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겐 기대가 없단다
엄마, 얘는 한달 전 작은 모래색 카펫을 거실 한구석에 깔고 우리집 식구가 된 청소년 고양이 뽀또예요.
나와 서서방 집안을 통틀어 가장 막내인 작은콩이를 마지막으로 우리집엔 막내는 다시 없을 줄 알았는데 응애 응애 울음 소리 하나 없이 막내가 생겼어요. 그러고 보니 큰 콩, 작은 콩을 돌봐주신 아주머니 이후로 두번 째 맞는 중국 혈통 가족이네요 (그래서 그런가 아직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기도…오늘 부터 중국어로 말을 걸어봐야 할까요?).
요즘엔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집사라고 한대요. 고양이는 애완동물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주인님 처럼 모셔야 한다나. 주름이 쪼골쪼골한 한 쪽 입술 끝을 비틀며 욕을 한바탕 쏟아낼 엄마의 얼굴이 상상이 가네요. 그게 요즘 사람들 사는 방식이래.
뽀또를 데려오기 전, 고양이가 좋아졌다는 내 얘기에, 주변에서 숨어있던 집사들의 수많은 경험담이 쏟아졌어요. 아유~ 귀찮아, 그 많은 털을 다 어째, 돈은 또 얼마나 드는지 아니, 다시 잘 생각해봐!
또 한편으로는 '고양이가 좋아?' 라며 기다리기라도 하듯 내 핸드폰 여기 저기 귀여운 고양이 영상과 사진들이 쏟아졌어요. 엄마도 알걸? 요즘 핸드폰에는 귀가 있고 눈이 있어서 내가 하는 얘기, 메신저로 주고 받는 대화로 내 관심을 끌만할 광고를 엄청 해대잖아요. 그런 영상들을 보며 귀여운 고양이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거나 털이 북숭 북숭한 고양이에게 오히려 내가 귀여움을 받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막상 우리집에 들어온 고양이 뽀또는 나에게 애교를 부리거나 내 꽁무니를 좇아다니지도 않고 너 따위 집사 없어도 잘 살수 있다는 듯 독립심이 높은 도도냥이었어요. 내 손길을 바라기는 커녕, 내가 안을라 치면 어찌나 빠르게 도망을 가는지. 하지만 우리 다 알고 있지요, 뽀또는 집사의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거.
뽀또가 오고나서 가장 좋은 점은, 부드러운 털로 나를 꾹꾹 눌러댈 때의 간지러움도, 말도 안 통하는 그 아이에게 내 하소연을 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저 내게 건조하게 할일이 생겼다는 거에요.
그저 식판의 털을 떼내고, 신선한 물을 갈아주고, 좋아하는 밥을 채워주고, 모래밭에 꽁꽁 숨겨놓은 감자와 맛동산 (오줌과 똥이 모래에 뭉쳐서 꼭 감자와 맛동산 처럼 생겼어요)을 치워주고. 눈이 닿는대로 그때 그때 해야 할 단순한 일을 하다보니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거.
참 신기하죠? 애들방을 청소하거나 빨래를 개켜주거나, 밥을 차려주거나 화장실 청소를 해주는것과 같은 일인데 왜 아이들에게는 화가 나고 뽀또에게는 화가 나지 않을까? 오히려 “아이구, 우리 뽀또 배고파쪄여? 응가 이르케 많이 해쩌여? 아구 아구 착해 “ 라며, 혀짧은 소리를 노래 부르듯 한다니까요. 이런 나를 가끔 이상하게 바라보는 서서방과 눈이 마주치면 민망해서 웃어버리기도 해요.
하루 종일 한푼이요 두푼이요 내게 올 돈 너에게 갈 돈을 따지고, 겉으론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집고 또 헤집어 뭐가 가장 유리할지 나만의 작전을 세우고, 또 실패하고. 윗사람의 눈치, 아랫사람의 뒤통수를 살피느라 눈이 뱅글뱅글 돌아가는 낮시간을 보내다 집에 와요. 집에는 우리 마음의 기대를 어깨에 지고 사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이 휘청 할 때 마다, 내 기대감이 떨어질까봐 그 걱정에 바로서라 바로 앉아라, 똑바로 가라 옆으로 가라 , 지휘관처럼 살고 있는 나를 또 발견해요. 집은 휴식처이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는 조용한 또다른 군대이기도 하더라구요.
뽀또는 그 식빵 한덩이 같은 조그마한 몸에 내 기대를 올려놓지도 않았고 내게 기대하는 것도 없어 보여요. 설령 기대 하는 게 있다고 해도,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야옹, 할 뿐이니 내가 그 마음을 다 알수도 없고. 그냥 내마음을 기준으로 치우고 닦고 쓰다듬어 주는 거지. 아마 나는 내 똣대로 내 몸을 움직이고도, 상대에게 평가받지 않는 이 부지런한 시간이 좋은가봐요.
아이들에게도 그 어깨에 놓인 기대를 내려놓으면 좋을텐데 싶다가도, 내 기대를 덜어낸다 해도, 아이들과의 온갖 장르의 말다툼은 계속 될테니 큰 변화가 없을 것 같네요.
나는 어땠나요, 나도 한때는 엄마에게 도도한 고양이처럼 집사의 도움을 바라기만 했겠죠? 그래도 그 존재만으로 엄마가 잠시라도 행복했을까요?