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그리워하는 맛
감자는 맛있다.
볶아도, 튀겨도, 삶아도, 구워도 맛있다.
국에 넣어 끓여도 맛있고, 간장에 조려도 맛있고, 삶아 으깨서 마요네즈에 버무려도 맛있다.
갈아서 몽글몽글 옹심이를 만들어도 맛있고, 기름에 전 부쳐 먹어도 맛있다.
뭘 해도 맛있는 감자는 심지어 싸고 흔하고 영양가도 높다.
그런 감자 요리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는 아무래도 ‘삶은 감자’.
아니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감자 요리 중에서 왜 하필 '삶은 감자'일까?
내가 ‘삶은 감자‘를 가장 좋아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은 감자는 그냥 찜통에 삶거나 물에 삶기만 하는 뻔한 삶은 감자가 아니다. 나름 노고가 좀 들어간다 이 말이다.
먼저 껍질을 깎아 물에 깨끗이 씻어 놓은 감자를 냄비에 넣은 후, 물 한 공기에 설탕 두 스푼, 소금 한 스푼을 넣고 휘저어 녹인 후, 참기름을 서너 방울 섞은 다음 냄비에 붓는다.
그리고 중불에서 끓이다가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면 약불로 줄이고 타지 않도록 수시로 냄비를 뒤적여 주어야 한다. 마침내 물이 다 졸아들 때쯤 되면 참기름의 고소함과 달달하고 짭조름한 소스가 끈적끈적 감자 주변을 감싸 단짠이 은근히 베어든 맛있는 ‘삶은 감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은 감자는 앉은자리에서 5개고 6개고 먹을 수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 엄마가 자주 해 주시던 간식이 이 삶은 감자였다.
싸고 양도 많아 육남매가 모두 모여 간식으로 먹기 안성맞춤이었다.
커다란 양은솥의 날개를 잡고 스무 개 가까운 감자들을 뒤적여 주는 모습은 마치 중국요리사가 웍을 다루는 손목 스냅과도 견줄 만했다. 엄마가 솥을 한번 흔들 때마다 벌거벗은 감자들이 고소한 향을 풍기며 공중부양을 한다. 감자는 철퍽철퍽 소리를 내며 뜨거운 물과 섞이고 저희끼리 몸을 부딪쳐 익어간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다 익은 감자를 솥바닥에 졸아든 소스에 묻혀 한 입 베어 물면 뜨끈하고 포사로운 느낌이 먼저 입안을 채우고 단짠의 풍미가 가슴까지 스며든다. 그냥 삶은 감자를 소금이나 설탕에 찍어 먹으면 절대로 이 맛을 느낄 수 없다. 이 맛은 내게 그리움의 맛이기도 하다.
지금도 때때로 햇감자가 나올 때면 한 번씩 엄마의 삶은 감자를 만들어 먹는데, 만드는 과정부터 먹을 때까지의 모든 순간이 엄마를 그리워하는 순간이 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훌쩍 지났다.
어릴 때는 몰랐던 6남매를 홀로 키운 엄마의 고단함이 삼남매를 키우는 요즘에서야 조금 이해가 된다.
일하고 있을 때 놀아달라고 달려들어 매달리는 막내를 보면 그맘때 내가 생각나곤 한다.
빨래를 개려고 거실에 펼쳐놓은 마른빨래들 위로 막내가 뒹굴거리고 있노라면, 엄마가 말린 이불홑청을 방 한가득 펼쳐놓고 이불솜에 맞춰 꿰매고 있을 때 이불 한가운데에서 뒹굴뒹굴 거리던 어릴 적 내가 겹쳐진다.
심심하다고 뒹굴, 풀 먹인 이불 냄새가 좋아 뒹굴, 두꺼운 이불솜이 푹신해서 뒹굴.
그러면 엄마는 바느질하고 있으니까 저리 가라고 뭐라 했지만, 난 개의치 않고 뒹굴 거렸다.
이불홑청을 이불솜에 꿰매고 있는 엄마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나한테 잔소리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좋았다.
지금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으니 그때 기억이 더 좋은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도 6남매 중에 막내인 나만 그 요리법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대물림으로 내가 내 아이들에게 삶은 감자 요리를 해주며 순간순간을 기억에 새긴다. 외할머니 이야기도 하고, 내 추억도 나누면서. 그리고 혹시 몰라 만드는 방법도 꼭 알려주고 있다.
세 아이들 중 누가 요리법을 기억할지 모르지만, 훗날 내 아이들도 삶은 감자를 해 먹으며 나를 추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