과 ‘능숙함’으로 나를 든든하게 이끌어준 덕분이라고 꼭 덧붙이고 싶다.) 게다가 독일이라는 전시 강국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프로젝트를 경험할 기회는 흔치 않다. 이곳에서라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성장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데틱은 책 속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진짜 현실을 보여주는 “창구(窓口)”이다.




유럽 Gpt 레나입니다.


독일에서 아이데틱의 눈과 귀가 되다.



Global Branding의 마케터로 입사한 나는 이제 ‘Lena’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리고 아이데틱이 독일 전시회에 참가할 때마다 현지에서 전반적인 지원을 맡아, 회사가 목표한 바를 최상의 환경에서 달성할 수 있도록 실무를 꼼꼼히 챙기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독일 전시회 시장의 최신 정보와 동향을 파악해 회사에 전달하는 것도 내 주요 업무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는 독일 전시회 일정과 트렌드를 분석하고, 관련 업계 소식을 수집하며, 회사가 시장의 흐름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에 나는 독일에 있는 아이데틱의 한 식구로서, 그리고 종군기자로서, 독일 전시회 산업의 현재를 전달하고자 한다. 현지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독일 전시회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담아 진솔한 이야기를 써 내려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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