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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 Aug 11. 2023

손톱에 낀 때?

일상에서 만나는 억울함

일주일에 하루, 육아에서 해방되는 낮의 1시간 30분.

아이들이 거의 동시에 학원에 들어가는 그 시간입니다.

모두가 방학을 맞아 항상 같이 붙어있는 요즈음, 그 한 시간 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고 말짱한 정신으로 뭔가 날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을 학원에 넣어주고 부근 카페로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아이패드를 열고 딱 앉았습니다.

분위기 좋은 재즈 음악과 따뜻한 아메리카노, 그리고 손님도 많지 않아 분위기도 조용하고 집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죠.

할 일을 열어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어라? 항상 짧게 깎아두는 손톱 사이로 뭔가 거무튀튀한 것이 보입니다.


‘뭐지? 때인가? 내가 때 낄 일을 했던가..’


아까 설거지 하고, 둘째랑 병원 다녀오고, 막내 방과 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고, 안경집 들르고... 동선을 아무리 역추적해도 그럴만한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이 놈의 까만 때는 어디서 온 것일까.. 자꾸 신경 쓰여 손톱 끝을 만지작 만지작 해 봅니다.

손톱 때야 빼면 그만인데 거 참 이런 때는 사람이 없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혼자 뭔가 이상한 짓을 하면 단 번에 눈에 띄니까 말이죠.  

대충 번개처럼 빼보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무튀튀한 건 빠지지 않습니다. 내친김에 왼 손을 쫙 펴봤더니 이런.. 왼손 손가락 끝이 전부 까무잡잡하지 않겠어요?

왜 손톱이 양옆으로 숨은 살 부분 있잖아요? 그 사이가 거무튀튀한 것이 누가 보면 흙장난 잔뜩 한 것 같이 보일만 했죠.

그런데 난 흙장난은 커녕 흙 근처도 안 갔는데 슬슬 억울해졌습니다.

사실 아무도 관심 없는데 혼자 심각하죠. 마치 카페 한가운데 혼자만 핀조명받고 앉았는 기분.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로 냅다 달려갔습니다.

비누로 박박 문지르며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오늘을 역재생해 봅니다.


설거지를 했고, 병원 다녀오고.. 아 반찬도 만들고.. 잠깐만, 반찬? 반찬이 뭐였지? 아 콩자반.. 아하!

그때 번뜩 떠오르는 장면은 큰 볼에 불린 까만 콩을 담고 물에 몇 번인가 헹구고 있던 내 모습이었습니다. 서서히 물속의 담겼던 손 모습이 클로즈업됩니다.

그렇습니다. 범인은 콩자반이었네요. 까만 물에 몇 번인가 손을 담갔다 뺐는데 그 흔적이 남았었던 거군요.

이놈의 콩은 강하기도 하지요. 그 찰나에 이렇게나 흔적을 남긴 걸 보면 말입니다.

범인을 찾고 나니 문득 억울하기도 우습기도 했습니다.

흙장난이며 손이 더러워질 일을 했을 거라는 남들의 시선을 걱정했던 것도, 뭔가 나도 모르게 지저분한 걸 만졌을지 모른다며 스스로도 믿지 못했던 생각들이 괜스레 미안해졌죠.

혼자 억울하고 미안하고 다 합니다.

이런 게 엄마 손이겠지요.

다음에는 반찬 마무리로 콩자반 말고 참기름 넣은 무침 같은 걸로 해야겠어요.

손톱 끝에 고소함만 남게 말이죠.


다시 자리에 앉아 소중한 남은 시간을 아껴 보내야겠어요.

싹싹 씻어 깨끗해진 손을 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자판을 두들기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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